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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바다에 새겨진 붉은 투혼…‘호국보훈 성지’ 영덕 재조명

2026-05-05 20:59

장사상륙작전부터 영해 3·18까지…동해안에 새겨진 호국의 역사

경북 영덕의 바다는 눈부시게 푸르다. 그러나 그 고요한 수평선 아래에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몸을 던진 이들의 치열한 역사가 겹겹이 쌓여 있다. 영덕의 땅에는 6·25 전쟁의 전세를 뒤바꾼 장사상륙작전의 포화부터 일제강점기 강산을 울렸던 구국의 함성까지 목숨을 바쳐 대한민국을 지켜낸 호국 영웅들의 숭고한 정신이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 오는 6월 호국보훈의 달에 앞서 영덕이 품은 그날의 기억과 잊힌 영웅들의 숨결을 다시 깨워보고자 한다.


- '인천'을 위해 스스로 미끼가 된 아이들, 장사상륙작전의 의미

그 출발점은 1950년 한국전쟁의 분수령이 된 장사상륙작전이다.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한 기만술로 성공 가능성이 극히 낮은 임무인 '작전명 174호'가 전개되었다. 이 작전의 주역은 정규군이 아닌 훈련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772명의 군번조차 없었던 어린 학도병들이 9월 14일 새벽, 태풍이 몰아치는 영덕 장사리 해안의 전장에 투입됐다. 부산에서 출발했던 상륙함 문산호가 태풍 '케지아'의 악천후 속에서 좌초되고 적의 집중 포화가 이어지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이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경북 영덕군 남정면 장사리 앞바다 위에 재현된 문산호(LST)의 전경. 1950년 장사상륙작전 당시 학도병들을 실어 나른 상륙함을 길이 90m, 높이 26m, 2천t급 실물규모로 복원한 기념관으로 전쟁의 긴박함과 숭고한 희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남두백 기자)

경북 영덕군 남정면 장사리 앞바다 위에 재현된 문산호(LST)의 전경. 1950년 장사상륙작전 당시 학도병들을 실어 나른 상륙함을 길이 90m, 높이 26m, 2천t급 실물규모로 복원한 기념관으로 전쟁의 긴박함과 숭고한 희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남두백 기자)

대부분 14~17세의 어린 학생들이었던 학도병들은 파도를 헤치고 상륙해 북한군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적 5사단과 고지 쟁탈전을 벌이며 후방을 교란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6일간 이어진 전투에서 139명이 전사했지만 이들의 희생은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이끄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한때 잊혀졌던 이 전투는 한국전쟁사의 판도를 바꾼 가장 위대한 '양동작전'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때 생존한 학도병들은 지난 2000년 '장사상륙작전 참전 유격동지회'를 결성하고 매년 기념식을 거행하고 있다. 당시 류병추 회장을 비롯한 생존 회원들은 인터뷰를 통해 "이 작전의 성공이 있었기에 인천상륙작전도 가능했다"라며 이름 없이 쓰러져간 동료들에 대한 그리움을 전했다.


영덕군은 이러한 역사를 기억하고 계승하기 위해 지난 2020년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관을 조성했다. 장사 해변에 정박한 듯 서 있는 거대한 군함 '문산호'는 이제 전승기념관으로 재탄생해 그날의 기억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이곳은 국내 유일의 바다 위 호국 전시관으로 지난해 7월 대대적인 리뉴얼을 거쳐 첨단 미디어아트와 실감형 콘텐츠를 갖춘 몰입형 공간으로 거듭났다.


전시관 내부는 학도병들의 유품과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재현한 디오라마와 증언 영상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1층에서는 작전의 배경과 긴박했던 전개 과정을 4개의 테마로 살펴볼 수 있으며 2층은 전투의 종료와 그 이후의 기록을 담고 있다.


영덕군 조광운 시설사업소장은 "기념전시관은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위해 장사상륙작전에 참전한 호국영령들이 정신을 가슴에 새기고 계승 발전시키기 위한 호국안보 체험의 장"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역사적 재조명의 배경에는 장사상륙참전기념사업회의 헌신도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은 오랜 기간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던 학도병들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증언을 기록하고 기념사업을 이어왔다.


지난 2025년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공원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장사상륙참전기념사업회 관계자 및 유격동지회원들(장사상륙참전기념사업회 제공)

지난 2025년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공원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장사상륙참전기념사업회 관계자 및 유격동지회원들(장사상륙참전기념사업회 제공)

기념사업회 최종인 이사는 "유격동지회원 중 현재 다섯 분만이 생존해 계시고 모두 95세 이상이다"라며 "매년 열리는 전승기념식을 이제 전국 단위의 보훈 행사로 확대해 국민적 공감대를 이뤄내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장사리 해변에서는 매년 9월 13일이면 또 하나의 장엄한 장면이 펼쳐진다. 영덕 불교계가 장사상륙작전의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수십 년째 주관하는 위령제다. 잔잔한 독경 소리가 바다를 타고 퍼지고 향 연기가 하늘로 오르면 이곳은 전몰용사들의 넋을 기리는 거대한 추모 공간으로 변한다.


특히 위령탑 비문은 세계적인 고승 서경보 스님의 글씨로 나라를 위해 희생한 영령들이 만대의 수호신이 되기를 기원하는 간절한 게송이 담겨 있다.


위령제를 이끄는 영덕불교사암연합회 현담 스님(서남사 주지)은 "이곳은 어린 학도병들이 꽃잎처럼 스러진 성지"라며 "그들의 넋을 위로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무"라고 강조했다. 그는 "영령들이 편안히 쉴 수 있도록 매년 정성을 다해 기도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장사상륙작전은 문화 콘텐츠를 통해서도 다시 조명되기도 했다. 곽경택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2019년 개봉한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은 학도병들의 시선에서 전투를 그려내며 대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선비의 의기에서 3.18 만세운동까지: 구국의 혼, 영덕을 깨우다

그러나 영덕의 호국 정신은 장사상륙작전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 뿌리는 구한말 의병운동과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표적인 인물이 영남의 선비정신을 항일 투쟁으로 승화시킨 벽산 김도현 선생이다. 선생은 을사늑약 체결 이후 국권 침탈에 분노하며 상소를 올리고 영릉의병진을 결성하여 경북 일대에서 일제에 맞서 싸운 불굴의 의병장이었다.


선생은 1910년 경술국치로 국권을 상실하자 단식을 시작했고 1914년 마침내 영덕 창포리의 바다로 걸어 들어가 순국(도해단, 蹈海壇)하며 선비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켰다. 그의 '도해(蹈海)'는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일제에 대한 가장 강력한 저항의 표현이었다.


경북 영덕군 영해면 대진리 산수암 도해단에 위치한 벽산 김도현 선생 도해비 사당. 을사늑약 이후 국권 회복을 위해 의병활동에 나섰던 선생이 1914년 도해순국한 뜻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추모 공간이다(남두백 기자)

경북 영덕군 영해면 대진리 산수암 도해단에 위치한 벽산 김도현 선생 도해비 사당. 을사늑약 이후 국권 회복을 위해 의병활동에 나섰던 선생이 1914년 도해순국한 뜻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추모 공간이다(남두백 기자)

이러한 숭고한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매년 10월 11일 영해면 대진리 산수암 도해단에서 '벽산 김도현 선생 도해순국 추모행사'를 개최하면서 선생의 절개와 희생을 되새기는 뜻깊은 자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도해순국의 강인한 저항 정신은 1919년 영해 3.18 만세운동으로 계승되었다.


1919년 3월, 영해 장날을 기해 일어난 이 운동은 기독교와 천도교 세력이 결합하고 지역 선비들이 가세한 민·관합동 투쟁이었다. 일제의 탄압에 수천 명의 주민들이 영해 주재소를 습격하고 독립을 외친 이 사건은 경북 지역에서 가장 격렬하고 규모가 컸던 항일운동으로 평가된다. 당시 8명이 현장에서 순국하고 수백 명이 옥고를 치렀을 만큼 영덕 사람들의 독립 의지는 뜨거웠고 그 함성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매년 3월 17일부터 18일 전후 3·18기념탑 일원에서 기념식이 열린다. 이 행사는 독립정신을 계승하는 동시에 지역민이 함께하는 화합의 장으로 자리 잡고 있다.


1919년 영해 시가지에서 펼쳐진 3·18 독립만세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현충시설. 수천 명의 주민들이 참여한 항일운동의 정신을 기리고 있으며 매년 기념식이 열리는 지역 대표 독립운동 상징물이다(남두백 기자)

1919년 영해 시가지에서 펼쳐진 3·18 독립만세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현충시설. 수천 명의 주민들이 참여한 항일운동의 정신을 기리고 있으며 매년 기념식이 열리는 지역 대표 독립운동 상징물이다(남두백 기자)

한규상 영해3.18독립만세운동기념사업회장은 "당시 수천 명의 주민들이 일제에 물러서지 않고 독립을 외친 상징적인 사건으로 이 정신을 기억하고 하나로 묶어 다음 세대까지 이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장사상륙작전과 도해순국, 영해 3·18 만세운동으로 이어지는 역사는 영덕만의 독특한 호국 DNA를 형성하고 있다. 영덕군은 이를 단순한 과거의 기록으로 남기지 않고 다양한 기념행사와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현재와 미래로 이어가고 있다.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라는 말처럼 영덕은 기억을 넘어 체험하고 공감하는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 동해의 파도에 스며든 이름 없는 영웅들의 이야기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평화의 가치와 공동체의 의미를 다시금 새겨본다.(글·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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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두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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