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건강과 자아에 대한 작은 보고서
정재걸 대구교대 명예교수
나이가 들면 노인 대부분은 건강을 최고로 믿는 건강교 신도가 된다. 어느 모임이든지 건강이 대화 주제의 중심을 차지한다. 노인은 이런 모임을 통해 건강에 대한 경험과 정보를 교환한다. 건강에 대한 염려와 함께 나이가 들면 자아에 대한 민감성도 증가한다. 노인은 작은 일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화를 참지 못하는 분노조절장애자가 되기도 한다.
건강과 자아는 우리가 가장 확실하다고 믿는 것들이다. 우리는 '나는 건강하다', '나는 아프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말하며 세계와 소통한다. 그런데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건강과 자아는 단단한 실체라기보다 특정한 조건 속에서 잠시 떠오르는 감각과 해석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그것들이 분명한 실재처럼 느껴지는 순간은 어떤 균열이 발생했을 때이다. 평소에 우리는 건강을 거의 의식하지 않는다. 숨을 쉰다는 사실, 심장이 뛴다는 사실, 관절이 움직인다는 사실은 주의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건강은 경험되는 것이 아니라 배경으로만 존재한다. 마치 공기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지만 평소에는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건강은 '느껴지지 않음'이라는 방식으로 존재한다. 그러다가 통증이 생기고, 열이 오르고, 몸이 제 기능을 잃는 순간 비로소 우리는 건강을 떠올린다. 그때 건강은 하나의 대상이 된다. 잃어버린 무엇, 회복해야 할 무엇으로 의식 속에 등장한다.
이 역설은 건강이 실체가 아니라 관계적 상태임을 암시한다. 건강은 어떤 물건처럼 몸 안에 들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몸과 환경, 습관과 시간, 균형과 흐름이 조화를 이루고 있을 때 드러나지 않는 상태다. 즉 건강은 '있음'이 아니라 '문제없음'에 가깝다. 그래서 건강을 강하게 자각하는 순간은 이미 그 균형이 흔들렸다는 신호다. 건강이 실재처럼 느껴질수록 우리는 사실 건강에서 멀어지고 있는 셈이다.
자아 역시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늘 '나'로 살아가지만, 평소에는 자아를 의식하지 않는다. 몰입하여 일을 할 때, 누군가와 깊이 대화할 때,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감탄할 때 우리는 오히려 자신을 잊는다. 그 순간에는 '나'라는 중심이 희미해지고 경험 자체만이 남는다. 그러나 상처를 받거나 비교 속에서 불안해질 때, 혹은 타인의 시선이 두려울 때 자아는 갑자기 또렷해진다. '나는 과연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존재인가', '나는 왜 인정받지 못하고 있을까'라는 질문이 떠오른다.
이때 등장하는 자아는 고정된 본질이라기보다 방어적 구성물에 가깝다. 상처를 설명하고 불안을 통제하기 위해 마음이 만들어낸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자신을 하나의 일관된 존재로 이해하려 하지만, 실제 경험 속의 우리는 상황마다 달라지고 관계마다 변한다. 어린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는 동일하지 않으며, 어제의 감정과 오늘의 생각은 이어져 있으면서 동시에 단절되어 있다. 자아는 흐름을 하나로 묶기 위해 붙여진 이름일 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다.
이처럼 건강과 자아는 모두 '문제의 발생'과 함께 강화된다. 몸이 고통스러울수록 우리는 몸을 의식하고, 마음이 흔들릴수록 우리는 자아를 붙잡는다. 통증은 몸을 대상화하고, 불안은 자아를 고정된 것으로 느끼게 만든다. 우리에게 발생한 문제는 실체의 환각을 제공하고, 균형이 깨질 때 원래 없던 중심을 만들어 그것을 회복해야 할 진짜라고 믿는다.
어쩌면 삶의 본래 모습은 실체가 아니라 흐름에 더 가까운 것인지 모른다. 건강은 끊임없이 변하는 조율의 과정이며, 자아는 경험들이 잠정적으로 엮이며 생기는 이야기다. 강물은 같은 이름으로 불리지만 한순간도 같은 물로 이루어져 있지 않듯이 우리는 동일한 '나'라는 이름 아래 계속 달라지면서 흘러간다. 건강 역시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매 순간 새롭게 형성되는 균형의 흐름이다. 건강과 자아를 지나치게 붙잡으려는 태도 자체가 고통을 낳는다. 완벽한 건강을 소유하려는 욕망은 작은 변화에도 불안을 낳고, 확고한 자아를 유지하려는 집착은 삶의 유연성을 잃게 만든다. 건강은 잊힐 때 가장 충만하고, 자아는 희미할 때 가장 자유롭다.
건강과 자아가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은 그것들이 무의미하다는 뜻은 아니다. 그것은 삶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언어이지만, 존재의 궁극적 기반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것은 지도이지 영토가 아니며, 이름이지 사물 자체가 아니다. 우리가 그것을 절대적이고 고정된 실체로 착각할 때 고통은 시작된다. 가장 건강한 상태란 건강을 생각하지 않는 상태이며, 가장 충만한 자아란 자아를 잊는 순간이다. 삶은 붙잡을 중심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중심 없이도 계속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우리는 이미 건강하고 자유롭고 충만하게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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