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부부, 역경 딛고 맺은 인연 그러나 2세는 또 다른 벽
수치로 확인되는 유전 가능성·현실 부담 이중 압박
저출생 대응 정책에서 여성 장애인의 특수성 반영돼야
시각장애인 김우진, 김계란 부부가 결혼과 출산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김현목 기자
지난달 말 대구 북구 한 안마원. 시·청각 장애인 김우진(48)씨를 만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김 씨의 일터이자, 직접 운영하는 곳이다. 이날 시각 장애가 있는 부인 김계란(52)씨도 함께 만날 수 있었다. 처음 마주한 순간 두 사람의 장애 여부를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았다. 밝은 표정과 자연스러운 동작에서 '다름'을 느낄 수 없어서다. 아내는 안경을 착용하고 있었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큰 불편은 없어 보였다.
◆'함께라서 버텼다' 장애를 넘어선 결혼
김우진 씨는 시각 1급 장애인이다. 빛의 밝고 어두움과 희미한 움직임 정도만 겨우 구분할 수 있다. 여기에 청각장애까지 겹쳐 양쪽 귀에 보청기를 착용하고 있다. 아내는 망막변성과 황반변성, 초고도 근시가 겹친 찻에 사물을 발 앞에 가까이 갖다대야 식별할 수 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2011년이다.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영화 문화 모임에서다. 비장애인 자원봉사자가 귓속말로 장면을 설명해주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처음엔 그냥 누나와 동생 같은 사이였다. 연애 기간은 2년 남짓이었지만 결혼까지는 5년이 걸렸다.
김 씨의 시력 이상은 학창 시절부터 시작됐다. 단순한 시력 저하로 생각해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군 입대도 별다른 제약 없이 이뤄졌다. 하지만 복무 중 시력이 급격히 악화됐다. 결국 복무를 마치지 못했고 장애 판정도 받았다. 시력을 잃어가던 시기, 그는 '삶의 밑바닥'을 경험했다고 털어놨다. 사람들의 오해와 편견, 반복되는 실패, 생계 압박이 한꺼번에 밀려온 것이다. 부산에 머물 때 '홀로 서기'를 시도했지만 과중한 노동과 스트레스로 건강은 더 악화됐다.
아직 연인사이가 아니었던 시절. 아내가 혼자 기차를 타고 부산에 있던 그를 찾아왔다. 김 씨는 "그때는 제가 전맹(全盲)으로 진행되던 시기였고 가장 힘들 때였다"며 "하지만 혼자서 기차를 타본 적 없던 사람(지금의 아내)이 먼 길을 찾아 왔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그냥 내 곁에 있어주는 이 사람과 평생을 함께하고 싶었다"고 했다.
결혼을 결심한 후에도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양가 부모의 반대가 커서다. 김 씨 어머니는 비장애인 며느리를 원했고, 처가에선 더 나은 조건의 배우자를 희망했다. 약혼식까지 잡았다가 파혼을 선언하는 일도 있었다. 결국 두 사람이 각자 집안 어르신을 설득을 이어간 끝에 겨우 결혼을 허락받았다.
2016년 10월 30일 마침내 결혼식을 올렸다. 같은 해 2월 문을 연 안마원과 함께 삶도 점차 안정되기 시작했다. 현재 두 사람은 대구 시각장애인 사회에서 '잉꼬부부'로 통한다.
김 씨는 결혼 전부터 14년째 '아름다운 동행' 후원회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현재는 회장직을 맡고 있다. 시각장애인이 중심이 돼 한부모 가정이나 항암 치료 중인 이웃에게 연 2회 후원금을 전달하고 있다. 월 회비는 1만 원 수준이지만 회원은 100명에 육박하고 이월금도 1천만 원을 넘었다. 그는 "우리가 받은 도움을 조금이나마 주위에 나누고 싶다"고 했다.
시각장애인 김우진, 김계란 부부가 2세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고 있다. 김현목 기자
◆'아이보다 아내', 2세 앞에서 멈춘 선택
하지만 2세 이야기가 나오자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다. 김 씨는 결혼 전부터 "아이 이야기가 나오면 그때는 떠나도 된다"는 말을 아내에게 수차례 했다고 한다. 이유는 분명했다.
그는 "저와 같은 장애를 아이에게 물려줄까 두려웠다"며 "제가 겪은 삶을 아이에게 대물림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김 씨가 앓고 있는 '양안 망막색소변성증'은 유전 가능성이 있는 희귀질환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친누나도 전맹과 청각장애를 함께 겪고 있다. 그는 과거 연인이던 상대와 함께 서울의 병원을 찾아 유전 상담을 받았고 당시 의사의 설명은 결혼과 출산에 대한 판단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아내 생각은 달랐다. 시험관 시술 등 다양한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가족들 역시 2세를 고대했다. 그러나 김 씨는 "아이보다 아내를 선택하겠다"며 "아이 문제로 아내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최근엔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4년 전 뇌출혈로 쓰러진 어머니를 돌보면서다. 그는 "나이가 들었을 때 아내 곁을 지켜줄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2023년 장애인 실태조사에서 결혼과 출산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인포그래픽=생성형 AI>
◆수치로 드러난 현실, 결혼·출산 모두 '큰 장벽'
김 씨의 이야기는 비단 한 가정만의 사정이 아니다. 장애인의 결혼과 출산을 둘러싼 현실은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2023년 장애인 실태조사'결과를 보면, 미혼 장애인이 결혼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건강·장애 문제'(43.4%)였다. 이어 '결혼할 생각이 없어서'(16.2%), '이성을 만날 기회가 없어서'(12.8%) 순이었다. 향후 결혼 의향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27.8%에 그쳤다.
자녀가 없는 이유로는 '임신이 잘 되지 않아서'(47.1%)가 가장 많았다. '본인 또는 배우자가 원하지 않아서'(21.6%)가 뒤를 이었다. '자녀가 장애를 가질까봐'(5.0%), '장애 때문에'(5.6%), '양육이 어려울 것 같아서'(5.4%) 등 장애와 직접 관련된 이유도 적지 않았다.
만 49세 이하 여성 장애인 중 임신 경험이 있는 경우 80.2%는 장애 상태에서 임신을 경험했다. 임신 과정에서 가장 큰 어려움으로는 '자녀가 장애를 가질까봐 두려워서'(15.1%)가 1위를 차지했다. 양육에 대한 두려움(14.6%), 출산 과정에 대한 두려움(7.4%)이 뒤를 이었다.
유산 경험이 있는 여성 장애인 가운데 인공유산을 선택한 비율은 50.8%였다. 그 이유로는 '태아 이상'이 30.8%로 가장 높았다.
이 실태조사 보고서는 "저출생 대응 정책에서 여성 장애인의 특수성을 충분히 반영할 필요가 있다"며 "임신 전후 건강관리와 출산 지원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막연한 두려움과 다른 현실, 장애 유전에 대한 전문가 진단
계명대 동산병원 김도훈 교수(진단검사의학과)
자신의 장애가 대물림될까봐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장애인들이 있다. 계명대 동산병원 김도훈 교수(진단검사의학과)는 "장애가 곧 유전이라는 생각은 지나친 단순화"라고 단언했다.
그는 "연구마다 차이가 있지만 지적장애만 해도 유전자 요인으로 설명되는 경우가 10% 안팎으로 추정된다"며 "상당수는 출생 과정이나 이후 환경적 요인에 따른 것이다"고 밝혔다.
유전 질환이라도 방식에 따라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이 전혀 다르다는 설명이다. 상염색체 우성 유전은 부모 중 한 명이 문제 유전자를 하나만 가져도 자녀에게 50% 확률로 질환이 발생한다. 부모에게 해당 질환이 있다면 자녀에게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
상염색체 열성 유전은 부모 양쪽 모두 문제 유전자를 하나씩만 갖고 있어도(보인자) 겉으로 증상이 없다. 자녀가 양쪽에서 모두 받을 확률은 25%다. 부모에게 증상이 없어 보여도 자녀가 질환을 가질 수 있는 이유다.
김 교수는 해당 장애가 유전 질환으로 확인된 경우, 부모 중 한쪽만 질환을 가졌다면 배우자 검사를 통해 자녀에게 미칠 영향을 상당 부분 예측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열성 유전은 배우자가 해당 유전자를 갖고 있지 않으면 자녀는 보인자에 그치기 때문이다.
유전성 질환으로 확인돼도 선택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착상전 유전 진단'이라는 기술이 있다. 시험관 시술 과정에서 여러 배아 중 유전자 이상이 없는 것을 선별해 착상하는 방식이다.
김 교수는 "기술적으로 가능하지만 우리나라 생명윤리법에서 허용하는 질환이 현재 200여 종으로 한정돼 있다"며 "매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유전자 검사 비용에 대한 우려도 현실적이다. 다른 검사에 비해 본인 부담 비율이 높은 편이다. 그럼에도 해외와 비교하면 국내 비용은 낮은 수준이다. 최근엔 검사 결과가 실제 치료 방향을 바꾸거나 임상시험 참여로 이어지는 경우도 늘고 있다.
장애 대물림이 걱정된다면 김 교수는 먼저 유전 질환인지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설명했다. 같은 진단명이라도 유전성이 아닌 경우가 적지 않아 섣불리 단정하지 말자는 의미다.
이후 유전 방식을 파악해야 한다. 열성·우성 이냐에 따라 배우자 검사, 임신 전 계획 등 대응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필요할 경우 착상전 유전 진단을 검토할 수 있으며 법적으로 허용된 질환에 한해 시술이 가능하다.
김 교수는 "모르면 막연하게 두렵지만 이제는 알 수 있는 부분이 많아졌다"며 "먼저 유전 질환 여부를 확인하고 그다음은 전문가와 함께 생각하면 된다"고 조언했다.
김현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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