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용진 作
따뜻한 물 먹기 좋은 날씨
문 잠그고 이리 와요.
오늘 조용히 있어 줘서 고마워요. 나, 머리 깨지는 줄 알았거든요. 물이요? 그럼요. 당신이 챙겨 준 가루약도 잘 녹여서……
폭우가 쏟아지니까…… 머릿속에서 번개가 내리친다.
폭우가 쏟아지니까…… 당신이 잘 들리지 않아요.
아무렴. 어서 가거라.
마차는 떠나라고 있는 거지.
그에게 안부를 전해 주렴.
다정하게 이 마차를 맞이하라고.
비바람 피해는 없으신가요?
우리 아버지는 폭풍이 온다는 걸 잘도 알아챘지. 그는 한바탕 쏟아질 때마다 중얼거렸다. "기쁜 마음 가득 안고 초대에 응했지만 결국 빈손으로 돌아가리라……"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희망.
다음 생에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희망.
시시해.
재미있는 말 좀 해봐요.
제 선물은 아직 드리지도 못했는걸요. 당신이 괜찮다면 지금 드릴게요.
……불 끄고 날 봐요.
"비바람이 언제 지나가겠습니까? "
보지 못하는 자와
듣지 못하는 자가
서로 부축하며 계단을 마무리할 때……
"인간의 마음은 언제 마취되겠습니까?"
취한 두 발이 육체를 집으로 끌고 갈 때……
다들 정신이 없나 보군.
쥐구멍을 찾아 헤매는 꼴이라니.
작은 마부여.
마차는 그곳에 잘 도착하였는가.
신통하다니요. 우리 아버지는 그저 비바람 피하는 데에 재주가 있었을 뿐이죠. 그는 마을에서 가장 유명한 떠돌이였는걸요. 보잘것없이 낡은 배낭을 메고요. 네? 아버지는 우리 집 정원에서 눈을 감았어요.
나는 우리 아버지가 피하지 못한 최초의 비바람이었습니다.
선물을 드리겠습니다. 불을 끄고 날 봐요.
제발 더 늦기 전에
날 좀 보라고요!
먹구름이 없다면
비바람은 무엇을 믿고 살아가야 하나.
너는 알고 있느냐. 나의 손보다
작은 발을 가진 마부여.
하지만 이런 선물은 이상하구나. 네가 내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인 게 수십 번은 더 되는데……
마치 지금 처음 보는 것 같구나……
제9회 영남일보 구상문학상 수상시집 '이것은 천재의 사랑'. <타이피스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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