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진·졸속·과잉이 개혁 뇌관
‘바다 없는 해사’ 비효율적
경찰 김병기 수사 11개월째
고르비 글라스노스트 좌초
덩샤오핑은 대국굴기 초석
박규완 논설위원
# 조광조의 급진개혁='조선의 개혁가' 수식이 따라붙는 조광조. 그는 중종반정 후 조정에 출사, 유교적 이상정치를 실현하려 했으나 기묘사화로 무산된다. 김굉필에 수학한 조광조는 일찍이 사림의 영수가 됐다. 사림파는 훈구 세력의 잘못된 정치 관행과 권력형 비리를 타파하고자 했다. 반정 공신의 견제를 받았던 중종은 연산군 때 폐지됐던 유학의 상징 성균관을 복원하고 조광조를 발탁해 개혁을 시도한다.
중종의 신임을 업은 조광조는 민본정치를 내세우며 혁신을 주도했다. 하지만 현실보다 이상에 치우쳤으며 그 수단이 과격하고 급진적이었으니 훈구파와의 반목과 알력도 깊어졌다. 조광조는 반정 공신 76명의 위훈 박탈을 주장했으나, 공신 세력의 거센 반격에 화를 입는다. 조광조 등 70여명이 사약을 받았다. 훗날 율곡 이이의 술회가 애달프듯 명징하다. "오직 애석한 것은 조광조의 출세가 너무 일러 경세치용(經世致用·학문은 세상을 다스리는 데 유용해야 한다)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일하는 것도 급진적이었다"(율곡전서-동호문답).
# 어설픈 사관학교 통합=이재명 정부의 국방개혁 이슈는 단연 3군 사관학교 통합이다. 육·해·공군 간 벽을 허물고 융합형 인재 양성과 합동성 강화라는 통합 취지는 일면 온당하다. 하지만 대전 자운대 통합사관학교 구상은 섣부르고 물리적이며 작위적이다. '바다 없는 해사' '활주로 없는 공사'는 실용과 효율에 배치된다. 여론도 통합에 부정적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육군이 3번이나 쿠데타를 일으킨 점을 지적하며 "통합하면 이런 가능성이 좀 줄어들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현실과 동떨어진 진단이다. 3군 사관학교 통합 교육을 하는 태국은 쿠데타 빈발 국가다. 2024년엔 서울대 출신이 친위 쿠데타를 일으키지 않았나. 육사 동창회는 서울 태릉의 육사 부지에 아파트를 지으려고 통합을 밀어붙인다고 의심한다. 태릉이 탐난다면 육사만 지방으로 옮기면 될 일이다. 사관학교 통합은 심모원려의 밑그림과 치밀한 설계 그리고 공론화와 숙성의 시간이 필요하다.
개혁을 실패로 유인하는 3대 뇌관은 급진·졸속·과잉이다. 2004년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차지한 열린우리당의 국가보안법 폐지 추진 때 국보법 7조 독소조항을 삭제하는 데 여야가 합의했다. 하지만 유시민 의원 등 강경파가 국보법 폐지를 완강하게 주장하며 법 개정에 실패했다. 7조 독소조항은 지금 그대로 살아있다. 강성 일변 개혁의 나쁜 결과다. 사관학교 통합도 복수의 뇌관이 잠재한다.
# '검수완박'은 강경파 주술=검찰 보완수사권 폐지는 사실은 정청래·김용민 의원 등 민주당 강경파 작품이고, '검수완박'은 그들의 주술이었다. 김병기 전 민주당 원내대표 수사를 11개월째 뭉그적거리는 경찰을 믿으라고? 전건송치 조항 없이 보완수사권까지 박탈한 개정 형사소송법은 박찬운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지적대로 "개혁 과잉"이다. 율곡이 언급한 경세치용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경찰의 부실수사와 사건 암장은 이제 누가 통제하나.
우리 증시도 너무 빨리 올라 탈이 나지 않았나. 개혁도 마찬가지다. 고르바초프의 개방·개혁 정책 글로스노스트와 페레스트로이카는 좌초됐다. 급진개혁이 급격한 물가상승과 경제 혼란을 야기했고, 보수파의 쿠데타에 의한 정치 분열이 소련 해체로 이어졌다. 반면, 덩샤오핑의 시장에 순응한 점진개혁은 성공 궤도에 안착하며 도광양회에서 대국굴기 변환의 초석을 놓았다. 개혁이랍시고 개악할 거면 차라리 무위(無爲)가 낫다. 논설위원
박재일
30년 현장 경험을 자양분 삼아 사설과 칼럼을 집필합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