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행의 장막을 걷어낸 혁신
불가론을 허문 실천의 저력
안전과 편익의 정교한 조율
행정의 타성을 깨운 한마디
변화의 물꼬를 튼 현장 감각
강승규 사회1팀장
행정에는 오래된 습성이 있다. 문제가 생기면 해법보다 불가 사유부터 찾는다. 규정이 허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선례가 없다고 둘러댄다. 안전사고 가능성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부서 간 관할이 다르다는 말까지 보태지면 논의는 대개 거기서 멎는다.
대구 수성구 팔현파크골프장 주차난도 이런 관성 속에서 장기간 방치됐다. 하루 평균 1천여명이 찾는 시설이지만 주차 공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이용객들은 도로 주변을 맴돌거나 먼 곳에 차량을 세운 뒤 걸어야 했다. 같은 불편이 되풀이되는 동안 민원만 켜켜이 쌓였다. 해법이 멀리 있었던 것도 아니다. 인근 팔현빗물펌프장 유수지에는 130면 규모의 주차장이 조성돼 있었다. 다만 우수기인 5월부터 10월까지는 문이 굳게 닫혔다. 집중호우 때 물이 차오를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안전은 행정이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책무다. 그렇다고 안전이 행정적 무위와 부작위에 면죄부를 주는 만능 논리로 변질돼서는 곤란하다. 위험을 이유로 시설을 반년간 봉쇄하는 선택은 가장 간편하다. 문을 닫으면 사고 가능성은 낮아지고 책임의 부담에서도 비켜설 수 있다. 시민이 불편을 호소해도 '안전'을 내세우는 순간 반론의 여지는 좁아진다. 그러나 위험을 제거하는 일과 관리하는 일은 엄연히 다르다.
모든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은 행정이라기보다 통제에 가깝다. 위험을 예측하고 통제하면서 시민 편익을 넓히는 데 행정의 전문성이 발휘된다. 추경호 대구시장은 이 지점에서 익숙한 결론을 되물었다. "시민 입장에선 특별히 안 될 이유가 없었다." 짧은 말이지만 울림은 가볍지 않다. '안 된다'고 굳어진 행정의 전제를 원점에서 흔들었기 때문이다. 불가능하다는 보고를 수용하는 대신, 그 불가능이 정녕 불가피한지 따져 물었다. 지도자의 역할은 보고서에 적힌 난관을 전달받는 데 머물지 않는다. 조직이 관성적으로 세운 장벽이 여전히 유효한지 검증해야 한다. 규정의 문구보다 취지를 살피고, 선례의 부재가 무능의 구실로 둔갑하지 않도록 이끌어야 한다.
대책은 기발하지 않다. 기상 상황과 금호강 수위를 살피고, 강우가 예보되면 진입을 막는다. 호우·홍수특보가 내려지면 즉시 폐쇄하고 차량을 이동시킨다. 비상대응 체계와 대피 매뉴얼도 갖췄다. 상식적인 조치다. 그래서 더 뼈아프다. 이 정도의 관리 체계로 개방할 수 있었다면 시민이 감내한 불편은 과연 불가피했는가. '안전 때문에 안 된다'는 답변은 어쩌면 '아직 방법을 찾지 않았다'는 자기 고백이었는지도 모른다. 추 시장은 현장에서 개방 시간을 오전 9시에서 8시로 앞당기도록 지시했다. 이용객 상당수가 이른 아침부터 도착한다는 건의를 들은 직후였다. 불과 한 시간이다.
그러나 행정의 감응성은 이런 한 시간에서 판별된다. 시민은 거대한 비전보다 일상의 변화를 먼저 체감한다. 추 시장의 판단은 단순한 민원 해결을 넘어선다. '불가능'을 전제로 움직이던 조직에 '가능성'부터 검토하라고 주문했다. 리더십은 조직이 당연시해 온 전제를 의심하게 만드는 힘이다. 다만 시장 한 사람의 결단으로 끝나서는 의미가 반감된다. 시장이 직접 현장을 찾아야 문제가 풀리고 지시가 내려져야 부서가 움직인다면, 이는 리더십의 성과인 동시에 행정 시스템의 결함을 방증한다. 추 시장이 연 것은 주차장 130면에 그치지 않는다. 닫혀 있던 행정의 사고방식에 균열을 냈다. 이제 그 균열을 변화의 통로로 넓힐 책임은 대구시 조직에 남았다.
강승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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