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성인 51.6% 중졸 학력 미달
비장애인의 4배, 학령기 교육 공백이 성인기 격차로
장애인야학 질라라비, 학교이자 쉼터이자 연결고리
공공교육이 채우지 못한 틈에서 자립생활 기반 다져
17일 대구 최초 장애인야학인 질라라비 장애인 야학에서 장애인들이 미술수업을 하고 있다.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대구·경북에서 수십 년 전 학교 문턱을 넘지 못한 채 어른이 된 사람들이 있다. 장애가 있었고, 시대가 그랬고, 제도가 없었다. 이동할 수단도, 특수교육 지원도, 장애를 학생으로 받아들이는 사회의 준비도 부족했던 시절에 많은 장애인은 교실 바깥에서 학령기를 보냈다. 장애 성인의 '배움의 부재'는 단순한 학력 결손을 떠나, 어느새 일상적 사회참여에 어려움을 겪는 구조적 장벽이 됐다. '배움의 손길'을 원한 이들은 그렇게 '장애인 야학'으로 향했다. '배움의 터전'을 통해 제때 보장받지 못한 학습권을 뒤늦게나마 보장받으며, '배움의 기대와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대구 유일 '장애인야학'…질라라비 야학
17일 대구 최초 장애인야학인 질라라비 장애인 야학에서 장애인들이 일본어 수업을 하고 있다.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17일 오전 9시30분쯤 질라라비 장애인야학 4층 교실(대구 동구 괴전동). '야학'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이른 아침부터 수업이 시작되고 있었다. 대구 최초 장애인야학으로 학교 형태의 장애인평생교육시설인 만큼 '배움엔 시간이 없다'는 철학이 묻어났다. 이곳에선 학력인정 과정 교과 수업과 미술·일본어 프로그램이 한창이었다. 수업 중인 한 교실로 들어가자 장애 성인들이 공책 위에 천천히 글자를 따라 적기 바빴다. 교사 설명은 일반 학교보다 느렸지만 더 분명했다. 학습자 곁에 앉은 활동지원사가 대기 중인 모습도 눈에 띄었다. 미술 프로그램 교실에 들어서자 학습자들은 색연필과 사인펜을 쥔 채 도안의 빈칸을 하나씩 메우고 있었다.
2년 전 질라라비 야학에 입학한 학생 최상열(71)씨는 "처음엔 글도 모르고 이름도 제대로 못 썼는데, 학교에 다니면서 하나씩 배우는 재미가 생겼다"며 "아직도 처음으로 내 이름을 쓸 수 있게 됐던 순간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이어 "예전에는 지하철을 타도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 몰라 늘 겁이 났는데, 이제는 혼자서도 노선을 보고 타고 내릴 수 있다"며 "학교에 오면 공부도 하고 사람도 만나고 하루가 생긴다. 집에만 있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르다"고 했다.
질라라비 장애인야학 조계숙 팀장은 "장애 성인들은 이곳에서 공부를 배우는 동시에 사람을 만나며 활기찬 생활 리듬을 이뤄낸다"며 "탈시설 이후 자립 생활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이곳을 알게 된 경우가 많다. 자녀나 친인척, 복지관 소개를 통해 오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말했다.
질라라비 야학이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모습이었던 것은 아니다. 2000년 문을 연 질라라비는 원래 밤에 자원봉사 교사들이 장애 성인들을 가르치는 소박한 야학으로 출발했다. 지원금도, 전용 건물도, 제도적 뒷받침도 없던 시절이었다. 질라라비가 지금의 주간형 학교 체계로 자리 잡은 결정적인 전환점은 2018년이었다. 전국 최초로 장애인 대상 초등 학력인정 과정이 생기면서 오전 수업이 시작됐다. 이후 2021년 중학 학력인정 과정도 추가됐다. 지금은 오전 학력인정 과정, 오후 평생교육 과정, 수요일 학습동아리, 금요일 문화예술 수업으로 이어지는 주 5일 체계를 갖추고 있다.
질라라비 장애인야학 조민제 교장은 "이곳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열린 교육이라는 의미답게 학교 형태를 갖추고 있지만, 야학이 가진 기본 이념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여기서 '야학'의 '야'는 밤을 뜻하는 '야(夜)'가 아니라 들판을 뜻하는 '야(野)'를 쓴다"며 "수업은 초·중등 문해와 학력인정 과정, 평생교육 프로그램으로 나뉜다. 한 반 최대 정원은 7명이다. 오전·오후를 모두 이곳에서 보낸다. 현재 재학생은 70명이고, 교직원 8명과 강사 17명 등 25명이 학교 운영을 맡고 있다"고 말했다.
◆'학교는 아픔이었다'… 장애 성인의 학습권
대구 최초 장애인야학인 질라라비 장애인 야학에 다니는 학생들이 그린 작품들이 복도벽에 전시돼 있다.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2024년 발표된 보건복지부 장애인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전국 25세 이상 장애인 중 중학교 학력 미달 비율은 51.6%에 달한다. 장애 성인 두 명 중 한 명이 의무교육 수준의 학력을 갖추지 못한 셈이다. 같은 지표상 비장애인 비중(12%)과 비교하면 네 배가 넘는 수치다.
장애 성인의 배움 공백은 개인 선택보단 신체적·구조적 체계가 영향을 미치는 편이다. 이 보고서에서 장애 성인들이 학교에 진학하지 못했거나 중도에 그만둔 이유로는 장애로 인한 학습 수행 곤란이 43.4%로 가장 많았다. 이어 경제적 어려움이 41.6%, 가족의 반대와 사회적 편견이 12.8% 등으로 나타났다.
인천대 전지혜 교수(사회복지학과)는 '시대가 만든 구조적 사각지대'가 이 같은 현상을 초래한 것으로 분석했다. 전 교수는 "현 60~70대 어르신들은 어린 시절 비장애인·장애인 모두 배움길이 좁았다. 그러나 시대가 지날수록 비장애인들의 교육 문턱은 낮아진 반면, 장애인들의 교육 문턱은 여전히 높다"며 "각 시대에 장애에 대한 관점과 교육의 역할이 바뀌어 가면서 장애인들의 교육권도 비장애인과 대등해지는 때가 이미 왔어야 하는데, 정책적 관심도나 사업 의지 등 여러 방면에서 아직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장애 성인의 학습권을 일반 평생교육 체계 안에만 맡겨두기엔 한계가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계명대 전미진 교수(사회복지학과)는 "장애 성인은 학습 방식과 의사소통, 이동 여건이 제각각이어서 획일적 프로그램만으로는 실질적 학습권 보장이 어렵다"며 "결국, 장애인 학습권 보장을 위해선 별도의 맞춤형 교육 기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비장애인을 기준으로 짜인 일반 평생교육 체계 안에선 장애 성인의 학습 수요가 쉽게 주변화될 수밖에 없다"며 "장애 유형과 생애주기를 반영한 별도 지원 체계가 있어야 학습권의 사각지대를 줄일 수 있다"고 했다.
구경모(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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