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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천년의 강, 형산강] 4. 형산강이 품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2025-09-10 07:45

500년 집성촌·천년고도 유적… 흐르는 물길 따라 역사가 숨쉰다

강학공간 옥산서원 회재 이언적 기려

집성촌 양동마을 강이 만든 마을 전형

사람·자연·유교적 가치·문화 맞물려

경주역사지구 중심축은 형산강 수계

남산 삼릉, 강·숲·농이 삼위일체 조화

"프랑스에 세느강, 독일에 라인강이 있다면 대한민국에는 형산강이 있지."


'한강이 아니라 형산강이라고?' 의아해하는 우리의 표정을 읽은 듯, 경주 토박이 화가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을 이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따지면 그래. 프랑스 세느강과 독일 라인강은 강변 문화경관 자체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대표적인 사례잖아? 우리나라에서 경주 형산강처럼 강과 유산이 긴밀하게 맞물린 곳은 드물지. 한강 유역에도 종묘와 창덕궁, 조선왕릉 같은 세계유산이 있지만 그건 그냥 강 옆에, 강을 배경으로 한 유산에 가까워. 하지만 형산강은 물길 자체가 신라 왕경의 구조와 유산 배치를 규정한 주체였어."


실제로 지난 2000년, 유네스코는 경주역사유적지구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며 '산과 강의 지형에 적응해 조화롭게 형성된 고도의 공간 구조'라는 점을 핵심 근거로 제시했다고 한다.


그동안 왜 몰랐을까. 경주가 품은 세계유산을 몇 번이고 찾으면서도 그 곁을 흐르는 물길은 제대로 못 봤던 것 같다. 한마디로 반쪽짜리 세계유산만 본 셈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강을 따라 걷는다. 세계가 인정한 신라 천년의 유산, 그 온전한 가치를 마주하기 위해.


옥산서원 앞 자계천에 자리한 세심대. 서원에 들어서는 학자들이 세속의 번뇌를 씻고 학문과 수양의 길로 들어섰음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너럭 바위 위에 퇴계 이황의 필체가 새겨져 있다. 201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옥산서원은 자연지형과 조화를 이루는 배치와 성리학의 교육·제향 기능이 높은 가치로 인정받았다.

옥산서원 앞 자계천에 자리한 세심대. 서원에 들어서는 학자들이 세속의 번뇌를 씻고 학문과 수양의 길로 들어섰음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너럭 바위 위에 퇴계 이황의 필체가 새겨져 있다. 201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옥산서원은 자연지형과 조화를 이루는 배치와 성리학의 교육·제향 기능이 높은 가치로 인정받았다.

◆강과 학문이 만난 자리 '옥산서원'


옥산서원(玉山書院)을 향해 가는 길, 마치 마중이라도 나온 듯 주차장 입구에서부터 왼편으로 졸졸졸 쉼없이 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자계천이야. 옥산서원과 독락당을 적시고 내려온 이 물이 안강평야를 지나 형산강 본류와 합류하지. 옥산서원에 들어서는 학자들은 이 물에 세속의 번뇌를 씻어내고 학문 수양의 길로 들어섰다고 해."


그 말을 듣고 있자니 괜히 허리가 곧추세워지고 마음이 경건해지는 느낌이었다. 옥산서원에 가까워지자 물소리는 점점 커졌다. 서원 옆으로 작은 폭포가 소리를 내며 쏟아지고 있었는데, 서원과 계곡 사이에 펼쳐진 너럭바위에 퇴계 이황이 직접 쓴 '세심대(洗心臺)'라는 글자가 오랜 세월 풍파에 깎여 희미하게 남겨져 있었다. 마음을 닦고, 찬찬히 봐야 비로소 볼 수 있는 글씨였다.


"자, 마음을 닦았으니 우리도 엄격한 학문의 세계로 한번 들어가 볼까?"


조선 중기의 대학자 회재 이언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이 서원은 2019년 '한국의 서원'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그런데 이 서원에는 또 하나의 보물이 있다.


"무변루(無邊樓). 말 그대로 경계를 없애는 곳이라는 뜻이야. 2022년 국가보물로 지정됐어. 서원의 문루는 보통 교육과 소통의 기능을 하는 공간인데, 서원 밖 계곡과 산이 한눈에 들어오게 해서 그 경계를 없애는 곳이라니 의미심장하지 않아? 무변루의 이 현판 글씨는 조선 최고 명필로 손꼽혔던 한석봉이 썼다고 해. 저기, 옥산서원이라는 저 현판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이고."


정말 어마어마하다. 몇 발짝 내디딜 때마다 퇴계 이황, 석봉 한호, 추사 김정희 같은 학자들의 필체를 만나다니! 경주 시민에겐 이런 일이 흔한 일이라는 듯 화가는 어깨를 으쓱한다. 그 입꼬리에 자부심이 묻어있다.


경주 옥산서원 인근에 자리한 독락당. 조선 중기의 대학자 회재 이언적이 만년을 보내며 학문에 몰두하던 고택으로, 앞에는 자계천이 흐르고 뒤로는 산세가 둘러 있어 자연과 학문이 어우러진 선비의 공간을 보여준다. 1964년 보물로 지정됐다. 회재 선생 사후 1572년 후손들은 이곳에 머문 선비의 뜻을 기려 옥산서원을 세웠다.

경주 옥산서원 인근에 자리한 독락당. 조선 중기의 대학자 회재 이언적이 만년을 보내며 학문에 몰두하던 고택으로, 앞에는 자계천이 흐르고 뒤로는 산세가 둘러 있어 자연과 학문이 어우러진 선비의 공간을 보여준다. 1964년 보물로 지정됐다. 회재 선생 사후 1572년 후손들은 이곳에 머문 선비의 뜻을 기려 옥산서원을 세웠다.

서원에서 조금 더 강을 따라 걸음을 옮기면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성리학자 회재 이언적의 별서 독락당(獨樂堂)이 나온다. 이름 그대로 '홀로 즐기는 집'이라는 뜻인데, 회재 이언적이 낙향한 뒤 직접 구상하고 지었다는 이곳 역시 강줄기를 내다보도록 설계돼 있다. 후손들이 회재 사후에 자연을 벗삼아 학문에 매진했던 그의 뜻을 기려 독락당 근처에 옥산서원을 세운 것이다.


"세심대의 맑은 물, 옥산서원의 강학 공간, 독락당의 고즈넉한 풍경이 한 줄로 이어져 하나의 문화경관을 이루고 있어. 이 공간 전체가 형산강 수계와 맞물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증명하는 셈이지."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서원 앞을 흐르는 물은 단순한 자연이 아니라 배움의 근원이었다. 강을 바라보며 마음을 닦고, 강의 풍경을 강학 공간 안으로 끌어들여 자신을 단련했던 이들의 모습이 지금도 서원 마당에 겹겹이 겹쳐졌다. 그리고 그 정신은 강을 따라 마을로 이어지고 있었다.


경주 양동마을 전경. 형산강 지류 알천을 끼고 조성된 마을은 물길이 거꾸로 들어오는 역수지형에 자리 잡아 명당으로 꼽힌다. 사람과 자연, 유교적 가치와 생활문화가 맞물린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경주 양동마을 전경. 형산강 지류 알천을 끼고 조성된 마을은 물길이 거꾸로 들어오는 '역수지형'에 자리 잡아 명당으로 꼽힌다. 사람과 자연, 유교적 가치와 생활문화가 맞물린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강이 거꾸로 흐른다는 명당 '양동마을'


형산강 지류 알천을 거슬러 들어가면, 산줄기와 물길이 감싸 안은 양동마을이 나타난다. 2010년 '한국의 역사마을: 하회와 양동'으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이곳은 마을의 형세부터가 독특하다.


"보통 마을은 강물이 마을을 감싸도는 형태로 흐르는데, 그걸 풍수지리학에서는 '환포형(環抱形)' 길지라고 하거든. 그런데 양동에서는 형산강 지류 물길이 마을을 향해 거꾸로 밀려드는 듯 들어와. 풍수에서는 '역수(逆水)'라 불리는데, 재물이 빠져나가지 않고 모인다고 해서 길지로 친대. 물의 흐름도 완만해서 사람의 마음 또한 여유롭고 너그럽게 한다지."


양동마을 하면 늘 기와집, 초가집 같은 건축물에만 관심을 가졌던 우리 눈에 비로소 양동마을을 지나는 물길이 보였다.


마을의 주산인 설창산의 줄기가 뻗어내려 만든 능선들이 네 골짜기를 이루어 마을 전체가 '물(勿)'자 모양을 하고 있었다. 네 갈래 물줄기가 모여드는 형국이니, 풍수적으로 깨끗하고 길지로 여겨졌다. 이 물길을 따라 높은 곳에는 양반 가옥이, 낮은 곳에는 서민 가옥이 자리하며 자연의 질서와 유교적 위계가 겹쳐진다. 물길과 산세가 그 질서를 잡아주는 것이다.


유네스코가 양동마을을 높이 평가한 것도 바로 이 점이다. 인간이 물길과 산세를 거스르지 않고, 오히려 그 흐름에 기대어 마을을 이뤘다는 것. 그래서 양동은 단순히 건축유산의 집합이 아니라 사람과 자연, 유교적 가치와 생활문화가 맞물린 '강이 만든 마을'의 전형을 보여준다.


"여기서 성종의 스승 손소를 비롯해 손필 같은 대학자가 나왔고 영남학파의 시조 회재 이언적이 태어났어. 손씨와 이씨 양대 가문이 500년 넘게 집성촌을 이루고 살며 대대로 학자를 배출해 온 거지. 양동마을에선 강이 곧 생활의 배경이자 학문의 무대였던 것 같아."


양동의 물길은 마을의 골목을 적시고 다시 흘러나간다. 그리고 마침내 더 큰 물길과 합수한다. 천년의 시간과 왕도의 기억을 끌어안은 형산강 본류다.


경주 삼릉솔숲 전경. 신라 왕릉을 감싸 안은 소나무 숲으로 강과 숲, 능묘가 어우러진 경관은 신라 왕경의 풍수적 질서를 보여준다. 이곳을 포함해 형산강을 따라 자리한 경주역사유적지구는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경주 삼릉솔숲 전경. 신라 왕릉을 감싸 안은 소나무 숲으로 강과 숲, 능묘가 어우러진 경관은 신라 왕경의 풍수적 질서를 보여준다. 이곳을 포함해 형산강을 따라 자리한 '경주역사유적지구'는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강이 빚은 천년 왕도 '경주역사유적지구'


형산강 본류 쪽으로 나오자 경주의 세계유산 전체가 강과 함께 겹쳐졌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경주역사유적지구'는 유적의 성격에 따라 5개의 지구로 나뉘는데, 이들 지구를 이어주는 중심축이 바로 형산강 수계(水系)야. 그래서 형산강을 '신라 왕경을 관통하는 젖줄'이라고 흔히들 표현하지."


우리가 도달한 곳은 형산강 본류의 삼릉솔숲. 이름처럼 세 기의 능이 모여 있는 성역이다.


"2000년에 유네스코가 경주역사유적지구를 세계유산에 등록하면서 '산과 강의 지형에 적응해 조화롭게 형성된 고도의 공간 구조'라고 평가했거든. 경주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에게 그 말의 의미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곳이 바로 여기라고 생각해. 내가 최고로 애정하는 산책코스이기도 하고."


그 말을 곱씹으며 찬찬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신라에서 왕릉은 산세와 강세를 아울러 잡아낸 풍수적 결절점에 조성된 것이다. 산능선을 따라 내려온 물길이 왕릉 앞을 감싸고, 숲은 그 자리를 울타리처럼 지킨다. 강과 숲, 능이 삼위일체로 어우러진 이 질서는 곧 왕권의 정당성을 시각화한 것이었다.


그렇게 형산강은 남산지구, 월성지구, 대릉원지구, 황룡사지구, 산성지구를 휘감아 돌며 그 물줄기로 왕경의 맥을 이어간다.


"정말 그렇네! 신라는 산과 강을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도시 구조와 문화 경관을 설계하는 기본 원리로 삼은 거네."


경주 남산에 자리한 숱한 석탑과 불상을 비롯해 지금까지 경주를 오가며 봤던 유적지들이 비로소 하나로 꿰어지는 느낌이었다. 그 중심에 형산강이 있다.


글=이은임 영남일보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공동기획 - 경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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