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재 상량문서 연못 조성 기록 확인
정영방 손자 생애 대조해 을유년 특정
관련 연구 결과 9월 조경학계 논문 발표
영양 서석지에서 발견된 주일재 상량문. 붉은 선 옆에 "을유년에 이 못을 파고 서석이라 이름 붙였다"는 뜻의 '歲乙酉 鑿斯池名曰瑞石'이라는 기록이 적혀 있다. <영양군 제공>
'1613년에 조성된 정원'으로 알려진 국가민속유산 영양 서석지의 역사를 다시 써야 할 기록이 발견됐다. 정영방이 연못을 파고 '서석지'라 이름 붙인 시점이 1645년이라는 내용이 주일재 상량문에서 확인된 것이다.
경북 영양군 산촌생활박물관은 '영양 서석지 세계유산 가치 발굴 기초연구' 과정에서 경정의 자양재에 보관돼 있던 주일재 상량문 3점을 조사했다. 이 가운데 정영방의 손자인 눌재 정요천이 지은 가장 오래된 상량문에서 '歲乙酉 鑿斯池名曰瑞石(세을유 착사지명왈서석)'이라는 구절을 찾아냈다. "을유년에 이 못을 파고 서석이라 이름 붙였다"는 뜻이다.
조사팀은 정요천의 생애와 상량문 내용을 대조해 기록 속 을유년을 1645년으로 판단했다. 정영방이 세상을 떠나기 5년 전이다. 60갑자상 다른 을유년도 있지만 정영방과 정요천의 생몰연대를 고려하면 1645년 외에는 성립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현재 남은 문서는 1919년 주일재를 중수할 당시 후손들이 앞선 상량문을 보고 옮겨 적은 전사본이다. 원본은 아니지만 정영방의 손자가 남긴 기록을 계승했고, 연못을 판 사실과 이름을 붙인 시점을 구체적으로 담고 있다는 점에서 조성 연대를 밝힐 주요 사료로 평가된다.
그동안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등은 서석지를 정영방이 1613년 조성한 것으로 소개해 왔다. 다만 "조성한 것으로 전해진다"거나 "축조했다고 전한다"고 표현했을 뿐 이를 뒷받침하는 명확한 문헌은 제시되지 않았다.
기존 공공 기록끼리도 차이가 있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예천 석문종택' 항목에는 정영방이 1636년 영양 입암으로 옮겨 서석지와 경정, 주일재 등을 지었다고 기록돼 있다. 이를 종합하면 정영방이 1610년대부터 연당리에 별서를 마련해 예천과 영양을 오가다가 병자호란 이후 입암에 정착하고, 1645년 연못을 파 서석지라 이름 붙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정영방은 1605년 진사시에 합격했지만 관직에는 나아가지 않고 학문에 전념했다. 따라서 기존에 알려진 '1613년 벼슬을 버리고 낙향했다'는 설명 역시 재검토가 필요한 부분이다.
국가민속유산 영양 서석지에 연꽃이 피어 있다. 왼쪽 건물은 정자인 경정으로, 최근 발견된 주일재 상량문을 통해 서석지의 조성 시점이 1645년이라는 기록이 확인됐다. <영양군 제공>
이영재 영양군 산촌생활박물관 학예연구사는 "기존 1613년설은 사료 분석 과정에서 잘못 해석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상량문에는 연못을 조성한 시점이 직접 기록돼 있으며, 글을 지은 인물의 생애를 대조해 을유년을 1645년으로 특정했다"며 "정확한 조성 연대를 확인한 것은 서석지의 세계유산 가치를 밝히는 데도 중요한 기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함께 조사된 나머지 상량문에는 17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경정과 주일재를 중수·보수한 과정도 담겼다. 조사팀은 이를 토대로 연못과 건축물의 변천 과정을 시기별로 정리하고 있다. 관련 연구 결과는 오는 9월 조경학계 논문을 통해 발표될 예정이다.
영양군 입암면 연당리에 있는 서석지는 연못을 중심으로 정자인 경정과 서재인 주일재, 사우단 등이 배치된 조선시대 별서정원이다. 못 바닥에서 솟아난 자연 암반에 선유석·통진교·낙성석 등의 이름을 붙여 자연경관과 성리학적 사유를 한 공간에 담아냈다. 1979년 국가민속유산으로 지정됐다.
정운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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