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메리카 서쪽 끝, 태평양의 바람이 부는 땅 페루. 고대 잉카 문명의 숨결이 여전히 살아 있었다. 세계유산인 마추픽추는 돌로 빚은 예술 그 자체였다. 빈틈없이 쌓인 거대한 돌들은 마치 잉카 민족을 지켜주는 수호신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화려한 성벽 뒤에는 수많은 노예의 희생이 있었다. '쌕사이와마'의 돌들에는 그들의 슬픔이었다.
페루는 광물, 바다, 산, 그리고 정글이 어우러진 풍요의 나라다. 독도와 닮았다는 베스타섬으로 가는 길, 모래언덕 위 거대한 지상화는 고대 미술의 신비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카 도시의 뒷산에는 끝없는 사막이 펼쳐져 있었다. 둔버기를 타고 한 시간을 달려 도착한 오아시스 '와카치나'를 그렸다.
페루는 1998년부터 APEC 회원국으로 가입해 아시아·태평양 지역과 활발히 교류하며 발전을 이어가고 있다. 2008년 대지진으로 건물들은 폐허가 되었고 국민 대부분이 공포와 트라우마 속에 살아가고 있었다. 그때 나는 여섯 개 도시를 돌며 미술을 통한 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자연재해의 무서움과 인간 회복의 힘을 동시에 배울 수 있었다. 나의 미술치유 퍼포먼스를 보며 반짝이던 아이들의 눈망울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들의 순수한 웃음이야말로, 상처 입은 땅 페루에 피어난 가장 아름다운 희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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