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의 불안, 성장의 불씨가 되려면
윤일현 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 대표
청소년기를 흔히 '혼돈과 모색의 시기'라고 부른다. 몸이 자라고 목소리가 변하는 것만이 아니다. 가치관이 흔들리고, 부모와의 관계가 달라지며,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처음으로 삶의 중심에 들어선다. 어제까지는 부모가 정해 준 길을 따라 걸었지만, 이제는 스스로 인생의 방향을 선택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불안이 찾아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은 청소년기에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면 역할 혼란을 겪는다고 설명했다.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잘하는 사람인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불안을 느끼는 것은 성장의 일부다. 철학자 키르케고르 역시 인간은 무한한 가능성 앞에서 '자유의 현기증'을 경험한다고 말했다. 미래가 열려 있다는 사실은 희망인 동시에 불안의 원천이기도 하다. 더욱이 오늘날 청소년들은 치열한 입시 경쟁, 빠르게 변하는 인공지능 시대, 스마트폰 화면 속 타인의 화려한 일상과 자신을 비교하는 현실 속에서 이전 세대보다 더 큰 불안을 경험하고 있다.
불안을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적절한 불안은 인간을 성장시키는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심리학의 '예크스-도드슨 법칙(Yerkes-Dodson law)'은 적당한 긴장과 각성이 오히려 집중력과 수행 능력을 높인다고 설명한다. 더 나은 자신이 되고 싶고 꿈을 이루고 싶기에 느끼는 불안은 성장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발표를 앞두고 긴장한 학생이 더 열심히 준비하는 일은 흔하다. 어쩌면 불안은 갈망의 또 다른 이름인지도 모른다. 아무런 꿈도, 목표도 없는 사람은 불안을 느끼지 않는다.
문제는 불안의 크기와 방향이다. 성장을 향한 불안은 사람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지만, 존재를 위협하는 불안은 사람을 무너뜨린다. "조금 더 잘하고 싶다"라는 마음은 발전의 씨앗이 되지만, "실패하면 내 인생은 끝이다.", "성적이 나의 모든 것을 대변한다."라는 생각은 영혼을 갉아먹는다. 막연한 불안은 도전을 멈추게 하고 자신을 믿지 못하게 하며 가능성 자체를 포기하게 만든다. 특히 불안이 오래 지속되면 집중력과 자기효능감이 떨어져 학업뿐 아니라 인간관계와 정서 발달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안타까운 것은 오늘날 우리 사회가 이러한 청소년들의 성장통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부모와 학교, 사회는 아이들의 내면을 세심하게 살피기보다 눈에 보이는 성과와 결과를 앞세우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 결과 아이들은 사랑받기 위해서는 성공해야 한다고 믿는다. 존재 자체가 아니라 성취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 한다. 이러한 조건부 자존감은 완벽주의와 실패 공포를 낳고, 심하면 무기력과 자기혐오로 이어질 수도 있다. 교육심리학에서도 외적 보상과 평가가 강조될수록 학습의 즐거움과 내적 동기가 약화한다고 본다. 스스로 성장한다는 감각보다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일이 삶의 목적이 될 때, 불안은 발전의 에너지가 아니라 삶을 소모하는 짐이 된다.
교육의 목적은 불안을 없애는 데 있지 않다. 그것을 다루는 힘을 길러 주는 데 있다. '자기결정성이론'은 인간이 자율성, 유능감, 관계성을 경험할 때 건강하게 성장한다고 말한다. 부모는 "왜 그것밖에 못 했니?"보다 "그만큼 잘하고 싶었구나."라고 말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부모와 교사는 점수만 평가하는 사람이 아니라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희망을 심어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회 역시 청소년을, 성과를 만들어 내는 존재가 아니라 성장하는 존재로 바라보아야 한다.
청소년기는 질풍노도의 시간이다. 그러나 모든 폭풍이 파괴만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거센 바람은 나무의 뿌리를 더 깊게 만들고, 파도는 바위를 단단하게 다듬는다. 청소년기의 불안도 마찬가지다. 이해받지 못한 불안은 상처가 되지만, 존중받고 함께 나누는 불안은 성숙의 밑거름이 된다. 결국 청소년의 마음을 지탱하는 것은 완벽한 성적이 아니라 자신을 믿어 주는 한 사람의 시선이며, 실패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경험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불안 없는 청소년이 아니다. 불안을 희망으로 바꾸는 법을 배우는 청소년이다. 경쟁이나 긴장을 없애는 것은 교육이 아니다. 자신의 불안을 꿈과 연결하고, 실패를 배움으로 받아들이며, 결과보다 성장의 과정을 신뢰하도록 돕는 것, 그것이 바로 이 흔들림의 시간을 슬기롭게 건너게 하는 교육이다. 성숙은 불안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불안을 품은 채 자신의 길을 끝까지 걸어갈 수 있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그 용기를 길러 주는 일이야말로 교육이 감당해야 할 가장 소중한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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