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 인문학술원 정태식 연구교수 저서서 지적
지난달 ‘韓 숙청·혁명’ 트럼프의 SNS 발언 논란
정치·종교 ‘불가근 불가원’ 유지 필요성 강조

경북대 인문학술원 정태식 연구교수가 지난달 29일 영남일보 인터뷰에서 저서 '21세기 제국의 정치와 종교'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서민지기자 mjs858@yeongnam.com
지난달 25일(현지시각) 한미 정상회담 직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SNS '트루스소셜'에 "한국에서 숙청 또는 혁명이 일어나는 것처럼 보인다"고 적으면서 파문이 일었다. 비록 정상회담에서 트럼프가 "나는 오해가 있었다고 확신한다"고 밝혔지만, 정치와 종교의 결탁이 낳은 미국의 극우 담론이 한국의 종교적 극우세력과도 연관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 바 있다.
경북대 인문학술원 정태식 연구교수(철학박사)는 최근 자신의 저서 '21세기 제국의 정치와 종교'를 통해 이 같은 문제를 미리 짚어낸 바 있다. 영남일보는 지난달 29일 정 박사를 만나 정치와 종교의 결탁이 민주주의에 드리운 그늘을 들어봤다.
정 박사는 인터뷰에서 "정치와 종교는 본질적으로 불가근 불가원 관계여야 한다"며 "두 영역이 밀착하면 종교의 절대적 가치는 상대적 가치로 추락하고, 정치의 상대적 가치는 절대적 가치로 상승돼 두 가지 모두 왜곡되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그는 세속적 이미지의 트럼프가 복음주의 종교 우익과 손잡은 과정을 '종교 세탁'이라고 표현했다. 대표적인 장면으로는 △2015년 폴라 화이트 목사가 연출한 트럼프에 대한 목사들의 안수기도 △2016년 뉴욕에서 열린 트럼프와 1천여 종교 지도자의 모임에서 세계적 복음 전도자 빌리 그레이엄의 아들 프랭클린 그레이엄 목사가 대표 기도를 맡은 장면을 꼽았다.
이어 2017년 리버티대 졸업식 연설 당시 트럼프가 "정교분리로 억제된 종교의 자유를 지켜주겠다"고 약속하면서 최고조에 이르렀다고 분석했다. 리버티대는 버지니아주에 위치한 복음주의 계열 사립대학으로, 미국 보수 기독교 진영의 대표적 거점으로 꼽힌다. 당시 총장 제리 폴웰 주니어가 트럼프를 졸업식 연사로 세웠다.
정 박사는 "트럼프는 이들의 지지를 통해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받았고, 이를 기반으로 '백인 기독교 국가주의'를 정치 동원의 무기로 삼았다"고 덧붙였다. 반이민, 반페미니즘, 이슬람혐오 등과 결합한 백인 기독교 국가주의는 극우정치의 동력으로 작동했고, 2021년 미 의사당 난입 사태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는 설명이다. 당시 시위대는 십자가를 들고 종교적 구호를 외치는 등 색채가 뚜렷했다.
정 박사는 또 "트럼프 현상 뒤엔 미국 극우 종교세력이 있고, 이들과 한국 보수 개신교 사이에 연결고리도 존재할 것으로 추정한다"고 주장했다. 대표적 사례로 빌리 그레이엄 목사를 꼽았다. 그는 1973년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전도 집회를 열고 한국 교계에 큰 영향을 끼친 바 있다. 당시 통역을 맡았던 이는 훗날 국내 보수 교계 대표적 지도자가 된 김장환 목사였다.
정 박사는 최근 이슈가 된 모스 탄이 리버티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모스 탄은 트럼프 1기 시절 미 국무부 국제형사 사법대사를 지낸 인물이다. '부정선거 음모론'을 지속적으로 내세우고,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을 옹호하는 인물로 국내 극우세력의 지지를 받고 있다. 정 박사는 "구체적으로 누가 연결돼 있는지는 단정하기 어렵지만, 두 나라 극우 종교 네트워크가 이어져 있는 건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한국 상황의 특수성도 지적됐다. 정 박사는 "김장환, 전광훈, 이영훈, 손현보 목사 등은 정치권력과 긴밀히 얽혀 있는 대표적 보수 종교 지도자들"이라며 "윤석열 정권을 둘러싼 보수 개신교 세력, 무속 네트워크, 일부 신종교가 결합한 '정치·주술·권위주의 복합체'는 국제적으로 보기 드문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교회 지도자들이 무속·신종교 세력과 마찬가지로 권위주의 정권을 옹호하려 했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라고 꼬집었다.
정 박사는 정치와 종교의 결합이 민주주의에 미치는 위험을 거듭 경고했다. 그는 "정치가 종교를 수단화하면 시민사회의 공적 담론은 차단되고, 사상·종교적 다원주의는 붕괴되고 파시즘으로 기울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서민지
디지털콘텐츠팀 서민지 기자입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