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 영해의진 의병장 이수악은 재령이씨 문중에서 태어났다. 재령이씨는 영해의 대표적인 향반 가문 중 하나다. 사진은 이수악의 생가인 존재종택.
1895년, 일제는 청일전쟁의 승리를 계기로 조선에 대한 침략을 노골화시켜 갔다. 그러나 러시아·독일·프랑스의 개입으로 국제정세가 변하자 일제의 불안은 커졌고, 세력을 만회하기 위해 급기야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그리고 친일정권을 사주해 단발령과 복제개혁을 강행하는 등 침략정책을 가속화해나갔다. 국가의 운명에 대한 걱정과 분노가 민족의 뿌리 깊은 곳에서 준동했고, 민중과 유생들은 주권을 지키고 국권을 회복하자는 오롯한 목표로 분연히 일어났다. 나라를 걱정하고 염려하는 우국충정 하나로 모든 것을 바쳐 의로써 일어난 민군, 그들은 의병이다. 1896년 봄, 의병항쟁은 전국적으로 폭발했다.
◆영해의진, 의병장 이수악
영해는 일제강점기인 1914년 영덕군에 합병되기 전까지 독립된 군이었다. 고려 초부터 인근 축산면, 병곡면, 창수면을 아우르는 지역의 중심이었고, 조선 시대에는 경북 북부 유교 문화권의 핵심 지역 중 한 곳이었다. 영해의 대표적인 향반은 영양남씨, 재령이씨, 대흥백씨, 안동권씨, 무안박씨로 5대 성이라 불렸다.
을미사변과 단발령으로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나자 창수면의 이수악(李壽岳)은 영해와 영덕에 통문을 돌려 거의를 촉구했다. 그리고 1896년 음력 1월, 먼저 유림사회의 자치적 성격의 조직인 집강소(執綱所)를 설치, 구성했고 20여일 후 집강소를 의병부대로 전환해 영해의병(寧海義兵)의 진용을 갖췄다.
이수악은 재령이씨로 17세기 영남학파를 대표하는 존재(存齋) 이휘일(李徽逸)의 8세손이다. 아버지 이담영(李聃榮), 어머니는 고성이씨(固城李氏)로 이수악은 1845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자는 치숭(致崇)이고, 호는 우헌(于軒)이다. 일찍이 가학을 이어받아 경사(經史)에 밝았고 문장도 뛰어나 명망이 높았다고 한다. 고종 23년인 1886년 대원군의 유폐와 관련된 상소를 올렸다가 함경북도 명천(明川)에서 4년간 귀양살이를 한 바 있다.
영덕지역 의병들이 일본군과 전투를 펼쳐 승리를 거둔 복기암 언덕. 영해의진이 이곳에서 진을 치고 있다 일본군과 격전을 치렀고, 때마침 영덕의진이 합세해 일본군을 물리쳤다.
영해의진은 대장 이수악, 부장 권진모(權進模)와 백중술(白重述), 구의장 남유용(南有鏞), 중군장 박재명(朴載明), 좌익장 권준모(權濬模), 우익장 이현을(李鉉乙) 등 지도부와 군사 수백명으로 이뤄졌었다.
'창의시파록(倡義時爬錄)'과 '의포도안(義砲都案)' 등 영해의진과 관련된 기록을 보면 각 부서 및 간부직책을 비롯한 구성원 명단이 지도부에서부터 일선 전투부대에 이르기까지 매우 상세하다. 특히 수성장·산성장·순성장·경수장·수문장을 두어 영해읍성과 주변 산성을 지키는 책임자를 명확히 하고, 바다로 들어오는 적을 막기 위해 축산포·대진·병곡·복기암 등에 방수장과 부장을 두는 등 영해지역의 지형을 고려해 치밀하게 편제했다.
영해의진의 활동에 대한 기록은 별로 없다. 다만 의진에 가담한 이들의 묘갈명이나 만사, 그리고 김하락의 '진중일기' 등을 통해 조금 알 수 있을 뿐이다. 영해의진이 활동을 시작한 것은 조직을 마친 3월 말이었다. 영덕의진에서 원병을 요청하는 급보를 받아 지원했다는 내용이다. 5월에는 병사 50~60명이 복기암(洑基岩) 언덕에 진을 치고 있다가 일본군의 급습에 맞서 격전을 치렀다. 때마침 영덕의진이 전투에 합세해 일본군을 물리치고 승리했지만, 10여 명에 이르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영해의진 의병장 이수악은 창수면 오촌리 저곡마을에서 말년을 보냈고,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사진은 이수악이 거처했던 오촌리 우헌정.
영해의진의 마지막 전투는 8월14일, 의진이 병곡면 사천(砂川)에서 진을 치고 있을 때다. 적의 습격을 당해 혈전을 벌였으나 크게 패했다.
이 전투에서 의병을 이끌며 게릴라 전술을 펼쳤던 영병장(領兵將) 박동진(朴東鎭)이 사망했다. 그에게 1977년 대통령 표창이 추서됐고,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가로 추서됐다. 병곡 사천 전투 이후 영해의진은 조정의 명을 받아 해산했다. 의병장 이수악은 창수면 오촌리(梧村里) 저곡마을에 위치한 우헌정(于軒亭)에서 말년을 보냈고,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영해의진의 의병 박치도(朴致道)는 후에 만주로 망명해 독립운동을 이어나갔다.
◆영덕의진, 의병장 신운석과 김노헌
영덕의진은 1896년 음력 3월 지품면 송천리에서 김건(金健)을 대장으로 조직됐다. 창의 직후 김건은 장남의 갑작스러운 병사로 대장에서 물러났고, 신운석(申運錫)이 그 뒤를 이어 의진을 이끌었다. 신운석은 영덕읍 화개리 출신이다. (지품면 신안리 출신이라는 기록도 있으나 그의 순국 기념비는 화개리에 있다.)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응천(應天), 호는 청헌(淸軒)으로 고려 개국공신 장절공 신숭겸(申崇謙)의 후예이다. 성격이 꼬장꼬장했고 작고 사소한 일에 얽매임 없이 대범했다고 전한다.
영덕의진은 약 300명 규모였다는 것 외에 남아있는 자료가 거의 없다. 영해의진과 마찬가지로 다만 청송의진과 김하락의진 등 영덕의진과 합세한 다른 의진의 기록을 통해 그 실체를 조금이나마 추정해 볼 수 있다. 기록을 규합해 보면 영덕의진은 군문도지휘 겸 총포장 김노헌(金魯憲), 전방장 심의종(沈宜宗), 후방장 신병렬(申炳烈), 서기 안문익(安文翼) 등과 병사로 구성돼 있었다.
영덕 영덕의진 의병장이었던 청헌 신운석 공순국기념비. 신운석은 꼬장꼬장한 성격에 작고 사소한 일에도 얽매임이 없이 대범했다고 전해진다.
영덕의진은 음력 3월11일 영덕군 남정면(南亭面)에 잠복해 적과의 교전을 준비했다. 4월8일에는 관군 60여 명이 남쪽에서부터 영덕 쪽으로 기습해 온다는 정보를 접하고 지경리(地境里)에서 매복했고, 4월9일에는 관군 63명이 흥해(興海)에서 영덕으로 진군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장사리(長沙里)에 잠입했으나 매번 중과부적으로 물러나고 말았다.
4월11일에는 원척리(元尺里)로 주둔지를 옮기는데, 갑작스러운 관군의 기습으로 의병 12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때 김노헌이 적탄에 총상을 입었다. 영덕의진은 후퇴해 오십천변 남천 숲으로 근거지를 옮겨 소강상태를 유지했다. 전력이 아직 관군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었기에 다시 후퇴해 때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 즈음 경주성 전투에서 패한 이천의진(利川義陣)의 김하락(金河洛)이 영덕으로 오고 있었다. 경주성전투를 함께 치렀던 청송의진도 영덕으로 이동했다. 김하락이 영덕의진 의병장 신운석을 만난 것은 음력 5월22일이다. 그리고 음력 6월3일과 4일 이틀 동안 영덕 오십천의 남천 숲에서 일본군과 연합의진의 접전이 벌어졌다. 영해의병도 이 전투에 참여했다고 한다. 첫날 전투에서는 연합의진이 큰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다음날 수백 명의 일본군이 들이닥쳐 처절한 전투 끝에 패하고 만다. 이 과정에서 중상을 입은 김하락은 오십천에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오십천 전투의 패배 후 신운석은 지품면 신양동(新陽洞)으로 진을 옮겼다. 6월20일에는 일본군과 격전을 치르고 지품면 율곡리(栗谷里)로 피신했다. 그때 신운석의 친척인 신태홍(申泰洪)이 관군에게 붙잡혀 고초를 겪고 있었다. 생김새가 비슷해 신운석으로 착각한 것이었다. 신운석은 자신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을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는 스스로 관군에 출두해 자신이 의병장임을 밝혔다. 결국 그는 1896년 음력 8월 3일 총살당해 순국했다.
지금 화개리에는 '의병장청헌신운석공순국기념비'가 건립돼 있고 정부에서는 201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신운석의 순국 후 영덕의진을 이끈 이는 김노헌(金魯憲)이다. 조정의 명으로 영덕의진도 해산했지만 김노헌은 1898년 8월 영덕 축산(丑山), 1900년 9월 청송진보(珍寶), 1901년 3월 울진(蔚珍), 1903년 10월 영양 입암(立巖) 지역 등 1903년까지 영덕 일대에서 무장투쟁을 계속했다. 그는 무장투쟁 과정에서 부상을 입고 고초를 겪다가 1910년 5월 30일, 56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글=류혜숙 영남일보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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