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원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문학평론가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치료 중에는 안구운동에 의한 탈감각화 재처리법이라 불리는 것이 있다. 충분히 이완된 환경에서 치료자가 손가락 끝을 좌우로 움직이면 환자가 손가락의 움직임을 안구만으로 좇는데, 그 사이 환자는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동시에 그것이 옅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고 한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미술관 관람이 떠올랐다. 정신과 몸을 자극하는 것들이 넘쳐나는 도심에서 미술관의 정적과 고요는 심리적 안도감을 선사하는 특별한 시간을 제공한다. 더구나 그림을 보는 일은 자연스럽게 이완된 상태에서의 안구운동을 유발시킨다. 그림을 보고 난 후 느끼는 어떤 해방감을 우리는 특별한 작품들이 인도한 무엇으로 파악하고는 하지만, 실은 그림의 미감과 세계를 깊이 경험하기도 이전에 저 미술관의 분위기와 관람 행위가 우리를 이미 어떤 치료적 과정을 경험하게 이끄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니 이번에는 독서행위가 떠오른다. 글자를 따라 자연스럽게 안구를 움직이는 행위가 어쩌면 글이 묘사하는 상황과 설명에 대한 연상뿐 아니라 각자의 마음에 저장된 어떤 상처와 고통을 끌어내는 일일 수도 있겠다. 특히나 인간의 고통에 예민한 문학작품들은 문학의 언어가 가닿은 세계의 고통과 독자가 자신도 모르게 내면 깊은 곳에 숨겨둔 개인의 고통을 교류시키는 작업을 가능하게도 하겠다.
미술관을 관람하든지 독서를 하든지 두 행위는 어찌되었든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보는 여유를 제공한다. 그러고 보면 생의 한 순간에 일어난 사건의 상처가 너무 깊어 시선을 딴 곳으로 돌리지 못한 채 사건의 장면만을 반복해서 응시하는 사람들이 곧 PTSD를 겪고 있는 이들이 아닐까.
젖은 비둘기를 안고 낮에 아이가 찾아왔다/ 억지로 물에 넣었냐고 했다/ 아이는 나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해질녘에 산양을 안고 아이가 찾아왔다/ 다리를 다쳤냐고 했다/ 누구 다리냐고 물을 수 없었다/ 한밤에 까마귀를 머리에 얹고 아이가 찾아왔다/ 살아 있다/ 새어 나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이원 시인의 '애플스토어'라는 시이다. 물에 젖은 생명을 안고 어른으로 보이는 자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아이의 모습에 어떤 항변이 담겨 있다. 그 항변은 살아 있는 생명을 억지로 물에 넣었냐는 어른의 물음을 당신들의 짓이라고 되돌려주는 듯하다. 두 번째 아이는 아픔을 품고 우리를 찾아와 이 아픔은 특정한 사건의 당사자들에게 한정될 만한 성격이 아님을 알려준다. 그리고 마지막 아이는 삶을 박탈당한 생명과 그런 비극을 불러온 문제들이 여전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당부하는 듯하다.
시인은 이 시를 2015년에 발표했다. 세월호 참사가 이 땅에 일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쓰인 시인 셈이다. 십 년이 넘은 시간이 지났지만 저 시의 의미는 여전히 현재적이다. 아픔을 안고 서른이 된 아이들에게 이 시는 오래전 기억과 관련한 작품이 아니라 오늘 벌어진 일을 쓴 것처럼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유가족들과 피해자들에게 삶의 다른 장면을 보여줄 책임은 공동체에 있다. 세월호 참사 기억식에 처음 참석한 대통령 소식을 듣고 늦은 일이면서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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