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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양 외과의사가 바라본 일본 풍경 23] 감정을 넘어 전략으로: 국가의 사죄

2026-08-06 08:29
기요미즈테라 경내에 세워진 아테루이에게 사죄하는 비석. 1천200년이 지나서 불교계가 민간 차원으로 세웠다. 국가적 차원의 사죄는 어렵지만 민간 차원은 쉽다.<임 원장 제공>

기요미즈테라 경내에 세워진 아테루이에게 사죄하는 비석. 1천200년이 지나서 불교계가 민간 차원으로 세웠다. 국가적 차원의 사죄는 어렵지만 민간 차원은 쉽다.<임 원장 제공>

우리는 과거사 왜곡 문제가 터질 때마다 독일과 일본을 비교한다. 독일은 과거를 반성한 성숙한 나라로 칭송하고, 일본은 잘못된 역사를 지우려는 몰염치한 나라로 비난한다. 1970년 12월,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폴란드 바르샤바 유대인 희생자 위령탑 앞에서 무릎을 꿇은 장면은 '독일식 반성'의 상징으로 각인되어 있다. 그러나 빌리 브란트의 무릎 꿇음은 독일의 도덕적 선의가 아니라 당시 서독이 택할 수밖에 없었던 외교적 계산의 결과다. 당시 서독의 국가 목표인 재통일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주위 국가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독일이 더 이상 위협적인 국가가 아니라는 신뢰를 얻어야 했다. 하지만 독일은 아프리카 식민지 범죄에 대해서는 달랐다. 독일은 1904년부터 1915년까지 아프리카 나미비아에서 원주민의 80%에 달하는 8만 명을 학살했다. 그러나 독일은 이런 사실을 외면하다가 2021년에야 이를 인정했지만 법적 배상 책임은 끝내 회피했다. 국제사회의 시선이 미치지 않고 실리적 이득이 없는 곳에서는 독일 역시 철저하게 자기 계산기를 두드린다.


일본 소설 '풍도(風濤)'는 원나라 강요로 여몽연합군에 동원되어 일본 원정에 나섰던 고려의 비극을 다룬다. 이 소설을 번역한 재일교포 번역가의 "강대국과 섬나라 사이에 끼인 고려의 비극이 우리 민족의 운명과 같아 원고지를 눈물로 적셨다"는 회고록을 보고 책을 들었다. 몽골의 지배를 받은 기간은 98년으로 일제강점기보다 길었고, 가혹한 수탈은 훨씬 더 심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사실을 몰랐었고 일제강점기 때 이야기같이 가슴 저미지는 않았다.


교토의 유명한 기요미즈테라(청수사)에는 과거 역사에 대해서 사죄하는 비가 세워져 있다. 8세기 후반 야마토 정부가 동북 지역의 소수 민족인 에미시 족을 정벌한 것을 사죄하는 비이다. 중앙 집권을 이루어 가던 야마토 정권은 에미시 족에게 막혀서 애를 먹었다. 이때 사카노우에 장군은 에미시 족의 선처를 약속하고 아테루이 장군을 설득해서 투항을 받는다. 그러나 정부는 약속을 어기고 에미시 족을 몰살시켰다. 그때의 공로로 사카노우에는 절을 하사받는다. 그 절이 오늘날 유명한 기요미즈테라이다. 사카노우에는 평생 죄책감을 가졌다. 1천200년이 지난 1994년 사찰측은 민간 차원으로 아테루이에게 사죄하는 비를 경내에 세웠다.


평화헌법 개헌반대 모임에 나온 사람들. 최근들어 규모도 늘어나고 소신을 가진 개별 참석도 많았다.<임 원장 제공>

평화헌법 개헌반대 모임에 나온 사람들. 최근들어 규모도 늘어나고 소신을 가진 개별 참석도 많았다.<임 원장 제공>

역사에서 가해자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피해자는 기억한다. 가해자가 과거사를 사죄하는 경우는 드물어서 갈등은 반복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픔은 시간과 함께 희석된다. 고려가 몽골에 당한 아픔, 임진왜란 때 일본에 당한 아픔은 심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아픔은 줄어들었다. 아픔이나 수치가 아무리 심해도 지금 가해자보다 잘 살고 있으면 아픔은 잊힌다. 몽골의 경우가 그렇다.


일본은 과거사를 사죄할 생각이 없다. 그렇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우리들 아픔은 줄어들 것이다. 또한 우리가 일본보다 더 잘 살면 아픔도 줄어들 것이다.


일본에서 성공한 재일교포를 만났다. 아직 국적은 한국이고 명절에는 한복을 입었다. 국적을 바꾸는 것이 편한 길이 아닌가 물었더니 눈물이 글썽거렸다. 일본인들에게 당한 설움을 생각하면 아직도 분하다고 했다. 이런 분들에게 시간이 해결한다고 얘기하는 것은 무례라고 생각한다. 정당한 사죄는 끊임없이 요구해야 한다. 감정적이 아니라 보편적인 인권 범죄로 접근해야 한다. 일본 내부 양심적 시민들과 연계해서 그들 힘도 빌려야 한다. 사도탄광의 진실은 1990년대 사도섬 시민들의 제보로 알게 되었고, 국회의사당 앞에서도 많은 시민들의 평화헌법 개헌 반대 집회가 자주 있었다. 자유 토론회에서 만난 시민은 한국과의 갈등도 알고 있었고 일본의 사죄를 말했다. 국가의 사죄는 복잡하고 어렵지만 민간의 사죄는 쉽다.


역사의 정의는 눈물이나 호소로 완성되지 않는다. 일본이 스스로 사죄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계산하게 만드는 정교하고 치밀한 전략, 그것이 우리 정부가 가져야 할 냉철한 역사 외교의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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