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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珍의 미니 에세이] 해어화(解語花)

2025-09-12 06:00
박기옥 수필가·대구문인협회 부회장

박기옥 수필가·대구문인협회 부회장

당나라의 양귀비는 미모와 가무(歌舞)만 뛰어난 게 아니라 군주(君主)의 마음을 사로잡는 총명까지 겸비했던 모양이다. 현종은 양귀비에게 해어화(解語花)라는 애칭을 붙여주었다. '말을 알아듣는 꽃'이란 뜻이다. 중국 최고의 시인이라는 이백(李白)도 그녀를 활짝 핀 모란에 비유했고, 정사(正史)도 '그녀를 보면 꽃도 부끄러워한다'고 했으니 그녀는 과연 절세가인이었음에 틀림없다.


연출의 귀재 장예모 감독은 두 사람의 사랑을 발 빠르게 상품화했다. '장한가 쇼'이다. 장한가 쇼는 시인 백거이(白居易)의 장시 '장한가'를 장예모가 현대판 쇼로 연출한 것으로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가이다.


마침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려 예약을 취소하려 했으나 불가능했다. 회당 공연비가 어마어마한지라 환불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허기야 학창 시절에는 소풍도 우중을 무릅쓰고 간 일이 있고 보면 주최 측 입장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지급되는 비옷을 입고 자리를 찾아 앉았다.


쇼는 현종과 양귀비가 놀던 화청지(華淸池)에서 열렸다. 화청지는 현종이 양귀비를 위해 지은 화청궁의 온천이다. 야간에 펼쳐진 화려한 수상 무대는 우선 그 웅장한 규모부터가 관중을 제압했다. 물 위에서도 더블 스테이지를 연출할 뿐 아니라 달도 별도 만들어내는 재주가 놀라웠다. 중간 중간 남자성우의 음성으로 들려오는 백거이의 시어(詩語)는 중국어를 모르는 나에게도 힘 있고 운치있게 들렸다. '하늘을 나는 새가 되면 비익조가 되고, 땅에 나무로 자라면 연리지가 되자고 맹세했었지' 하는 장면은 우중에도 압권이었다.


물론 두 사람은 애초에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관계였다는 사실은 언급되지 않았다. 현종이 양귀비에게 과거의 인연을 지울 수 있도록 도가의 원리를 악용했다는 사실도 밝혀지지 않았다. 안록산과 양귀비의 특별한 관계도 공개되지 않았다. 쇼는 일관되게 두 사람의 비극적 사랑에 초점을 맞추어 양귀비에 대한 현종의 절절한 그리움으로 막을 내렸다. 관객들은 감동했고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화청지를 나오자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양귀비에게는 공개된 세 명의 남자가 있었다. 현종과 현종의 아들, 그리고 안록산이다. 그녀는 누구를 진정으로 사랑했을까? 저 세상 가서 혹시라도 양귀비를 만나게 되면 한국말로 살짝 물어봐야겠다. 꽃은 꽃이되 말을 알아듣는 해어화(解語花)라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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