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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과 창] 철원, 교과서 밖에서 배운 평화

2026-08-05 06:00
박정곤 대구행복한미래재단 상임이사

박정곤 대구행복한미래재단 상임이사

'평화·생태·역사 주제 탐구 리더십 캠프' 프로그램 운영자로 고등학생 20명과 함께 철원지역을 다녀왔다. 철원은 한반도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어 대구·경북에서는 쉽게 갈 수 없는 곳으로 분단의 아픔과 신비한 자연을 품고 있는 곳이다. 과거 태봉국의 도읍이자 6·25전쟁 최대 격전지였으며, 현무암 용암대지와 주상절리 협곡을 품은 독특한 지역이다. 안보 관광과 화산토가 기른 명품 쌀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아울러 역사적인 아픔과 평화에 대한 염원이 공존하는 곳이어서 주제 탐구 리더십 캠프의 탐방지로 선택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해방 직후 철원은 38도선 이북에 위치해 소련 군정 치하에 있었다. 북한 강원도의 행정 중심지였던 '노동당사'가 있던 곳이다. 6·25전쟁 중에 철원은 주인이 수십 번 바뀌는 치열한 전장(戰場)이었다. 1953년 정전협정으로 비로소 우리 땅으로 돌아온, 이른바 수복지구(收復地區)다. 버스에서 전하는 이런 이야기에 학생들은 다소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철원역사문화연구소장이 동승(同乘)하며 분위기는 반전되었다. 10여 분만 북으로 가면 DMZ가 나오고, 멀리 보이는 산은 북한 땅이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100년 전 전기 열차를 타고 금강산으로 소풍을 가던 시절의 이야기, 철원 사람들의 굴곡진 삶의 궤적이 생생한 스토리로 전달되자 학생들의 눈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무장한 군인의 검문을 거쳐 철책선을 마주했을 때는 팽팽한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우리나라가 분단국가임을 실감하는 듯했다.


전쟁 전 세대인 철원 주민 100여 명을 만나 구술 조사를 한 내용을 중심으로 한, '수복지구 철원 사람들의 삶과 애환'에 대한 소장의 특강을 들었다. 일제강점기 강제 징용에 끌려갔다가 중국 팔로군의 포로가 되고, 해방 후 고향에 돌아왔으나 다시 북한군에 징집되어 6·25전쟁에 참전했던 한 어르신, 포로가 되어 거제도 수용소에 갇혔다가 반공포로로 석방된 후 다시 국군에 입대해 싸워야 했던 비극적인 한 인간사는 교과서 어디에서도 볼 수 없던 진짜 역사의 민낯이었다. 공산 세력의 만행과 전쟁의 참혹함을 온몸으로 견뎌낸 어르신의 생애사를 마주한 학생들은 새로 알게 된 사실에 충격을 받은 듯했다.


북한이 놓다가 중단한 다리를 UN군이 마저 건설한 '승일교', 수많은 총탄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노동당사', 그리고 열흘 동안 주인만 24번이 바뀌며 수많은 청춘이 피를 흘린 백마고지를 바라보는 '소이산 전망대'에 섰을 때, 학생들의 가슴속에는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깊은 울림이 자리 잡는 듯했다. 백마고지 전투에서 천행(天幸)으로 살아오신 아버님을 위해 고향 가까운 철원에 터를 잡았다는 실향민 2세의 이야기 역시 가슴을 울렸다. 그들에게 전쟁은 현재 진행형인 삶 자체였고, 통일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염원이었다.


돌아오는 길, '그냥 고지인 줄 알았던 백마고지가 주인이 24번이나 바뀌며 죽어간 청년들이 우리 또래라는 걸 알고 소름이 돋았어요.', '굳이 통일해야 하나 싶었던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오늘 우리가 누리는 평화가 누군가가 피로 지켜낸 것이란 걸 처음 깨달았어요.' 학생들은 교과서 내용을 외운 답을 말하지 않았다. 현장체험에서 체득한 공감의 언어로 말했다.


평화는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희생과 인내, 그리고 기억 위에 세워진다. 아이들이 전쟁을 책 속 사건이 아닌 사람의 이야기로 만나는 순간, 통일은 정치 영역을 넘어 내 삶의 문제가 된다. 교실 문을 열고 나와 역사의 숨결을 느끼게 하는 체험학습,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선물해야 할 진짜 평화 교육, 통일 교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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