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배 지휘자
지난 4월3일 금요일, 세상의 혼란스러운 소식들 속에서 잠시 고요한 날을 맞이하였다. 오랜만에 독일 집에서 보내는 '성금요일(Karfreitag)'. 유럽을 비롯한 대부분의 그리스도교 국가에서 이날을 엄숙한 공휴일로 지정하고 있는데, 특히 독일은 법적으로 음악, 춤 등의 유흥이 금지된 '고요한 휴일'로 지켜진다. 모든 상점과 식당의 셔터는 내려갔고 광장의 활기는 자취를 감추었다. 이 지독한 정적은 인위적이라기보다, 사회가 약속한 거대한 성찰의 방처럼 느껴진다.
성금요일 예식을 준비하며 제의실에 꺼내놓은 제의가 눈에 들어왔다. 사제가 입을 선명한 붉은빛은 피의 상징이자, 숭고한 희생의 상징이다. 옷걸이에 고요히 걸려 아래로 길게 늘어진 그 두꺼운 옷감의 수직적인 무게감은, 마치 땅을 향해 쏟아지는 묵직한 눈물처럼 보인다. 한국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이 낯선 침묵의 날에, 나는 그 붉은 제의의 무게 끝에서 머나먼 섬 제주의 흙바닥 위로 툭, 툭, 송이째 떨어지던 붉은 동백꽃들이 떠올랐다.
동백. 동백꽃은 가장 찬란한 순간에 시들지도 않고 꽃송이째 땅으로 떨어진다. 78년 전, 제주 도민 열 명 중 한 명꼴로 쓰러져갔던 4·3 사건. 영문도 모른 채 차가운 흙바닥 위로 사라진 그 고독한 영혼들의 모습은, 소리 없이 낙화하는 동백의 처연함과 너무나도 닮아 있다. 사제의 붉은 제의가 '수난'을 기억하는 침묵의 언어이듯, 제주의 붉은 동백은 우리 모두가 잊지 말아야 할 아픔의 상징인 것이다.
독일의 성금요일이 강제하는 이 고요함 속에서 질문을 던져본다. 왜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이토록 아리게 기억해야 할까? 수십 년간 말 한마디 꺼내지 못한 채 가슴 깊이 피눈물로 묻어두어야 했던 섬사람들의 비극은 결코 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오늘 우리가 누리는 이 평화의 뿌리이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남겨진 이들의 도리이기 때문이다.
모든 소리가 잦아든 이 고요 속에,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을 나직하게 떠올려본다. 이 곡을 마주할 때마다 생각하게 되는 것은, 죽은 자의 영혼을 심판하는 무거운 위엄의 보통의 레퀴엠과 달리 브람스는 산 자들의 슬픔을 보듬는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라는 약속에 이어, 마음을 가장 깊게 파고드는 가사는 바로 이것이다. "어미가 자식을 달래듯이 내가 너희를 위로하리라." 사제의 붉은 제의가 가진 상징적 의미보다 더 따스하게 남겨진 이들의 슬픔을 감싸안는 이 선율은, 비극을 기억하는 우리의 조용한 기도 또한 누군가에게는 다시 살아갈 용기가 될 수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가 마주하고자 하는 세상은, 그 붉은 색채의 무게를 외면하지 않는 마음에서 시작되지 않을까? 비극을 기억하는 마음이 깊을수록, 그 위에서 피어날 평화의 선율은 더욱 단단해질 것이다. 예술가가 작품의 굴곡진 서사 속으로 깊이 들어가 그 인물의 삶을 온몸으로 겪어내듯, 4월의 동백꽃이 품은 비극을 우리의 감각으로 가만히 안아보았으면 한다. 타인의 고통을 나의 숨결로 느껴보려 애쓰는 그 찰나의 공명이야말로, 우리가 함께 지어낼 수 있는 가장 고요하고도 아름다운 화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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