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영 새마을문고 대구서구지부내당4동 지도자
책을 꼭 껴안고 달리는 소녀의 모습이 담긴 표지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허술한 치마저고리 차림이지만 입가에는 옅은 웃음이 번져 있었다. 어디론가 달려가는 소녀를 보며, 이 아이가 넘으려는 담은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담을 넘은 아이'는 주인공 푸실이가 우연히 '여군자전'이라는 책을 주우면서 시작된다. 효진 아씨의 돌아가신 어머니가 쓴 책이었다.
먹을 것이 없어 나무의 속껍질까지 벗겨먹던 시절, 가난은 사람들의 삶뿐 아니라 이웃 간의 정도 메마르게 했다. 푸실이의 어머니는 아들 귀손이를 살리기 위해 양반댁에 진 빚을 갚고자, 그 집의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유모로 들어간다. 그 사이 막내 '아기'는 젖을 먹지 못해 위태로워진다. 푸실이는 동생을 살리겠다는 마음으로 높은 솟을대문을 두드린다.
대감마님에게 들켰을 때도 푸실이는 물러서지 않고 "대감마님은 군자가 아니십니다"라고 당차게 말한다. '여군자전'에서 얻은 깨달음이 푸실이에게 용기를 준 것이다. 이를 본 대감의 아들은 "배고픈 아이를 구할 때에는 귀천을 두지 않는다"는 정조의 말을 들어, 두 아이를 함께 젖먹이자고 제안한다. 책의 깨달음이 닫힌 대문을 열고 생명을 살린 순간이었다.
제목처럼 작품 속 인물들은 저마다의 담을 넘는다. 푸실이는 신분의 담을 넘고, 효진 아씨는 여성에게 씌워진 굴레를 벗어나려 한다. 아씨의 아버지도 완고했던 마음의 문을 연다. 그 담은 남녀 차별과 신분 차별, 가난과 편견이 만든 사회의 벽이었다.
나는 동생을 살리려는 푸실이를 막는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담을 무너뜨린 것은 힘이나 지위가 아니라 어린아이의 용기와 책에서 얻은 깨달음이었다. 책 한 권이 사람의 생각을 바꾸고, 그 생각이 누군가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사실도 깊은 울림을 주었다.
오늘날 우리는 평등한 세상을 살아간다고 말한다. 그러나 서로를 배척하고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며 상대의 흠을 먼저 찾는 모습을 마주한다. 그럴 때면 글조차 몰랐던 푸실이보다 우리가 과연 더 나은가 되묻게 된다.
"버겁기는 하나 원망하지 않는다"던 푸실이의 말이 오래 마음에 남는다. 담은 저절로 낮아지지 않는다. 누군가 용기 내어 두드리고 또 다른 누군가가 마음을 열어줄 때 비로소 넘어설 수 있다. 나 역시 모두가 차별 없이 행복한 세상을 꿈꾸며, 오늘 내 마음속의 담부터 하나씩 낮추어 보려 한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