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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강, 형산강] 도심 속 생태녹색관광 1번지

2025-10-28 19:10

강물따라 이야기따라 공영자전거 ‘타실라’ 타고 힘찬 페달

경주시에서 운영하는 공영자전거 타실라. 휴대폰 앱을 통해서 비대면으로 셀프 대여 및 반납이 가능하다. 타실라는 경주 시내와 자전거 도로 주변 곳곳에 설치된 100여 개의 대여소에서 만나 볼 수 있다.

경주시에서 운영하는 공영자전거 '타실라'. 휴대폰 앱을 통해서 비대면으로 셀프 대여 및 반납이 가능하다. '타실라'는 경주 시내와 자전거 도로 주변 곳곳에 설치된 100여 개의 대여소에서 만나 볼 수 있다.

경주 자전거도로 주변 대여소 100여곳

서천교~경주박물관 보행로 분리 안전

장군교~금장대 구간 장군교 벽화 눈길

소설 '무녀도' 배경 된 금장대도 보여

북천라이딩 코스는 체육시설 잘 갖춰

때는 바야흐로 볕 좋은 가을이다. 이른 아침부터 만난 우리는 김밥 한 줄씩을 무슨 전투식량처럼 옆구리에 꿰차고, 줄지어 늘어선 자전거를 바라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곳은 경주시외버스터미널 옆 자전거정류장. 그동안 형산강을 따라다니며 숱하게 봐왔던 바로 그 자전거, 경주시 공영자전거 '타실라'를 타기로 한 날이다.


휴대전화에서 '타실라' 어플리케이션을 깔고 단돈 1천 원에 1일권을 결제했다. 자전거를 하루종일 빌려 타는 데 겨우 1천 원이라니! 우리가 믿기지 않는 눈으로 경주 사는 화가를 쳐다보자, 그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한 술 더 뜬다.


"경주시민들은 다들 자전거 보험에 가입돼 있는 거 알아? 주소지가 경주로만 돼 있으면 별도로 가입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적용되는데 심지어 외국인들도 경주에 주소만 두고 있으면 혜택 받을 수 있다는 것!"


경주가 전국에서 자전거 타기 제일 좋은 도시라며 자랑하더니, 빈말이 아닌 듯했다. 경주시내와 형산강을 따라 이어지는 자전거 도로 주변 곳곳에 대여소만 무려 100여 개, 총 300여 대의 자전거가 준비돼 있다니, 왜 진작 자전거 탈 생각을 못했을까 후회가 될 지경이었다.


"자, 다들 준비됐지? 지금부터 강변라이딩의 진수를 맛볼 시간이야! 출발!"


형산강을 따라 조성된 자전거도로. 자전거 타기 좋은 도시 경주에서는 자전거도로와 보행로가 구간별로 분리돼 안전하게 자전거를 즐기기 좋다.

형산강을 따라 조성된 자전거도로. 자전거 타기 좋은 도시 경주에서는 자전거도로와 보행로가 구간별로 분리돼 안전하게 자전거를 즐기기 좋다.

◆서천교-월정교-국립경주박물관 '남천 라이딩'


자전거 페달을 밟자 순식간에 공기가 달라졌다.


자전거 타기는 몸의 감각에 가깝다. 한참을 타지 않아도 페달만 밟으면 몸의 기억이 금세 균형을 회복한다. 형산강을 따라가는 라이딩은 그 몸의 감각을 회복하는 데 안성맞춤인 곳이다. 처음에는 단지 열심히 바퀴를 굴릴 뿐이었는데, 어느 순간 강의 바람이 폐속으로 스며들고, 페달의 리듬이 강물의 흐름과 겹친다. 도시는 멀어지고, 대신 물의 호흡이 가까워지는 순간이다.


형산강 수변을 따라 서천교에서 국립경주박물관까지 이어지는 남천 자전거길은 구간별로 보행로와 분리돼 있어 비교적 안전하다. 경주 시민들에겐 출퇴근길이자 운동코스이고, 여행객들에겐 경주의 일상을 가장 가까이에서 체감할 수 있는 길이다. 월정교 앞 구간에 이르자 전망데크와 벤치가 보인다. 강을 바라보며 잠시 쉬어가기 좋다.


"겨레의 고운 얼 길러준 뿌리, 이어내린 이 천 년 거룩한 땅에 움트는 새싹들이 자라나는 곳, 아~ 우리 경주 박물관학교."


국립경주박물관에 다다르자, 화가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무려 작곡가 윤이상 선생님께서 곡을 붙인 박물관학교의 교가라고 했다. 정규 학교처럼 1년 과정으로 매 토요일마다 수업을 듣기 위해 이 길을 오갔는데 그때는 학원도 없고 놀 것도 없어 동네 아이들과 함께 박물관학교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곤 했단다. 가서 동네 우물에 무슨 역사가 있는지, 강물에는 또 어떤 이야기가 흘렀는지를 마치 전래동화처럼 흥미진진하게 들었는데, 그게 지나고 보니 다 신라 역사였다고 한다.


"그때 박물관 학교 선생님이셨던 윤경렬 선생님께서 정말 이야기를 재미나게 해주셨는데…. 학교 졸업하고 꼭 한번 인사드리러 가야지 했는데 결국 돌아가신 뒤에야 조문을 갔어. 그게 벌써 20년도 더 됐으니…."


우리는 동시에 페달을 멈추고 잠시 강을 바라보았다. 그때, 뭔가를 검색하던 화가가 나지막이 탄성을 질렀다. 이미 끝난 줄 알았던 '경주어린이박물관학교'가 지금도 계속 이어져 올해로 71주년을 맞았다는 것이다. 일상 속에서 고요히, 그러나 멈춤 없이 흐르는 역사. 아, 역시 경주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관개선사업을 통해 서천의 랜드마크가 된 장군교. 서천둔치는 시민들이 여가와 운동을 즐기는 곳이자 여행객들이 잠시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과거 열차가 다니던 철교였지만 현재는 시민 보행 전용 인도교로 재탄생해 밤이 되면 예술적 조형물이 조명과 함께 형산강 야경을 수놓는다.

경관개선사업을 통해 서천의 랜드마크가 된 장군교. 서천둔치는 시민들이 여가와 운동을 즐기는 곳이자 여행객들이 잠시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과거 열차가 다니던 철교였지만 현재는 시민 보행 전용 인도교로 재탄생해 밤이 되면 예술적 조형물이 조명과 함께 형산강 야경을 수놓는다.

◆장군교-금장대 '서천 라이딩'


다시 서천 쪽으로 돌아 나와 장군교 아래 이르러 우리는 옆구리에 꿰차고 있던 김밥을 풀었다. 1시간 이상 달리고 나니 배도 제법 출출하고, 무엇보다 벽화 아래 흐르는 형산강이 제법 운치가 있어 피크닉을 즐기기엔 그만이다.


김유신 장군의 벽화가 그려진 장군교는 시민 보행 전용 인도교라 그 아래로는 걷기 길도 잘 조성돼 있다. 조깅하는 사람, 자전거 타는 사람, 유모차를 끌고 산책하는 사람… 보고만 있어도 가을의 여유가 느껴졌다.


"어릴 적에도 이 김밥 싸들고 계림으로 자주 소풍 갔는데…."


달걀지단 가득 든 경주 명물 김밥을 먹으며 화가는 또 추억담을 늘어놓는다.


"그때는 이 김밥집이 진짜 조그만한 가게였거든. 물건 몇 개 없는 그런 시골 슈퍼 있잖아? 당시 근처 한식집인 요석궁에서 일하던 아가씨들이 밥을 제때 못 먹으니까 그런 슈퍼에서 그 아가씨들에게 김밥을 말아 판 거지. 근데 그게 영양가도 있고 너무 맛있어서 다들 그 집 단골이 됐단 말이야. 그땐 인심도 참 좋았어. 우리 같은 꼬맹이들이 우르르 몰려가서 김밥이랑 우동을 시키면 단무지 같은 게 아니라 집에서 담근 잘 익은 김치를 꺼내주셨지."


그리고는 그 우동과 김치, 김밥을 커다란 쟁반에 담아, 쟁반째로 들고 계림으로 소풍을 갔다고 했다.


강변라이딩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경주 형산강.  차량은 물론 오토바이 통행조차 금지된 장군교에서 자전거를 즐기는 시민의 모습.

강변라이딩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경주 형산강. 차량은 물론 오토바이 통행조차 금지된 장군교에서 자전거를 즐기는 시민의 모습.

그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마치 소설의 한 장면처럼 아스라이 그림이 펼쳐졌다. 우리가 앉은 서천 둔치에서는 김동리 소설 '무녀도'의 배경이 된 금장대가 저만치 보이는데, 소설 속에 등장하는 소녀 '낭이'도 소풍 가는 아이들 속에 섞여 있을 것만 같은 이상한 착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강 건너편으로 갈대숲이 천천히 바람에 흔들렸다. 바람이 불자 갈대가 한쪽으로 눕고, 그 사이로 왜가리 한 마리가 천천히 날아올랐다. 도심에서 불과 10분 거리인데도, 이곳에만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생태감수성이라고 하잖아. 이렇게 자연 속에 오래 있다 보면 그냥 느껴지는 거지. 과거도, 현재도, 자연도, 인간도. 그냥 느껴져. 경계가 흐릿해지면서 다 이해할 것 같은 기분. 여름이면 여기서 카약 타고 습지로 들어가는 생태 체험학교가 종종 열리는데 강 물살을 한번 몸으로 느끼고 나면 알 수밖에 없어. 아, 우리가 강과 습지를 지키는 게 아니라 강이 우리를 지키는구나…."


형산강변을 활용한 경주는 스포츠 명품 도시로 급부상하고 있다. 형산강변은 경주파크골프장 18홀과 북천 둔치를 활용한 알천파크골프장 18홀 등 산책로와 체육시설, 문화쉼터가 고루 갖춘 시민 휴식형 수변공간이다.

형산강변을 활용한 경주는 스포츠 명품 도시로 급부상하고 있다. 형산강변은 경주파크골프장 18홀과 북천 둔치를 활용한 알천파크골프장 18홀 등 산책로와 체육시설, 문화쉼터가 고루 갖춘 시민 휴식형 수변공간이다.

◆황성대교-경주교-알천교 '북천 라이딩'


형산강 자전거길은 형산강의 지류 중에서도 도시와 가장 가까이 닿아 있는 물길, 북천으로 이어진다. 특히 북천은 산책로 못지 않게 체육시설이 잘 갖춰져 경주시민들의 대표 여가공간으로 손꼽힌다.


"여기가 유소년 축구선수들과 동계 훈련지로 각광받는 곳이야. 스포츠는 굴뚝 없는 탄소제로 산업이라고 하잖아? 형산강변의 이 축구장이 관광비수기에 경주를 먹여살리는 효자 노릇 톡톡히 하는 셈이지."


이곳은 자전거를 타기에도 좋다. 탁 트인 구장을 옆에 끼고 페달을 밟고 있으면 걸리는 데 하나 없이 강 바람이 폐 속으로 바로 들어오는 것만 같다.


낮에는 자전거가, 아침 저녁으로는 조깅하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리듬을 만든다. 경주시가 이 일대를 '형산강 수변활성화 사업'의 핵심구간으로 지정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보문호로부터 내려온 물길이 형산강 본류와 만나는 이 지점에서 도시는 숨을 쉬고 있었다.


우리도 페달을 멈춘 채 한참을 강가에 앉아있었다. 이런 게 물멍일까. 형산강의 물결은 도시의 소음을 삼키듯 잔잔히 흘렀다. 바람이 부는 방향마다 다른 냄새가 났다. 풀 냄새, 강 냄새, 그리고 오래된 추억의 냄새. 이 모든 것이 한 데 섞여 경주를 이루고 있었다. 문득 이 강이 태아를 품은 어머니의 양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나긴 역사 속에서 수없이 출렁이면서도 푸르른 생명력을 품고 있는 것, 그 유유한 문화 속에서 우리의 오늘을 마음껏 유영하게 하는 것, 경주 형산강이다.


글=이은임 영남일보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공동기획 - 경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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