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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여자는 영정사진 못 듭니다”…여전한 가부장제 장례문화

2026-03-05 19:20
전통적 장례문화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지만, 남성이 장례를 주도해야 한다는 관습으로 여성이 상주 역할을 포기하거나 장례 절차 전반에서 소외되는 경우가 여전하다. <게티이미지뱅크>

전통적 장례문화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지만, 남성이 장례를 주도해야 한다는 관습으로 여성이 상주 역할을 포기하거나 장례 절차 전반에서 소외되는 경우가 여전하다. <게티이미지뱅크>

#1 "여자는 영정사진 못 듭니다." 지난해 아버지를 떠나보낸 윤모(여·29)씨는 아버지 장례를 지내던 중 이런 말을 들었다. 화장장으로 이동하기 직전 윤씨가 맨 앞에서 영정사진을 들겠다고 나서자, 장례지도사는 고개를 저으며 "남자는 없느냐"고 물었다. 아들 없이 딸만 둘인 집안이었다. "제가 하겠다"고 거듭 말했지만 돌아온 답은 "안 된다"였다. 주변에 있던 친척들이 "그럼 아내가 해야 하느냐"고 묻자, "미망인은 더더욱 안 된다"는 말까지 이어졌다.


#2 직장인 최민지(31)씨는 할아버지 장례식에서 부조금을 받는 자리에 앉아 있다 핀잔을 들었다. 생전 할아버지와 한집에서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친척 어른으로부터 "네가 왜 거기 앉아 있냐"는 면박을 당했다. 결국 최씨는 자리를 비웠고, 그 자리엔 사촌 남동생이 앉았다. 최씨는 "제가 여자라서 그 자리에 앉을 수 없다는 식의 분위기였다"며 "할아버지를 가장 가까이에서 모신 손주였는데 부조금 받는 자리에마저 앉지 못한다는 게 허탈했다"고 말했다.


전통적 장례문화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지만, 실제 장례 현장엔 가부장제 문화가 강하게 스며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이 장례를 주도해야 한다는 관습으로 여성이 상주 역할을 포기하거나 장례 절차 전반에서 소외되는 경우가 여전하다. 장례를 경험한 여성들은 장례문화가 '관습'을 이유로 사회의 성평등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조사 결과 장례에서 상주는 남성이 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응답이 59.9%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한국정책연구원 가부장적 가정의례 문화의 개선을 위한 정책방안 연구: 장례문화를 중시으로 보고서 중>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조사 결과 '장례에서 상주는 남성이 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응답이 59.9%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한국정책연구원 '가부장적 가정의례 문화의 개선을 위한 정책방안 연구: 장례문화를 중시으로' 보고서 중>

2020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장례 경험이 있는 20~50대 1천312명을 대상으로 한국 장례문화의 성불평등성에 대한 태도를 조사한 결과, '상주는 남성이 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약 59.9%('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포함)였다. 상당수의 시민이 남성 중심의 장례문화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가수이자 작가인 이랑씨는 언니의 장례식에서 양복을 입고 완장을 찬 채 상주 역할을 맡았다. 이씨는 당시 SNS에 "빈소에서 여자는 상주를 못한다 하기에, '저 여자 아닙니다' 했더니 바로 양복과 완장을 주더라"며 "제겐 언니에게 어울리는 모습으로 장례를 이끄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고 밝혔다. 이어 "고인이 원하는 방식으로, 성별과 관계없이 식을 대표할 수 있는 장례문화를 만들어가자"고 써 화제와 공감을 모았다.


가수이자 작가인 이랑씨. 언니의 장례식에서 상주를 서고 완장을 차 화제와 공감을 모았다. <이랑씨 SNS 캡처>

가수이자 작가인 이랑씨. 언니의 장례식에서 상주를 서고 완장을 차 화제와 공감을 모았다. <이랑씨 SNS 캡처>

실제 현장은 사뭇 다르다. 호주제가 폐지된 지 20년이 지났음에도 큰 딸 대신 작은 아들이 상주를 서고, 딸만 있는 집에서는 사위가 대신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조사 결과 상주의 역할, 영정과 위패 들기, 의사결정 권한 등을 남성이 맡고 있다는 응답은 약 95%에 달했다. 외동딸인 정혜주(34)씨도 아버지 장례식에서 상주를 서겠다고 하자 '그건 네 몫이 아니다'는 말을 들었다. 정씨는 "아버지 돌아가신 자리에 괜히 불편한 상황을 만들기 싫어서 넘어갔고, 결국 사촌오빠가 상주를 섰다"며 "정작 하나뿐인 자식인 제게 상주 자격이 없다는 게 이상했다"고 털어놨다.


여성은 부조금을 받는 자리에도 앉기 힘들다. 맨 앞에서 영정사진을 들거나 관을 운구할 때도 남성이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죽음에 장례는 급하게 치러지고, 장례식 특유의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이런 관례에 문제를 제기하기는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여성들 사이에선 가족과 장례 방식을 미리 논의하려는 움직임도 나온다. 또 다른 외동딸인 김정윤(25)씨는 "여성들도 아직까지 상주는 남성이 맡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는 것 같다"며 "당장 우리 집안만 봐도 그럴 것 같아 어머니와 시간을 따로 내 상주는 내가 맡겠다는 이야기를 하려 한다"고 말했다.


가부장제 장례문화에 관련해 여성들은 사회의 성평등 의식에 맞는 장례문화가 확산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게티이미지뱅크>

가부장제 장례문화에 관련해 여성들은 사회의 성평등 의식에 맞는 장례문화가 확산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게티이미지뱅크>

이런 장례문화와 관련해 여성들은 사회의 성평등 의식에 맞는 장례문화가 확산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정씨는 "사회 전반에 성평등 담론이 확산한 지 오래지만, 장례문화처럼 '관습'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영역에서는 차별이 문제로조차 인식되지 않는 것 같아 답답하다"며 "이제는 이런 관행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성평등한 장례문화를 위해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시대에 맞지 않는 가부장적이고 성불평등한 장례문화는 개선이 시급하다"며 "장례지도사 등 장례인력 양성과정에 다양한 가족에 대한 이해도와 성인지 감수성을 높일 수 있는 커리큘럼이 포함돼야 한다"고 꼬집었다. 또 "사회와 가족 변화를 반영한 장례문화 확산을 위한 홍보·캠페인 분야에서의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허창덕 영남대 교수(사회학과)는 "요즘은 딸만 있는 가정도 많아졌고, 가족의 형태가 바뀌고 있다"며 "문화는 맹목적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조와 함께 바뀌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회 구조가 달라진 만큼 장례식에서 여성이 영정사진을 들고 관을 운구하는 일 역시 자연스러운 변화"라며 "오히려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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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희

문화부 조현희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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