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바다 갈래요?” 그녀가 ‘새로운 시작’을 결심한 그곳
포항의 대표적인 관광명소 이가리 닻전망대. 드라마 '나의 완벽한 비서'와 '런 온' 그리고 '이 연애는 불가항력'의 주요공간이 되며 드라마 촬영지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길이 102m·높이 10m 닻모양 전망대
드라마 '나의 완벽한 비서' 배경 등장
'갯마을 차차차' 청진항 윤치과 건물
식당 겸 카페로 변신해 관광객 맞아
이가리 간잏변은 영화 '서복' 촬영지
이가리 닻 전망대는 바다로 뻗어있다. 102m나 되는 닻줄이 10m 높이의 허공을 가른다. 닻 머리가 향하는 곳은 독도다. 이곳에서 독도까지는 직선거리로 251㎞, 전망대는 독도수호의 염원을 담고 있다고 한다. 긴 닻줄은 휘어있다. 바람과 조류를 살피는 듯. 그것은 언뜻 화살 같기도 하다. 이제 막 활시위에서 벗어나 과녁을 향하는 화살. 이곳에서 드라마 '나의 완벽한 비서'의 지윤은 오래 생각에 잠겨 있었다. 드라마 '런 온'의 미주는 선겸을 무작정 기다렸고, 드라마 '이 연애는 불가항력'의 홍조는 신유와 함께 떠오르는 새해를 보았다.
◆일출 명소 이가리 닻 전망대
강지윤(한지민)은 잘 나가는 헤드헌터 회사 피플즈의 CEO다. 일 잘하고 고집 세고 스스로 책임감을 무겁게 진 인물이다. 유은호(이준혁)는 이혼남에 홀아비이자 강지윤의 '완벽한 비서'다. 대기업을 다니며 최연소 과장에 오른 능력자였지만 육아휴직 이후 징계해고당한 과거가 있다. 2025년 SBS드라마 '나의 완벽한 비서'는 강지윤이 유은호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변하고, 지윤의 변화가 피플즈의 다른 사람들까지 변화시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성장시키는 이야기이고, 책임질 줄 아는 어른의 이야기이며, 사람이 희망인 이야기다. 피플즈가 위기에 처했을 때 지윤이 말한다. "우리 바다 갈래요?" 그렇게 도착한 곳이 이가리 닻 전망대다.
이가리 닻 전망대는 높은 벼랑과 갯바위 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닻의 끝은 직선거리로 251㎞ 떨어진 독도를 향하고 있다. 사진은 이가리 닻 전망대의 등대조형물.
전망대는 청하면 이가리의 북쪽 끝, 높은 벼랑과 멋지게 거친 갯바위 지대에 위치한다. 벼랑의 검푸른 해송 숲에서부터 진주조개 빛 하늘로 나아가면 전망대는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모습을 드러낸다. 지윤은 몹시 환한 햇살 속 닻 머리에 선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했어요?" "은호씨 생각하고 있었어요." "내 생각이요?" "은호씨 만나고 참 많은 게 변했다 싶어서요. 난 항상 혼자 모든 걸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었거든요. 피플즈를 키우는 것도 그리고 지키는 것도 나 혼자만의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날 책방에서 직원들 보고 그게 아니란 걸 알았어요. 고마워요. 은호씨 아니었으면 몰랐을 거예요." "지윤씨 혼자 아니에요. 지금까지도 그렇고 앞으로도 계속." 바다에서 돌아온 지윤은 피플즈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난다. 그것은 새로운 시작이기도 했다.
2023년 JTBC드라마 '이 연애는 불가항력'에서 '이가리 닻 전망대'는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두 주인공 홍조(조보아)와 신유(로운)가 한 해의 시작을 함께한 곳이다. 홍조는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아빠와의 추억을 이야기 했다. "새해 첫 날이 되면 늘 새벽 3시 반에 깨우셨어요. 북한산 가서 일출보자고. 올라가는 내내 싫다고 투덜거리고 내려오는 내내 힘들다고 투덜댔어요. 근데 아빠가 돌아가시고 난 다음부턴 늘 새해를 혼자 맞이했고 매번 늦잠을 잤어요. 아빠가 없는 걸 실감하고 싶지 않았나 봐요. 그렇게 항상 우울한 한 해를 시작했었는데, 고마워요. 같이 있어줘서." 신유는 홍조의 손을 꼭 잡는다. 홍조의 새해는 이제 우울하지 않다. 그날 전망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지금도 이가리 닻 전망대는 일출 명소다.
포항 이가리 닻전망대 거북바위.
이가리 닻 전망대가 드라마에 처음 등장한 것은 2021년 2월에 종영한 JTBC드라마 '런 온'에서일 것이다. 여자주인공 오미주(신세경)는 외화 번역가로 같은 장면을 수없이 되감기하는 번역의 세계에 살고 있는 인물이다. 남자 주인공 기선겸(임시완)은 육상 단거리 국가대표선수로 앞만 보고 달려가는 세계에 산다. 사는 세계가 다른 두 사람은 대화의 방향도, 속도도, 언어의 색도 다르다. '런 온'은 서로 완전히 다른 주인공들이 만나 서로 영향을 주고, 자신을 가뒀던 틀을 깨고, 사랑해 나가는 이야기다. 그리고 상대를 사랑하는 동안 나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가는 성장담에 가깝다. 미주는 선겸이 자주 러닝 한다는 이가리 닻 전망대에서 무작정 그를 기다린다. 선겸은 약속이나 한 듯 달려와 환한 얼굴로 조잘조잘 육상이야기를 한다. 미주는 그 상황이 신기하고 또 그 모습이 좋다. "난 지금이 더 신기한데. 잘해서요, 기다리길 잘했다 싶어서."
이가리 간이해변을 마을 사람들은 초승달처럼 밝아 양지라고 부른다. 이곳은 박보검과 공유가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서복'의 촬영지다.
◆초승달처럼 밝은 이가리 간이해변
생각에 잠긴 지윤의 얼굴 뒤에, 웃는 미주의 시선 저편에 희미하게 보이던 방파제와 등대는 이가리항이다. 항구와 이가리 닻 전망대 사이에 이가리 간이해변이 있다. 조금씩 낮아지는 절벽 아래의 작고 좁은 모래밭이지만, 초승달처럼 밝아 마을 사람들은 양지라고 부른다. 이가리 간이해변은 2021년 개봉한 영화 '서복'의 촬영지다. 서복(박보검)은 줄기세포 복제와 유전자 조작을 통해 만들어진 인류 최초의 복제인간이다. 민기헌(공유)은 전직 정보국 팀장이다. 과거 사건으로 인한 죄책감으로 외부와 단절된 삶을 살아가고 있던 기헌은 서복을 안전하게 이동시키라는 거절할 수 없는 임무를 맡게 된다. 영화는 서복을 차지하기 위해 나선 여러 집단의 추적을 피하고 공격에 맞서며 달리는 둘 만의 특별한 동행을 따라간다.
실험실 안 세상에서만 살아온 서복은 기현과 함께 나선 길에서 난생처음 진짜 세상을 마주하게 된다. 서복이 본 최초의 바다가 이가리의 망망대해다. 서복은 이가리 간이해변에서 스크린이 아닌 진짜 바다를 보고 밀려오는 파도를 손으로 느꼈다. "사는 건 좋았어요?" 서복의 질문에 기헌은 죄책감으로 남아 있는 과거의 사건, 동료의 죽음에 가담했던 일을 털어놓으며 오열한다. 서복은 그런 기헌을 위해 돌무덤을 만들어준다. 둘은 다시 길을 떠나지만 서복은 결국 끝을 택한다. "나도 무언가가 되고 싶었어요. 의미 있는 무언가가. 제가 살아있는 한 끝나지 않을 거에요. 형이 끝내주세요." 혼자가 된 기헌은 다시 이 바다를 찾아와 서복이 만들어 준 돌무덤 위에 돌 하나를 올려놓았다. 그리고 다시 어딘가로 걸어간다.
이가리항에서 남쪽으로 걸어가면 청진항에 닿는다. 청진항은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의 배경이 되는 곳으로, 먼듯 가까운듯 보이는 빨간등대가 인상적이다.
◆파도가 청진한 곳 청진항
이가리항에서 남쪽으로 걸으면 청진항이다. 청진항은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에서 중요한 배경이 된 곳이다. 여주인공 혜진(신민아)은 대도시 큰 병원에서 일하던 치과의사다. '남 일 신경 쓰지 말고 나나 잘하자'가 좌우명이지만 과잉진료를 유도하는 원장의 진료방식에 항의하면서 병원을 박차고 나왔다. 더 이상 취업이 어렵게 된 그녀는 어릴 적 세상을 떠난 엄마와의 기억이 있는 바닷마을 공진으로 왔다. 그리고 홧김에, 그리고 운명처럼, 공진에 자신의 새로운 일터 '윤치과'를 열게 된다. 혜진의 치과가 청진리(청진3리 어민복지회관 2층)에 있다. 두식(김선호)이 인테리어 한 치과다.
지금 윤치과는 식당 겸 카페 '윤스토랑'이다. 덮밥류와 돈가스, 음료 등을 판매한다. 2층으로 향하는 좁은 계단은 혜진과 두식이 간지러운 애정 행각을 벌이던 곳, 그래서 괜히 한번 뒤돌아본다. 윤치과 문을 열면 드라마 포스터가 제일 먼저 반겨준다. 한쪽 벽에는 윤스토랑의 다양한 사진들, 청하공진시장의 모습들, 청진 바다의 일몰, 이가리 닻 전망대 등의 사진이 붙어 있다. 공간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치과 기구들이 테이블로 바뀐 정도다. 원장실, 진료실, 큰 창 너머 보이던 바다가 모두 그 자리에 있다. 벽에 걸린 텔레비전에서는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가 오늘도 흐른다.
창밖으로 보이는 청진항의 빨간 등대도 드라마에 종종 등장했다. 방파제 파제벽에 갯마을 차차차의 장면들이 가득하다. 혜진과 두식이 바닷가에서 처음 만나던 순간, 감리 할머니 집에서 알콩달콩 빨래하던 장면, 비를 맞으며 아이들처럼 놀던 모습, 그리고 공진할머니들. 사실 배우들과 전혀 닮지 않았지만 저절로 드라마 장면이 오버랩돼 마음이 몽글몽글하다. 청진항에 최근 새로운 전망대가 생겼다. 방파제 사이 열린 바다를 향해 있는 작은 뱃머리 모양의 자그마한 전망대다. 오목한 항구 전체를 안고 나아가는 듯한 전망대에 조형간판이 커다랗다. '파도가 청진하다.'
글=류혜숙 영남일보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공동기획 - 포항시청>
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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