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망원동 화재’ 계기로
성당 청년회원들 탁아시설 건립
“너는 세상에 오직 하나 뿐인 꽃”
감나무골이 30여년 가르친 철학
“아이들의 자존감 높여주고 싶어”
토크인사이드/ 이춘희 감나무골 지역아동센터장
아이와 부모가 행복한 세상, 더 나은 공동체의 내일을 위해 일생 현장을 지켜온 활동가 이춘희 감나무골지역아동센터장이 환하게 웃고 있다. /김은경 기자
아이와 부모가 행복한 세상, 더 나은 공동체의 내일을 위해 일생 현장을 지켜온 활동가 이춘희 감나무골지역아동센터장이 환하게 웃고 있다. /김은경 기자
1990년 3월 10일, 대한민국은 커다란 충격에 빠졌다. 서울 망원동에서 맞벌이 부부가 일 나간 사이에 어린 남매가 화마로 불에 타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가난한 부모는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지하 단칸방에 아이를 두고 밖에서 문을 잠근 채 일터로 갔다. 불이 난 사건 현장은 끔찍하고 참혹했는데, 쇠창살이 박힌 창문 앞에서 아이들은 서로를 꼭 껴안은 채 발견됐다. 가수 정태춘이 노래로도 만들었던 이 슬픈 사건은 이춘희 감나무골 지역아동센터장의 인생을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남매의 죽음, 우리사회 공동의 문제"
"'아이들이 죽어갈 때 우리는 무엇을 했나' 라는 부끄러움이 가슴을 쳤어요. 정태춘의 노래 '우리들의 죽음'이 들릴 때마다 잠을 이룰 수 없었죠. '이웃을 사랑하라'는 성경 말씀이 공허한 메아리가 되지 않으려면, 지금 당장 우리 곁의 아이들을 지켜야 했습니다."
당시 이 센터장이 소속된 대구시 동구 신암성당 청년회는 매우 돈독한 관계로 유명했다. 개인적 신앙생활은 물론 사회적 이슈에도 남다른 관심을 가진 신앙공동체였다. 회원들은 어린 남매의 죽음이 가난한 부모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죽음이라는 데 뜻을 모으고 커다란 결단을 내리게 된다.
1991년 5월, 이 센터장은 성당의 청년회원들과 바자회를 열고, 탁아방 전세금 2천만원을 모아 대구시 북구 대현동의 낡은 한옥집에 '감나무골 아가방'의 문을 열었다. 아이를 돌보는 시설이기 이전에, 가난 때문에 아이를 방에 가두고 문을 잠궈야 했던 부모들을 향한 처절한 연대의 손길이었다.
◆미싱공장 출근 맞벌이 부부가 고객
성당 청년회원들의 마음과 마음이 모여 문을 연 아가방은 오픈하면서부터 대현동 지역에 입소문이 쫙 퍼졌다. 해가 뜨기도 전에 아가방 문앞에는 젊은 엄마, 아빠들로 북적였다. 인근 미싱공장 등으로 출근하는 맞벌이 부부가 주된 고객이었다.
"어머니들은 늘 미안해하며 아이를 넘겨주셨어요. 그때는 출퇴근 시간도 딱히 없었어요. 칼같이 퇴근하고 돌아올 수 없는 그들의 사정을 알았기에, 밤 8시가 넘도록 아이를 품에 안고 골목 끝을 바라보는 게 제 일상이었죠. 그때 깨달았습니다. 돌봄은 단순히 시간을 때우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생존을 지탱하는 가장 낮은 곳의 받침대라는 것을요."
아가방을 운영하는데 순탄치만은 않았다. 아이들이 늘어나며 좀 더 넓은 공간으로 이사를 준비하던 중, 집주인이 전세금을 들고 잠적하는 청천벽력 같은 사건이 터졌다. 90년대 초반, 활동가들에게 수천만원은 목숨과도 같은 돈이었다.
"눈앞이 캄캄했죠. 하지만 그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함께 활동하던 청년들, 그리고 형편이 넉넉지 않던 공동체 식구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적금을 깨서 들고 왔어요. '우리가 여기서 멈추면 아이들은 다시 방 안에 갇힌다'는 그 일념 하나로요. 돈이 아니라 마음이 그 공간을 다시 세웠습니다."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
감나무골아가방은 기존의 보육시설과 전혀 다른 개념의 운영으로 관심을 모았다. 단순히 아이를 맡아주는 '보육'에서 시작해, 부모의 변화를 이끄는 '교육'으로, 그리고 아이들의 성장을 끝까지 책임지는 '방과 후 돌봄'으로 확장한 것이다. 궁극적으로 건강하고 생태적인 삶의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는 선순환 과정을 구축했다.
"처음엔 애들만 잘 돌보면 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밤늦게 아이를 데리러 오는 부모들의 지친 얼굴을 보니, 그분들의 마음을 먼저 돌봐야 아이들이 행복해지겠더라고요. 그래서 '부모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단순히 애 키우는 법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서로의 고단함을 위로하고 '우리가 이 마을의 부모'라는 자부심을 심어주는 시간이었죠."
성당 교우들과 부모들이 한데 어우러져 '집단 지성'을 발휘하기 시작하자 아가방의 담장은 더욱 낮아졌다. 부모들과 교사들은 정기적으로 만나 공부하고, 대화하고, 지혜를 모았다. 어느 순간부터 부모들은 순번을 나눠 반찬봉사를 하는 등 탁아방 운영을 내 일처럼 챙겼다.
아가방에서 걸음마를 뗀 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되자, 이 센터장은 또 한 번 활동의 범주를 넓혔다. 갈 곳 없는 초등학생들을 위해 '방과 후 시설(공부방)'을 열어 아이들의 학습과 정서까지 책임지기 시작한 것이다.
◆몸도 마음도 쇠약 '번아웃'
20여 년을 쉼 없이 현장에서 보낸 이 센터장에게 한계가 찾아왔다. 모든 에너지를 타인에게 쏟아부은 탓에 몸과 마음이 '번아웃' 되었던 것. 활동가로 살아온 시간이 길었던 만큼 몸도 쇠약해져 있었다. 2012년, 그는 결국 짐을 싸서 그토록 소중히 지켜온 현장을 떠났다. 누군가는 도망이라 했지만, 그에겐 살기 위한 선택이었다.
"현장을 떠나있던 10여년 동안 저는 '평화'를 공부했습니다. 갈등을 어떻게 대화로 풀어낼 것인가, 상처 입은 관계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등을 치열하게 고민했죠. 경찰서에서 갈등 당사자들을 중재하고, 학교폭력 현장에서 회복적 정의를 실천하며 저는 깨달았습니다. 결국 모든 평화의 시작은 '아이들의 마음'에 있다는 것을요."
감나무골을 떠나 있는 시간은 활동가 이춘희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조직 내에 있을 때는 미처 볼 수 없었던 것들이 보였으며, 도저히 풀 수 없었던 문제들도 톡톡 해답을 내놓았다. 이 센터장은 떠난 지 10여년 만인 지난 2023년 다시 감나무골로 복귀했다.
◆절대적 빈곤 사라졌어도 상처 여전
10년의 공백을 깨고 다시 돌아온 현장은 예전보다 더 정교한 상처들을 품고 있었다. 절대적 빈곤은 사라졌지만, 관계의 빈곤은 더 깊어졌다. 이 센터장은 최근 만난 한 고등학생 아이와의 대화를 잊지 못한다.
"사고뭉치에 거칠기만 하던 아이는 대화 모임 중에 '나는 안 소중해요'라는 말을 툭 던졌어요. 가슴이 무너졌죠.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혼나기만 한 아이는 스스로를 버리고 있었던 거예요. 저는 포기하지 않고 매일 말해줬습니다. '이모한테 너는 정말 소중해. 이모는 너를 믿어.' 1년이 지나고 그 아이가 사람들 앞에서 '처음으로 내가 편안해졌다'고 긴 소감을 말할 때, 온 선생님들이 함께 울었습니다."
이 센터장은 올해 감나무골 지역아동센터가 다시 도약하는 꿈을 꾼다. 인근 도서관, 노인복지센터와 손을 잡고 마을의 어른들이 아이들의 성장을 돕는 '마을의 집'을 꿈꾼다. 또 예전에 감나무골을 만들고 키웠던 후원자, 봉사자 등을 모아서 새로운 연대의 손길을 모색하고 있다.
"어릴 때 여기서 컸던 제자가 학교 선생님이 되어 결혼하고, 이제는 자기 자식을 다시 이곳에 보내겠다고 연락이 와요. 감나무 한 그루가 자라 이제는 숲이 된 기분입니다. 저는 그저 그 숲의 작은 길잡이로 기억된다면 더 바랄 게 없습니다."
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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