구성원 자발성 끌어올리고 예산 절감
일부 정치인 색깔로 씌워 정쟁거리로
연대기금 통해 대출…투자금 고충 해소
국토 ‘균형 성장’은 피할 수 없는 흐름
살기 좋은 지역 만들기 선의의 경쟁을

김현대 한국가치연대기금 이사장이 마을기업, 협동조합 등 공적 가치를 가진 분야를 활성화 함으로써 경제를 더욱 튼튼하게 만들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김은경 기자
이재명 정부는 최근 '국정운영 5개년 과제'를 발표하면서, 마을기업·협동조합 등 공적 가치를 가진 분야를 지원하는 '사회연대경제 성장 촉진'을 포함시켰다. 문재인 정부서 한차례 국정과제로 추진됐다가 윤석열 정부서 동력을 잃고 주춤했던 사회연대경제가 이를 계기로 다시 한번 도약할 수 있을지 관심이다. 김현대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이사장은 "지난해 UN 총회를 계기로 '사회적 경제'라는 말이 '사회연대경제'라는 용어로 대체됐다. 전세계 국가들이 인류의 지속가능한 내일을 위해 사회연대경제로 눈돌리는 가운데 한국 정부가 이를 국정과제에 포함시킨 것은 지당한 결과이자 주목할 만한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대구 출신의 김 이사장은 중앙지 기자로 근무할 당시 국내외 사회연대경제활동 사례를 선도적으로 취재하는 등 관련 분야가 뿌리 내리는 데 적잖은 공을 세웠다.
◆한겨레 신문 제1호 사원
김대중 대통령은 생전에 '한겨레'를 독보적 언론이라고 표현했다. 그 만큼 한국 언론사에서 평범하지 않은 궤적을 걸어왔다는 반증이다.
1988년 창간한 한겨레는 동아일보, 조선일보 해직기자들이 주도해 만들었다. 시민들이 독재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자유언론을 추구하며 자발적 모금운동에 들어간 것도 이채롭다. 당시 모금에 참여한 시민 주주가 2만7천여명, 50억원이 모였다.
김 이사장은 한겨레 창간 1호 사원이다.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20대 후반이었던 그가 준비위 단계서 해직기자가 아닌 유일한 신입사원으로 합류했다.
"한겨레가 1988년 5월 15일 창간했는데, 저는 그보다 앞선 1987년 10월 1일자로 교수님 소개를 받아 합류했습니다. (서울대 재학시절) 친구들은 공장에 가고, 감방에 가고, 주도적으로 사회에 참여했는데 저는 용기를 내지 못하고, 형편도 허락되지 않아 늘 망설이기만 했죠. '새신문 창간 사무국'과 인연이 닿은 것은 제겐 현실적인 타협책이었습니다."
언론이 정부에 의해 통제받던 그 시절, 새로운 신문이 나오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신문사 허가를 받는 것부터 윤전기를 구입하는 것까지 어느 하나도 간단하지 않았다. 시민들이 참여하는 국민주 모금방식을 도입한 한겨레는 납활자 방식이 아닌 한국 최초의 CTS 신문제작, 가로쓰기를 도입하는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 발상의 혁신을 주도했다.
"모든 것이 열악하고 미래를 확신할 수 없었지만 매일 아침 출근하면서 가슴이 벅차 올랐던 것 같아요. 그 시절 모든 언론이 정부 통제를 받았는데, 한겨레는 그 성역을 깨고 온전히 자유롭게 자신의 기사를 쓸 수 있는 언론사를 표방했던 것이죠."
◆'사회연대경제' 중립의 언어
창간멤버로 합류한 후 2023년 퇴사하기까지 35년간 한겨레 기자로 근무했다. 재직 당시 새로운 취재영역을 개척했다. 2010년부터 농촌 전문 기자로 활동하며 '한국농업기자포럼'을 이끌었으며,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 제도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해외 사례를 발빠르게 취재해 알렸으며, 관련 저술과 언론인 포럼도 만들었다.
"경제를 크게 나누면 정부 중심의 공적경제, 일반 사기업 중심의 사적 경제가 있어요. 그런데 유럽 등의 사례를 보았을 때 여기에 마을기업, 농업협동조합 같은 사회적 경제가 삼각축으로 가세했을 때 경제가 더 건강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공동체 구성원이 함께 참여하고, 만들어가는 사회연대경제가 더 나은 미래를 열어갈 해답이라는 생각이 확고하다. 다만 한국사회에서 사회연대경제가 여야 정치인 사이에서 논쟁거리가 된 데는 불편한 심경이다.
"일부 정치인들이 '사회연대경제'에 색깔론을 씌우고, 정쟁거리로 키우는데, 좌와 우를 떠나 지극히 중립적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영국 같은 경우는 자발성을 끌어올리고, 예산을 절감한다는 취지에서 보수당 차원에서 도입했을 정도니까요."
그는 올해부터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이사장을 맡고 있다. 이 조직은 사회적 경제의 발전과 사회적 가치 확산을 위한 금융생태계 조성을 위해 2019년 1월 출범한 공익성 재단이다.
"사회연대경제에 종사하는 이들이 겪게 되는 가장 큰 고충이 금융입니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때 신용과 재무건전성을 보는데, 사실 이들은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만큼 재무성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려워요. 저희 같은 기금이 이런 사각지대를 메워주는 겁니다. 대출과 투자를 받기 힘든 이들에게 유연하게 자금을 공급하고, 궁극적으로는 사회연대기금의 생태계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사회적 가치를 잘 측정하고, 사회적 성과가 기업가치에 평가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 등이 필요하겠지요."

김현대 한국가치연대기금 이사장이 마을기업, 협동조합 등 공적 가치를 가진 분야를 활성화 함으로써 경제를 더욱 튼튼하게 만들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김은경 기자
◆한국언론의 위기, 신뢰 회복부터
오늘날 한국사회는 좌와 우, 진보와 보수의 색깔 논쟁에 갇혀 대립하고 있다. 언론 역시 예외는 아니다. 이에 대한 견해는 어떠할까. 김 이사장은 2020년 한겨레 재직 당시 구성원 65%가 넘는 압도적 지지를 받아 사장에 선출돼 은퇴할 때까지 3년간 재임했다.
"한겨레 창간 멤버였던 대구 출신의 정태기 선배가 했던 말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자기가 선택한 색깔로 스스로를 구별 짓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진보냐, 보수냐, 성장이냐, 분배냐 라는 단순히 이분법으로 신문을 만들던 시기는 이미 지나갔다고 생각합니다."
지역 소멸과 국토 균형 발전에 대한 견해도 덧붙였다.
"국토 균형성장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에요. 정권이 바뀌더라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지켜가야 할 트렌드죠. 그동안 우리사회가 불균등 압축성장으로 너무 빠르게 점핑했다면 이제는 조금 차분해지는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다만 너도나도 지역소멸이란 단어를 외치는 것은 별로 마음에 안들어요. 우리 지역과 마을을 어떻게 보다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나갈지, 구체적인 방안을 놓고 선의의경쟁을 벌였으면 좋겠습니다. "
그는 2023년 은퇴한 이후 제주에서 인생 2막에 도전하고 있다. 유유자적한 전원생활이 아니라 치열한 농부의 일상이다. 매일 아침 눈뜨면 밭으로 나가 풀을 뽑고, 가지를 치고, 이웃 농부들의 작업을 돕는다.
"작년 10월, 11월에는 주 68시간을 일했습니다. 그때 네팔, 인도네시아에서 온 친구들과도 친해졌는데, 그 친구들의 떼인 임금을 받아주고, 새로운 일자리도 소개해줬더니 제가 '코리아 파파'가 되었더군요."
기자생활에서 밴 취재 근성(?)을 놓지 못한 탓일까. 농사 짓는 틈틈이 동네 어르신들을 만나 마을의 역사와 전설을 채록하는 활동도 병행한다.
"돌이켜보면 도시에서 평생 '책임'을 짊어지고 살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제주에 와서 몸으로 일하고, 수확한 결과물을 보면서 새로운 행복을 찾았다고 할까요. 땀 흘리며 생산하고 수확하는 단순한 맥락에서 충만한 행복을 느낍니다."

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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