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NVIDIA)의 수장 젠슨 황 CEO의 한국방문이 잦아지고 있다. 젠슨 황은 한국 방문 때마다 '치맥(치킨+맥주) 깐부 회동', '삼소(삼겹살+소주) 회동' 등 국내 주요 기업 총수들과 한국식 회식을 가지며 깊은 파트너십을 다지고 있다. 세계 기술패권을 쥔 인물이 의도적으로 대중에게 다가가고 한국에 대한 호감을 가감없이 표현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젠슨 황이 자주 한국을 찾고, 국내 대기업 CEO들과 회동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인공지능 반도체의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메모리인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한 국내 메모리 기업들이 주도권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네이버·SK텔레콤·현대자동차·LG 등 한국 대기업을 엔비디아의 AI 팩토리·피지컬AI 생태계로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적인 행보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한국의 기술력이 절실한 구조, 이것이 오늘날 대한민국이 마주한 화려한 위상이다. 반도체와 K-방산, 원자력 발전과 자동차 산업 등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일궈낸 눈부신 결실이자 위대한 성과다. 지난 경주 APEC을 계기로 열린 주요국 정상외교에서도 대한민국의 달라진 위상을 체감할 수 있었다. 물론 그 배경에는 안보와 외교 지형의 변화도 있었지만, 반도체·자동차·방산·원전 등 일부 선도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쌓아 올린 기술력과 산업적 존재감이 중요한 기반이 되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성공 신화가 앞으로도 지속되리라는 기대는 위험하다. 이미 경고등은 켜져 있다. 미래 경쟁력의 핵심인 인재 공급 체계에 심각한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앞선 칼럼에서 지적했듯이 우리나라 대학들의 국제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
1970~90년대의 고속 성장기까지만 해도 대학은 국가 성장을 앞에서 이끄는 확실한 엔진이었다. 선진국을 뒤쫓는 '모방형 경제' 체제하에서 대학은 산업 현장이 요구하는 인재를 충실히 공급하며 국가발전을 견인했다.
그러나 우리 기업들이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도약하는 동안, 대학 교육의 산업·사회 수요 대응력은 오히려 뒤처졌다. 기업들은 AI와 첨단 융합 기술을 외치며 글로벌 경쟁의 최전선으로 뛰어가고 있지만, 대학 사회는 여전히 단단한 학과 장벽과 공급자 중심의 교육 체계에 갇혀 있다. 기업이 이끄는 기술력이 날아오를 때, 인재를 길러야 할 대학 교육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수십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이 절벽은 좁혀지지 않은 채 대한민국 고등교육의 고질병으로 굳어졌다.
결국 지금 우리가 누리는 국가적 위상은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에서 얻어낸 성과다. 개도국 시절에는 국가 성장의 엔진이었던 대학이, 정작 대한민국이 글로벌 초격차 패권 경쟁의 한복판에 진입한 지금은 경쟁력을 잃고 완벽하게 퇴보해 버린 꼴이다. 젠슨 황이 감탄한 초일류 기업들의 기술 독주는 대학이 공급하는 인재가 아니라 기업이 자체 수혈한 노력의 산물일 뿐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AI·반도체·로봇·첨단 제조의 경쟁은 결국 인재 경쟁이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고급 인재를 대학이 제때 길러내지 못한다면, 지금의 기술 경쟁력은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그 때도 젠슨 황이 대한민국을 찾아 대기업 CEO들과 깐부 회동을 할까? 그 지속 가능성의 열쇠는 대학 개혁에 있다.
박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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