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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 정재걸의 오래된 미래교육…통으로 경험하기

2026-08-07 06:00

통으로 경험하기

정재걸 대구교대 명예교수

정재걸 대구교대 명예교수

우리는 세상을 생각으로 이해한다고 믿는다. 사물을 분류하고, 이름을 붙이고, 원인과 결과를 따지며, 이것과 저것을 구별하는 것은 인간이 가진 가장 뛰어난 능력이다. 이러한 능력 덕분에 과학이 발전해 왔고, 문명을 이루었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우리의 생각이 세상을 조각내는 동안에도 우리의 실제 경험은 결코 그렇게 조각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생각 속에서는 하나하나 나누어져 분리 고정된 세계를 살지만 경험 속에서는 언제나 하나의 세계를 살아간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을 떠올려보자. 우리는 먼저 침대를 보고, 이어서 창문을 보고, 그다음 새소리를 듣고, 마지막으로 몸의 감각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는 방 전체가, 빛과 소리와 온도와 몸의 감각이 하나의 장면으로 동시에 펼쳐진다. 나중에야 우리는 그것을 '침대', '창문', '새소리'라는 이름으로 나누어 기억할 뿐이다. 경험은 처음부터 통째로 주어지고 생각은 그 뒤에 나타나 그것을 잘게 자른다.


생각은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으로 찍는 것과 비슷하다. 실제 풍경은 바람의 움직임과 햇빛의 온기, 냄새와 공간감까지 하나로 어우러져 있다. 그러나 사진은 그 가운데 일부만 잘라낸다. 생각은 경험이라는 살아있는 전체에서 필요한 부분만 떼어내어 이름을 붙이고 개념으로 만든다. 개념은 유용하지만 전체를 대신하지는 못한다.


우리는 생각이 경험보다 더 진실하다고 착각한다. '나는 저 사람을 안다.'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 사람에 대한 기억과 평가와 이미지의 묶음을 알고 있을 뿐이다. 살아있는 사람은 매 순간 변하여 한 번도 동일하지 않지만, 우리의 생각은 그를 하나의 고정된 대상으로 만들어버린다. 나무를 볼 때도 마찬가지다. '저것은 소나무다.'라는 생각이 떠오르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나무 자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소나무'라는 개념을 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분리·고정은 언어와 깊은 관련이 있다. 언어는 세상을 명사와 동사로 나누고, 주어와 목적어를 구별한다. '내가 꽃을 본다.'라는 문장은 보는 사람과 보이는 꽃이 서로 떨어져 있는 것처럼 표현한다. 그러나 실제 경험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지 하나의 '봄(見)'만 있을 뿐이다. 그 안에서 꽃의 색도, 보는 눈도, 따뜻한 햇살도 함께 존재한다. '나'와 '꽃'은 생각이 만들어낸 구분일 뿐이다.


불교에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라고 말한다. 이는 3단계의 인식의 전환을 설명하는 도구다. 입산하기 전에 우리는 산과 물을 개념을 통해 분별한다. 수행 과정에서 형체가 있는 모든 것은 비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님을 이해한다. 궁극적인 깨달음 이후에 다시 산은 여전히 산이고 물은 여전히 물이지만 그것들은 더 이상 분리된 대상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 속에서 통합적으로 드러남을 알게 된다. 분별심이 일어날 때는 세계가 나와 남, 좋음과 나쁨으로 나뉘지만, 분별 이전의 자리는 본래 하나이다.


아름다운 교향곡은 개별 음표들의 합이 아니다. 각각의 음은 전체 선율 안에서만 의미를 가진다. 음 하나만 떼어 놓는다면 음악이 아니듯 우리의 삶도 그와 같다. 하루의 기쁨과 슬픔, 성공과 실패, 만남과 이별은 따로 존재하는 사건들이 아니라 삶이라는 하나의 교향곡을 이루는 음들이다. 생각은 이 음들을 하나씩 떼어내 평가하고 비교한다. 그 결과 우리는 전체의 아름다움을 놓친 채 한 음의 실수만 붙잡고 괴로워하기도 한다.


고통 역시 이러한 분리에서 발생한다. 몸에 통증이 생기면 실제 경험은 단지 아픔일 뿐이다. 그런데 생각은 곧바로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앞으로 더 심해지면 어떡하지?', 라는 이야기를 덧붙인다. 통증 자체보다 생각이 만들어낸 이야기와 비교와 해석이 더 큰 고통을 낳는다. 현재의 통합된 경험은 비교적 단순하지만, 생각은 그것을 수많은 조각으로 나누어 복잡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생각이 불필요하다는 뜻은 아니다. 생각은 길을 찾고 문제를 해결하며 문명을 발전시키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도구다. 다만 도구가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지도가 땅을 대신할 수 없듯이 생각은 경험을 대신할 수 없다. 지도를 아무리 자세히 연구해도 실제 숲을 걷는 경험을 대신할 수 없는 것처럼 개념을 아무리 많이 알아도 살아있는 현재를 대신할 수는 없다.


생각은 세상을 나눈다. 경험은 세상을 하나로 만난다. 생각은 편리하지만 제한되어 있고, 경험은 말로 다 담을 수 없지만 온전하다. 우리는 개념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인 동시에, 그 이전에 이미 하나의 세계를 통째로 경험하는 존재이다. 지혜란 새로운 생각을 더 많이 얻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나누기 이전의 그 온전한 경험으로 다시 돌아가는 일이다. 그 자리에서는 나와 세계가 대립하지 않고, 삶은 더 이상 해석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살아지는 하나의 현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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