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기획> 대구 소극장을 살리자
대명공연거리 등 지역 20여 개 소극장 침체일로
지원 끊기고 예산 줄어…"코로나 때보다 더 힘들어"
"소극장, 창작자와 분리된 운영 지원 지속돼야"

공연계의 뿌리이자 기초 예술의 산실인 대구 지역 소극장들의 죽어가고 있다. 현장 관계자들은 최근 소극장 상황이 코로나19 당시보다 더 힘들다고 말한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게티이미지뱅크>
영화·드라마·OTT 등 우리가 열광하는 모든 콘텐츠의 근간에는 사실 공연예술계의 뿌리인 소극장이 자리한다. 대구에는 지역 기초 공연예술의 상징적인 공간인 대명공연거리가 있다. '제2의 대학로'라 불리는 이곳은 소극장과 극단들이 집적된 비수도권 최대 규모의 공연예술 특화거리다. 이곳의 소극장에서는 다양한 형식을 실험하며 공연계의 지형을 바꾸고 무대와 객석의 새로운 관계를 열어 관객 저변을 확대해 왔다. 특히 배우 이성민 등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성장해 나간 인재 양성의 산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지역 기초 공연예술의 요람' 역할을 하던 대명공연거리 소극장들이 급격한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 공연 창작의 씨앗을 뿌리던 이 거리의 '침묵'은 지역 기초 공연계의 기반을 위협하는 심각한 경고음에 다름 아니다.

대명공연거리 모습. 계명대 대명캠퍼스 주변에 위치해 극단·화실·악기사 등 여러 장르의 예술 거처가 마련된 공연문화 특화거리다. <영남일보 DB>
◆'제2의 대학로' 있어도 코로나 때보다 힘들다
"비수도권에서 소극장이 가장 많은 곳이 대구입니다. 하지만 '제2의 대학로'라 불리는 대명공연거리의 명맥이 언제까지 이어질 지는 불투명합니다."
대구연극협회에 따르면 현재 대구에는 20여 곳 소극장(객석 300석 미만)이 있으며, 이 중 90% 이상이 대명공연거리에 밀집해 있다. 대구소극장협회 소속 극장은 14곳, 대구연극협회 소속은 13곳으로 집계된다. 이중 중구에 있는 여우별아트홀, 문화예술전용극장CT 등의 몇몇 극장은 음악·다원 등 여러 분야 무대를 올리기도 한다. 대명공연예술센터 기준 44개 공연 단체가 활동 중이며, 대구연극협회 정회원 극단만 29개, 일반 극단까지 합치면 50여 개 극단이 무대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침체일로를 걷고 있다. 조성 초기였던 2010년대에는 임대료 지원 등 각종 제도로 활기를 띠었지만, '자생력 확보'라는 명분 아래 점차 지원이 줄었다. 코로나19를 거치며 관객 발길은 더욱 줄었고, 최근 문화예산 삭감까지 겹치면서 "코로나 때보다 더 힘들다"는 현장의 절박한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물론 연극 등 순수예술은 수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다. 이나경 대구소극장협회장은 "하지만 예술은 공공의 의무이며 순수예술 특성상 지속적인 재정 지원과 환경 조성 사업이 없다면 버티기 어렵다"며 "지원금이 삭감돼 극장들은 명맥 유지조차 위태롭고, 거리가 조용해지자 상권까지 동반 침체를 겪고 있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소극장 지원 '0'…지역 특별 지원 정책 필요
특히 대구에는 소극장에 대한 지원이 전무하다. 이에 지역 소극장업계에서는 지역 소극장만을 위한 특별지원 정책이 필요하다고 촉구하고 있다.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 겸 연극평론가는 "소극장은 창작공간이기 때문에 연극 창·제작자 지원과는 달리 리모델링 비용·레퍼토리 지원·관객 개발·기자재 구입 등 공간 활성화 측면에서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각 소극장 특성화 전략을 살릴 수 있는 입체적 지원방안 모색이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반면 대전·부산·청주 등 타 지역의 경우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소극장 활성화사업을 이어가며 성과를 내고 있다. 대전은 올해로 16회째 '국제소극장연극축제'를 열고 있으며, 부산 남구는 2022년 10월 소극장 문화예술공연 활성화를 위한 조례를 제정했다. 또한 이를 근거로 지역 내 공공공연장을 제외한 300석 이하 소극장을 대상으로 △공연 홍보 △시설 개선사업비 △대관료 지원 등을 실시하고 있다.

김건표 대경대 교수 겸 연극평론가는 "한 소극장에는 대구 근현대 인물만을 레퍼토리로 공연하고, 다른 곳에서는 대구발 소극장형 창작뮤지컬을 실험적으로 접근하는 등 소극장 운영 특성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사진은 지난 7월 한울림소극장에서 진행된 '거기, 푸른 담쟁이 동산' 드레스 리허설 현장. <사진=정수민기자>
대전·부산 등 타지역에선 조례 등 지원정책 세분화
대구 지역 소극장 지원 전무…지역 특별정책 마련必
노후 환경 개선·장기적인 관심 등 다방면 지원돼야
◆연극진흥법 개정 시 안정적 지원 가능
이에 더해 지자체의 소극장 지원 노력에도 불구하고 관련 법령이 없어 제도적 기반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지자체의 개별적 지원 정책을 보완해 주는 '연극진흥법'과 같은 관련 법령이 부재하다는 것. 이는 기초 예술 정책의 지속성과 효율성을 저해하는 근본적인 한계로 작용한다.
김건표 교수는 "순수예술분야 지원만을 위한 연극진흥법, 조례, 관련 법령이 없어 중장기적 지원이 불가하다"며 지자체의 지원법령과 조례도 중요하지만 그 근거가 상위법령인 진흥법에 대한 중요도를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국연극협회에서 추진하고 있는 연극진흥법이 선제적으로 법률로 개정되면 지금보다 더 안정적인 지원과 순수예술들이 활성화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홍기 대구연극협회장도 "연극진흥법을 활용해 대구 지역에 조례를 제정한다면 창작 지원뿐 아니라 대관료, 소극장 월세 등 실질적인 부분을 지원받을 수 있다"며 "무엇보다 정권이나 예산 변화에도 안정적인 지원이 가능해 지역 예술인들의 의지를 북돋우고 소극장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명공연거리 모습. <영남일보 DB>
◆노후 환경 개선·관객 유치 방안 마련해야
공연에 관객이 없다면 지원도 무용지물이다. 사람들이 발걸음 하게 되는 '오고 싶은 거리'를 만드는 것이 선제적인 과제다. 정병수 극단 창작플레이 대표는 "2017년에 개관한 극장들이 많아 노후될 수 밖에 없다"며 "무대 장치보다는 관객들이 누려야 하는 기본적인 공간인 화장실 등의 개선 사업이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소극장 간판 교체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정 대표는 "소극장 간판이 주변 상점 간판에 묻혀 잘 보이지 않는다. 시민들이 공연장이 많다는 사실을 시각적으로 인지할 수 있다면 장기적인 관객 유치가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역 연극계 현장에서는 생태계가 선순환되려면 작품 개발이 지속돼야 하지만 그러지 못한 상황이라고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소극장 1곳 당 3~4개 극단이 상주하며 작품을 올릴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하고 유지비를 지원하는 방안을 고려해 달라고 요청했다.
전문 홍보 인력 지원과 공연 자료 데이터베이스 구축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이홍기 회장은 "콘텐츠가 있어도 전문 홍보 인력이 없어 연출가나 배우가 맡으니 효율이 떨어진다. 공연 자료가 차곡차곡 축적되지 못해 지역 순수예술의 역사적 발자취가 희석되고 있는 것도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지역 청년 예술가들은 지역을 떠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안정적인 환경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게티이미지뱅크>
◆지역 청년 예술가들 "장기적 지원·관심 필요"
지역 청년 예술가들이 지역을 떠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안정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것 역시 필수 과제다. 진흥원 청년 예술가 7기인 이상명 연출가는 "열악한 환경인 것은 사실이지만 청년 세대에게 중요한 건 큰 제작비가 아닌 대관료와 같은 최소한의 지원"이라며 "한 예술가가 성장하기까지는 최소 5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단기 성과로 재단하지 말고 장기적인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철원 극단 한울림 대표는 "기초 예술의 산실인 소극장이 사라진다면 공연의 근간을 잃는 것과 같다"며 "조금만 관심을 더 기울여도 경제적 효과가 크다. 불씨만 지피면 대한민국 공연 산업에도 큰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정병수 대표는 "소극장이 살아있어야 지역 예술 단체도 제대로 활동할 수 있다. 현장의 목소리를 잘 반영해 적절한 지원이 이루어지길 바란다"고 전했다.

정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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