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 들어설 예정이었던 대구 동구 율하동 일원 대규모 공터 부지가 20년 가까이 녹슨 철조망에 갇힌 채 '도심 속 섬'으로 방치되고 있다. 지금은 잡초와 쓰레기만 무성한 초대형 흉물이 되버린 것. 학교를 지어야 할 대구시교육청은 손을 뗐고, 부지를 소유한 LH나 관할 동구청은 아직 마땅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인근 주민들의 한숨소리만 커지고 있다.
지난 2일 대구 동구 율하1지구의 학교 부지 경계를 따라 펜스가 설치돼 있고, 그 너머로 잡초가 무성한 모습. 최시웅기자
◆지하철역 옆 '7천평 쓰레기장'…주민들 "속았다"
지난 3일 문제의 장소를 직접 찾았다. 대구도시철도 1호선 율하역 2번 출구를 나와 5분 남짓 걸으니 아파트 단지 사이로 기묘한 풍경이 펼쳐졌다. 아파트 숲과 번듯한 대로변 사이에 축구장 3개 면적(2만4천㎡·7천200평)의 거대한 공터가 드러났다. 녹슨 철조망 펜스에 갇혀 있었다. 펜스 안엔 잡초가 무성하고 온갖 건설 자재와 쓰레기가 가득했다. 부지 한편엔 LH의 가설 컨테이너가 있었다. 이곳에 상주하는 관리인들의 주된 업무는 개발 준비가 아닌 혹시 모를 '무단 경작 단속'이었다.
이 곳은 2008년 율하1택지개발지구 조성 당시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들어서기로 했던 학교용지다. 역세권에 공원·대형마트와 수천 세대 아파트 단지가 인접해 있다. 이른바 '노른자 위 땅'이자만 18년째 '출입금지' 팻말만 붙어 있다.
주민 배모씨는 "아파트 입주 당시만 해도 학교가 들어온다는 말에 분양이 잘 됐다. 젊은 부부와 아이들이 많이 사는 데 학교 설립은커녕 20년 가까이 저렇게 방치돼 있다"며 혀를 끌끌 찼다. 학부모 김모씨도 "이사 올땐 우리 아이가 아파트 근처 학교에 갈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있었다. 결국 아이는 다른 학교로 진학했다"며 "공식적으로 학교 설립이 무산됐다는 설명 한마디 없이 속절없이 시간만 흘렀다"고 했다.
대구 동구 율하동 1100번지와 1101번지는 도시계획상 각각 초등학교, 중학교 용지로 설정돼 있다. 국토교통부 '토지이음' 캡처
◆교육청 '해제 통보', LH '용역 중', 동구청 '소극적'
당초 대구시교육청이 부지를 매입해 학교를 설립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2017년 중학교 부지(1101번지), 2021년 초등학교 용지(1100번지)에 대한 용도 해제를 시사하며 학교 건립에서 발을 뺐다. '인구절벽' 문제로 학교 설립 요인이 사라져서다. 2000년대(2000~2009년) 390만명(연 평균)에 달하던 대구지역 학령인구(만6~12세)는 2010년대(2010~2019년)엔 285만명으로 27%나 감소했다. 지난해 학령인구는 고작 234만명에 불과하다.
학교 건립에 제동이 걸리자 LH는 2018년 당시 중학교 용지에 '신혼희망타운' 설립을 추진했다. 정부의 신혼부부·청년 주거지원 방안 확대정책에 따른 것이다. 2022년까지 10만호 공급 계획을 세웠지만 지역 사회의 반대로 결국 무산됐다. 이후 해당 부지에 관리인을 배치, 일단 수습에 나섰지만 부지 활용에 대한 근본 해결책은 요원한 상태다.
LH 관계자는 "현재 율하동 땅을 포함해, 대구경북권 미매각 용지 활용방안에 대한 용역을 진행 중이다. 올 상반기 내 마무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용역은 구체적인 사업계획이 아닌 '제안' 수준이다. 지자체와 협의된 내용은 없고, 단순 참고용 자료"라고 선을 그었다.
동구청도 소극적 행정으로 일관하고 있다. 부지 활용에 대한 민원이 꾸준히 접수되고 있지만, 구청 차원의 직접적 관여나 사업 구상엔 어려움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동구청 측은 "부지 활용은 소유자인 LH가 실질적인 방안을 가져와야 할 사안"이라고 했다.
구의회는 주민들을 위한 공익적 활용 방안을 찾아야 한다며 목청을 높였다. 동구의회 김동규 의원은 "교통 요충지인 이곳에 주민들이 갈망하는 체육·문화시설 등을 유치해 지역의 활력을 되찾아야 한다. LH의 결단과 대구시, 동구청의 적극적인 행정력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최시웅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