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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부르디외의 증손자

2026-04-22 06:00
이창수 유락·야행성동물 대표

이창수 유락·야행성동물 대표

들어보았는가. 이 이름을 안다면 아마 '응?' 했을 것이다. 몰랐어도 마찬가지겠지만 아무튼 20세기를 풍미한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내 대학 시절 선생님(김성현)의 선생님(이브 드잘레이)의 선생님이다. 말하자면 내 (아주 먼) 학문적 증조부인 셈이다.


물론 나는 그의 얼굴 한 번 본 적 없고, 깊이 공부하지도 않았으며, 논문도 없다. 하지만 기회만 되면 이 사실을 사방팔방 떠벌리고 다닌다. 따져보면 거짓말도 아니고, 이렇게 떠벌리는 것 자체가 그가 만든 '아비투스'나 '상징자본'을 영리하게 써먹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뚱딴지같겠지만 조금만 더 들어보시라. 부르디외의 개념은 쉽게 말해 '압력'에 관한 이야기다. 상상해보자. 이곳은 경찰서. 제복 입은 무표정하고 험상궂은 얼굴들이 바삐 오간다. 분명 잘못 하나 없는데 걸을 때마다 침이 꿀떡 삼켜진다. 모두가 나를 향해 "이곳은 네가 있을 곳이 아니야!" 말하는 것만 같다. 물론 내게 그런 말을 하거나 신경 쓰는 사람은 없다.


이 풍경이 와닿지 않는다면 백화점 명품관이나 고급 레스토랑을 떠올려보자. 눈치 볼 필요 없는데 왠지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 않던가? 그런 공기, 그런 압력을 만드는 것이 바로 '아비투스'다. 특정 무리의 몸에 자연스럽게 배는 태도와 습관, 취향이 현대사회 권력 작동의 핵심이라고 부르디외는 보았다. 이것이 정당성을 획득하면 '상징자본'이 된다.


얼마 전 한 대학에서 졸업반 학생들 대상으로 강의를 부탁해왔다. 명목은 글쓰기지만 학생들 역량 강화가 목적이라고 했다. 취업이 얼마나 어려워진 시기인가. AI가 거의 모든 일자리를 앗아가는 상황. 이런 판국에 뭘 얘기해줘야 그나마 서로에게 의미 있을 것인가.


내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하고도 실질적인 조언은 결국 이 '압력'을 예민하게 읽어내라는 것이다. 알고리즘 시대의 도래는, 거꾸로 이를 거부하는 것이 특별한 인간상이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세상이 가하는 압력의 존재를 감지하고, 기꺼이 이겨내는 것. 그것이 지금 시대 학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무기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 부르디외 책을 꺼냈다가 여기까지 이른 것이다.


급류처럼 휘몰아치는 AI의 시대. 뭘 해야 할지는 모르겠는데 해야는 할 것 같고 그 사이에서 자꾸만 위축되는 개인. 나만 해도 그럴진데 취업이 막막한 학생들은 더 하겠지. 하지만 그것이 전혀 당연하지 않은 '압력'임을 깨닫는 순간, 우리의 눈앞에는 새로운 광경이 펼쳐진다. 이것이 내가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자, '유락'을 통해 증명하고자 하는 증조부의 가르침이다. (아주 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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