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유일 축제 딤프 예산 코로나때 수준으로 축소
창작거점 될 뮤지컬콤플렉스 조성 사업마저 ‘스톱’
위기감 고조 속 전용극장 앞세운 부산은 시장 확대
“작곡·극작·무대기술 등 창작진 양성과 역량 강화
실무 중심의 지역 인력 선순환 구조 재구축 절실”
딤프는 국내 최초로 창작지원사업을 시작해 창작자들에게 초연 무대를 제공해왔다. 사진은 올해 9월7일까지 공연하는 제14회 창작지원작 뮤지컬 '프리다' 무대 모습.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내년 20주년을 맞는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딤프)은 '뮤지컬 도시 대구'를 이끌어온 주역이다. 전국 유일의 뮤지컬 축제로서 수도권 중심의 생태계를 지역으로 확장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오랜 숙원인 전용극장 부재는 '뮤지컬 도시' 대구의 위상을 위협하는 아킬레스건으로 남아 있다. 특히 전임 정부의 국정과제로 대구시 산격청사(옛 경북도청)에 조성될 계획이었던 '국립뮤지컬 콤플렉스' 사업이 지난 8월 중순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 선정 불발로 제동이 걸리면서, 인프라 확충에 대한 기대감이 꺾였다. 딤프의 20년 역사가 쌓아올린 성과와 함께 대구 뮤지컬 생태계가 직면한 현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짚어본다.
◆ 딤프도 피하지 못한 예산 축소
딤프의 가장 큰 성과는 창작 뮤지컬 발굴과 지원에 있다. '어쩌면 해피엔딩'의 작곡·작사가인 '윌·휴콤비'의 첫 협업작 '번지점프를 하다'가 딤프 창작지원사업을 통해 탄생했듯, 딤프는 국내 창작 뮤지컬의 산실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이를 계기로 20주년을 앞두고 내년부터 창작지원사업의 지원금을 늘리고, 뉴욕과 연계한 창작지원작의 쇼케이스도 재개할 예정이다.
하지만 대구 문화계 전반의 예산 축소는 딤프도 비켜가지 못했다. 올해 제19회 딤프 예산 규모는 29억5천만 원으로, 지난해보다 2억 원 가량 줄어 코로나19 시기였던 2021년 수준으로 후퇴했다.
그 여파로 10년간 운영해 온 전문 인력 양성 프로그램 '뮤지컬 아카데미'는 올해 창작자 과정(극작·작곡)만 남기고 배우 과정(전문·심화)을 축소하는 뼈아픈 결정을 내렸다. 창작자 과정도 운영 시기가 늦춰져 이달에야 운영된다.
배성혁 딤프 위원장은 "이번 아카데미 축소는 뮤지컬 예비 인력을 현장 전문가로 연결하던 인재 육성 시스템의 가교 역할이 약화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인건비와 배우 개런티는 매년 오르는데 축제 예산은 뒷걸음질 치고 있다"면서 "재정적 압박 속에서 콘텐츠 질을 유지하려다 보니 축제 외연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 미래 인재를 키워낼 기초 동력까지 갉아먹고 있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 인재 유출에 메마르는 역량
대구는 각종 교육 기관에서 꾸준히 인재를 배출해 왔지만, 졸업생들의 활동 무대는 서울로 집중되고 있다. 제4기 DIMF 뮤지컬 아카데미가 리딩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DIMF 제공>
축제의 재정적 위기 못지않게 지역에서 뮤지컬 인재를 체계적으로 배출하거나 이들이 뿌리내리고 활동할 환경이 갈수록 척박해지고 있다는 점도 심각한 문제다.
대구는 국내 최초의 뮤지컬 특성화 중학교인 가창중과 계명대·대구과학대 등 다수 대학의 관련 전공을 통해 꾸준히 인재를 배출해왔다. 하지만 대경대 연극영화과의 남양주 캠퍼스 이전(2018년)을 비롯해 졸업생들의 활동 무대가 서울로 집중되는 현상은 인재 유출을 심화시키고 있다.
뮤지컬계 전문가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창작진의 전문 역량 강화와 더불어 지역 내 실무 중심의 인력 선순환 구조를 재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오동욱 대구정책연구원 박사는 "지역 대학의 뮤지컬 관련 학과들이 연극 기반에 머물러 있어 보다 전문적인 커리큘럼이 필요하다. 또한 딤프의 '뮤지컬 스타' '뮤지컬 아카데미' 등과 같은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지만 이를 통해 배출된 인재들이 실제 지역 현장으로 진출하는 연계 구조는 여전히 미흡한 실정"이라고 진단했다.
배우뿐 아니라 작곡, 극작, 무대 기술 등 창작진 양성을 위한 체계적인 교육과 유관기관의 협력도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창작뮤지컬을 선보인 경험이 있는 지역의 한 극단 관계자는 "대구 음악창작소 등 유관기관과 연계해 음악과 관련된 창작진들을 체계적으로 육성한다면 뮤지컬 산업에도 선순환적 인력 공급 체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이를 바탕으로 다져진 탄탄한 인적 자원은 지역적 성과에 그치지 않고 K-뮤지컬의 경쟁력을 견인하는 핵심 동력이 될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 전용극장 부재…축제 시너지 줄어
2019년 문을 연 부산 드림씨어터는 '뮤지컬 도시' 대구의 위상을 크게 흔들었다. 사진은 오는 9월까지 부산 드림씨어터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알라딘' 공연 모습. <드림씨어터 홈페이지 캡처>
대구 뮤지컬계가 직면한 또다른 치명적인 약점은 바로 전용 공연장의 부재다. 대구가 '뮤지컬 도시'를 표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형 뮤지컬을 올릴 수 있는 공연장은 계명아트센터와 대구오페라하우스 단 두 곳뿐이다. 그마저도 두 공연장 모두 최적의 무대를 구현하기 어렵고, 시설 노후화 등 한계가 뚜렷하다는 것이 지역 문화계의 지적이다. 딤프 측 역시 축제 운영에서 가장 큰 어려움으로 전용극장의 부재를 꼽았다. 실질적인 공연장 컨트롤 타워가 없어 운영에 차질을 빚고, 축제가 한 곳에 집약되지 못해 시너지 효과도 떨어진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하드웨어(공연장)의 부재는 결국 소프트웨어(콘텐츠 유지 및 관객 유입)의 경쟁력 저하로 직결되는 '인프라의 역설'을 불러왔다.
실제로 2019년 문을 연 부산의 뮤지컬 전용극장인 '드림씨어터'는 '뮤지컬 도시' 대구의 위상을 크게 위협하고 있다. 개관 직후 '라이온 킹' '위키드' 등 해외 대작 장기공연을 잇따라 유치한 데 이어 올해 뮤지컬 '알라딘' 지역 초연까지 선점하며 대구로 향하던 관객들의 발길을 대거 흡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2020년 대구 뮤지컬 관객 수는 2만6천 명으로 부산(4만1천 명)에 처음으로 역전을 허용했다. 2021년에는 부산의 관객 수(16만7천 명)가 대구(8만8천 명)보다 두 배 가까이 치솟는 등 시장 규모의 역전 현상이 뚜렷해졌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도 대구는 지난해 티켓 예매수에 있어 부산을 앞섰고, 올해 상반기 티켓 판매액에서도 높은 수치를 기록하며 저력을 보여줬다(영남일보 2월19일자 1면·8월13일자 19면). 그러나 대형 뮤지컬 공연이 가능한 두 공연장 모두 올해와 내년 공사에 들어가면서, 하반기부터 다시 부산에 추월당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 제동 걸린 '국립뮤지컬콤플렉스'…희망의 불씨는 꺼졌나
대구시청 산격청사(옛 경북도청 일원)에 국가문화예술허브가 조성되는 사업이었으나, 지난 정부 국정과제인 탓에 새 정부 출범 이후 제동이 걸린 상황이다. 국가문화예술허브 조성지인 옛 경북도청 터(현 대구시청 산격청사) 전경. <영남일보 DB>
대구 뮤지컬 산업의 숙원을 해결하고 창작 거점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국립뮤지컬콤플렉스' 사업은 새 정부 출범 이후 사실상 '스톱' 상태다. 당초 대구시청 산격청사(옛 경북도청 일원)에 국가문화예술허브를 조성하는 핵심 사업으로 추진됐으나, 전임 정부의 국정과제였던 탓에 새 정부 들어 사업 추진에 제동이 걸린 상황이다.
국립뮤지컬콤플렉스의 기본 계획 수립 연구 용역은 작년에 이미 완료된 상태다. 지난해 12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2024 국립뮤지컬콤플렉스 현장 설명회&포럼'에서 연구 용역 결과를 정리한 '국립뮤지컬콤플렉스 건립 기본 구상(안)'이 발표되기도 했다.
지난 8월 중순 '국립뮤지컬콤플렉스 조성 사업'(총사업비 2천273억 원)의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 선정을 요청했으나 결국 불발됐다. 함께 국가문화예술허브 공간에 조성할 계획이었던 국립근대미술관은 현재 연구 용역도 진행되지 않은 상태다. 대구시 문화콘텐츠과 관계자는 "경기가 좋지 않다 보니 건립비를 요구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4분기에 있을 예타 조사 대상 사업 선정에 재도전할 예정이며, 중앙부처에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등 노력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국립뮤지컬콤플렉스는 대극장(1천800석)과 인큐베이팅 중극장(500석) 중심의 창작·제작 공간과 뮤지컬 전문 자료관, 실습 및 워크숍 공간, 편의시설 등을 포함한 복합시설로 설계됐다. 민간 자본 기반의 부산 드림씨어터와 달리, 국립뮤지컬콤플렉스는 인재 양성부터 제작·공연·유통까지 아우르는 국가적 '창작 플랫폼'이라는 점에서 뮤지컬 도시 대구의 자생력을 강화하기 위해 필요한 핵심 사업으로 꼽힌다.
지역의 한 뮤지컬 공연 기획사 대표는 "국립뮤지컬콤플렉스는 대구가 그동안 쌓아온 '뮤지컬 도시' 역량의 결실"이라며 "적은 예산으로도 20주년까지 잘 성장해 온 딤프가 명실상부한 국제행사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랜드마크와 같은 상징적인 공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언미 대구시 문화유산과 문화예술기록팀장도 "공간이 예술을 낳고 예술이 공간을 낳는다"면서 "국립 뮤지컬콤플렉스는 대구 뮤지컬의 선순환을 이끌어낼 가장 강력한 인큐베이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뮤지컬콤플렉스는 단순한 공연장만이 아니라 연습 공간, 무대 장치 보관소, 리허설 극장까지 갖춘 '창작 뮤지컬의 메카'로서의 차별점을 갖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사업이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자 일각에서는 부산 드림씨어터처럼 민간이 주도하는 방식의 타 극장 건립이나 지역의 유휴 공간을 극장화하자는 목소리도 나온 바 있다. 특히 중구 동성로에 있는 옛 대구백화점을 활용하자는 의견이 제기됐다. 2021년에 문을 닫은 후 도심 한복판에 방치된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뮤지컬 전용극장을 포함한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자는 제안이다. 하지만 대구백화점 부지 매입 비용과 건립 비용을 합치면 수천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돼 재원 마련이 사업 추진의 큰 걸림돌이란 분석이다.
결국 국책 사업의 정상화 혹은 지자체 차원의 파격적인 대안 마련 없이는 인프라 확충의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지역의 한 기초문화재단 관계자는 "부산은 전용 극장과 적극적인 행정력을 앞세워 뮤지컬 산업에 뛰어들고 있다. 대구가 주춤하는 사이 경쟁력이 떨어지면 '왜 꼭 대구여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직면할 수 있으므로, 국립뮤지컬콤플렉스 유치를 통한 타이밍 확보가 중요하다"며 "예산 지원도 중요하지만, 딤프가 전시와 공연을 연중 지속할 수 있는 거점 공간의 유무가 향후 20년의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 "20년 성과, 도약 발판으로 삼아야"
딤프는 준비위원회를 꾸려 내년 20주년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7월 막을 내린 제19회 DIMF 어워즈에서 출연진과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DIMF 제공>
딤프는 준비위원회를 꾸려 내년 20주년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역대 인기작 재공연부터 아트마켓 기능 강화, 아카이빙 기념 전시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뮤지컬 도시의 위상을 공고히 하겠다는 구상이다.
대구문화예술회관 한 관계자는 "대구가 뮤지컬 도시를 표방하기 위해선 국립뮤지컬콤플렉스라는 제도적 장치가 필수"라고 전제한 뒤 "딤프는 축제를 주관하는 기구이지 제작사가 아니다. 해외 작품은 물론 각 지역의 신작과 쇼케이스 작품들을 선보이는 '아트마켓' 기능을 지속적으로 수행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다수의 뮤지컬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쌓아온 20년 노하우를 아카이빙해야 한다고도 입을 모았다. 또한 조직 운영 시스템 체계화와 국제교류 확대, 프로그램 다변화를 통한 대중성 강화가 중요하다는 의견도 내놨다.
오동욱 박사는 "딤프는 코로나19 시기에도 한 번도 쉬지 않은 전국적으로 보기 드문 축제로, 도시 브랜드 제고에도 큰 역할을 했다"며 "지난 20년간 축적된 내공을 동력 삼아 '산업적 도약'을 이뤄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K-뮤지컬이 세계적 주목을 받는 지금이 '국립뮤지컬콤플렉스' 유치를 통해 대구가 글로벌 뮤지컬 거점으로 거듭날 최적의 타이밍"이라면서 "결국 인프라와 인재, 예산이라는 세 박자가 맞물려야 대구 뮤지컬의 미래가 있다. 이를 위해 대구시의 행정력과 국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정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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