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 대신 데이터로…미래 농업 표준 세우는 청년농부들
아내와 정착한 농학석사 출신 서지원씨
AI 자율제어 시스템·치유농업 등 관심
대기업 박차고 농업에 도전 유경원씨
자동화로 최적의 생산환경 조성 강조
경기도서 온 식품연구원 출신 임철씨
데이터 기반 안정적 생산관리에 집중
2022년 문을 연 상주 스마트팜혁신밸리는 농업도시 상주의 상징이 됐다. 스마트팜혁신밸리는 청년 창업보육센터, 임대형스마트팜, 청년 농촌보금자리 등 교육부터 정착까지 스마트 농업인을 길러내는 공간이다.
봄의 문턱에서 아침저녁으로 찬 바람이 불지만, 상주 스마트팜혁신밸리의 온실 안은 계절을 잊은 지 오래다. 시설 내부를 잠시 걷는 것만으로도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는 것은 온실의 온도 때문만은 아니다. 이곳을 가득 채운 것은 '경험과 직관'이라는 농업의 오래된 문법을 깨고, '데이터와 과학'으로 무장한 청년 농업인들의 뜨거운 열기다.
상주시는 현재 스마트 농업의 확산을 넘어, 미래 농업의 표준을 정립하는 거대한 실험실로 변모하고 있다.
◆스마트팜 생태계 강화할 핵심 인력 양성
상주 스마트팜혁신밸리 청년창업보육센터에서는 6기까지 212명의 수료생을 배출했고 지금은 7기 교육이 한창이다. 수료생 중 136명이 창농했다.
이곳에서 세 명의 청년 농업인을 만났다. 두 명은 경영실습 중인 7기 교육생이고 한 명은 4기로 수료해 임대형 스마트팜에서 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배경이나 계기는 모두 다르지만, 이들은 모두 지난해 처음으로 실시한 스마트농업관리사 자격증 시험에 합격했다. 전국에서 33명이 합격했는데, 이 셋을 포함해 상주에서만 네 명이 합격했다.
스마트농업관리사는 앞으로 상주의 스마트팜 생태계를 강화할 핵심 인력이다. 기존 농업이 농부의 오랜 '경험과 직관'에 의존했다면, 스마트농업관리사는 온·습도, 일사량, 이산화탄소 농도 등 수많은 데이터를 분석해 작물별 최적의 생육 환경을 도출하는 '데이터 기반 농업 전문가'다.
상주 스마트팜혁신밸리 온실에서 오이를 따고 있는 서지원씨. 서씨는 아내와 함께 상주 스마트팜혁밸리 창업보육센터를 4기로 수료하고 이곳에 정착해 농업에 매진하고 있다.
◆아내와 함께 도전한 스마트팜
4기 수료생인 서지원씨(33)는 임대온실에서 오이를 재배하고 있다. 농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아내의 제안으로 시작했다. 서씨는 농학을 전공해 석사학위까지 갖고 있었지만, 농업과 전혀 관련이 없던 아내가 오히려 적극적이었다. 그렇게 서씨와 아내는 함께 상주 스마트팜혁신밸리의 교육생이 됐다.
서씨는 처음에 토마토 재배를 생각했다. 음식으로, 재료로서의 토마토를 좋아해서였다. 교육도 토마토에 관한 과정을 거쳤지만 지금은 오이 재배로 선회했다. 대신 아내가 토마토 재배의 길을 걷고 있다.
스마트팜에 대한 서씨의 소신은 뚜렷하다. 그는 "스마트농업이 많은 학문과 기술의 융복합"이라고 했다. 시설 골조의 공학적 측면, 작물의 생육이라는 생물학적 측면, 농장주로서의 경영적인 관점과 각종 장비와 같은 기술이 한데 섞인 복합체라는 뜻이다.
스마트농업관리사 자격증을 딴 만큼, 그는 '스마트'한 것에 관심을 두고 있다. 기존의 환경제어가 데이터를 이용해 '입력'한 것을 조건에 맞게 출력하는 것이었다면, 서씨가 눈여겨 보고 있는 차세대 스마트농업 소프트웨어는 AI가 스스로 데이터를 분석해 농장의 환경을 제어하는 것이다.
스마트화된 '생산' 이후도 생각하고 있다. 서씨는 오이를 재배해 판매하는 데만 그치지 않고 체험농장이나 치유농업으로, 고부가가치 농업으로의 전환도 고려하고 있다.
서씨는 상주에서 가정을 꾸리고 스마트팜 혁신밸리 안의 청년농촌보금자리 숙소에 거주해 상주에 정착했다. 그는 "후배 농업인을 교육하는 것도 농업인의 역할"이라며 "교육이나 많은 제도와 법률이 농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금이 바로 농업에 도전할 적기"라고 전했다.
온실의 지열냉난방장치를 살펴보고 있는 유경원씨. 화학 대기업에서 최연소 팀장 자리를 꿰찼던 유씨는 농업으로 진로를 바꿨다.
◆대기업 팀장, 토마토에 빠지다
화학 대기업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며 최연소 팀장으로 이름을 날렸던 유경원씨(40)는 토마토를 기르고 있다. 직장을 박차고 나와 농사에 도전한 것은 농업을 블루오션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유 씨는 상주가 농업도시로서의 이점을 설명하며 상주에서 농업인이 되기로 한 이유를 말했다. 그는 "상주에서는 일반 농가도 스마트팜 운영이 흔하다"며 "포도와 오이·배·감·감자 등 작물이 다양하고 농업종사자가 많으니 분위기나 시너지 형성으로 장점이 있다"고 했다.
유씨는 스마트팜을 '외부와 다른 새로운 환경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각종 수치, 즉 데이터에 따라 자동으로 온도·습도·관수(灌水) 등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 농산물을 생산하는 일종의 공장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그는 "'더운 것 같으니, 건조한 것 같으니'처럼 느낌이 아니라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자동화가 핵심"이라고 짚었다.
유씨는 이와 관련해 배움을 강조했다. 유씨는 "농업 역시 생물을 다루는 것이다 보니 표준에서 벗어날 때가 많다. 모든 상황과 변수에 대비해야 한다. 자기만의 경험, 그리고 학습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작물 영상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본인이 조성한 환경과 영상의 환경이 다를 수 있는데, 자신만의 배움이 없으면 다른 사람의 말에 휘둘리게 된다"고 조언했다.
유씨 역시 서지원씨처럼 "임대형 스마트팜이라는 좋은 시설이 있으니 쉽게 정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상주시, 농업기술센터, 농협의 협력과 인프라가 농업인에게 아주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도 내비쳤다.
온실에서 토마토의 상태를 확인하는 임철씨. 경기 여주시에서 온 임씨는 농식품을 연구하다 영농의 길로 들어섰다.
◆식품연구원의 꿈은 스마트영농인
임철씨(39)는 경기 여주시에서 상주 스마트팜혁신밸리의 교육생으로 왔다. 원예과학 석사 학위를 가진 임씨는 농식품연구원과 식품기업의 기술원으로 10년 이상 일했다. 농업에 손을 뻗기 전부터 그는 식물을 기르고 가꾸곤 했다. 성격이나 취향, 체질도 영락없는 농업인이다. 행복한 영농생활이 그의 꿈이다.
그는 농업이야말로 노력하는 만큼 결실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능동적이라면 농장주, 수동적이라면 단순노동자일 뿐"이라며 "일을 할수록 얻는 것도 많아진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하게 된다"고 결의를 드러냈다.
임씨는 상주 스마트팜혁신밸리를 "의지만 있다면 교육생이 얼마든지 배울 수 있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여주에서 상주로 온 것도 평온한 농업도시의 분위기에 매료됐다"면서 "상주시는 교육생에 대해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경험을 전했다.
임씨가 처음 귀농을 마음먹고 상주로 왔을 때 주요 작물로 멜론을 염두에 뒀지만, 토마토로 선회했다. 토마토가 스마트농업에 더 적합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멜론에 비해 토마토가 스마트팜을 통한 생육환경 최적화가 더욱 용이하고 이를 통해 더욱 안정적인 생산량 관리와 매출을 관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임씨는 스마트농업을 과학이라고 말했다. 그는 "생물학의 일부분이며, 많은 데이터를 쌓아 경향을 파악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 데이터, 즉 자료들을 모아서 최신화하면서 예측·측정·설정값을 조절해 완성도를 높여나가고 있는 분야"라고 말했다.
상주 스마트팜 혁신밸리 전경. 상주시는 이곳에서 네 명의 스마트농업관리사를 배출했고 그들을 통해 앞으로 상주의 스마트팜 생태계를 강화할 요량이다.
이들 세 명의 스마트농업관리사는 스마트농업이 발전할수록 사람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마트농업 덕에 인간의 노동이 줄었다고 생각하는데, 아직은 수확에는 사람이 직접 열매를 따는 경우가 많다.
유경원씨는 "관리가 잘 되니 수확량도 많고 그만큼 손도 많이 간다. 수확작업을 대체하는 피지컬 AI 등이 최근 늘어나고 있는데, 빨리 상용화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서지원씨와 임철씨는 "AI를 활용한 농업은, 양은 물론 수확물의 질을 늘릴 수 있는 연구에도 시간을 쏟을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을 전했다.
◆데이터를 통해 생명과 교감하는 농업
지금도 우리 손 안에 있는 것, 바로 스마트폰이다. '스마트폰'이 된 것은 스스로 데이터를 처리하거나 판단하는 능력을 갖추면서 지능형 전화기가 됐다는 의미다. 그 '스마트'가 농업에도 적용된다. 화면을 터치해 자동으로 물을 주거나 스크린으로 햇볕을 가리던 상상은 이제 현실이 됐다.
과거 '컬러 TV'라는 단어가 기술의 혁신을 상징했지만, 지금은 당연히 'TV'라고 부르듯 농업의 미래도 같은 궤적을 그리게 될 것이다. 2007년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세상에 내놓으며 '스마트폰'이라는 개념을 대중화시킨 이후, 이제는 '스마트'라는 수식어 자체가 생략될 만큼 기술은 우리 일상에 녹아들었다. 그렇게 '스마트팜'에서 '스마트'라는 단어가 떨어져 나가고 그저 평범한 '농장'으로 불리게 될 날도 멀지 않았다.
상주 스마트팜혁신밸리에서 만난 세 명의 청년 농업인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스마트농업은 단순한 자동화가 아니라, 데이터를 통해 생명과 교감하는 과학"이라고. 인공지능(AI)이 스스로 최적의 환경을 분석하고, 로봇이 수확을 돕는 풍경은 더 이상 상상 속의 미래가 아닌 상주의 오늘이다.
글=박준상기자 junsang@yeongnam.com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박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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