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찬 구조동물 외과센터 홍금동물병원 원장
우리 병원에는 다양한 사연을 가진 동물들이 찾아온다. 그중에는 조금 특별한 과거를 가진 개들도 있다. 바로 연구와 실험을 위해 살아온 실험견들이다. 비글은 온순한 성격과 적당한 체격으로 오랫동안 반려견으로 사랑받아 왔지만, 역설적으로 이러한 특성 때문에 실험동물로도 널리 이용되어 왔다. 사람의 손길을 잘 받아들이고 반복적인 검사와 처치가 용이하며, 오랜 기간 연구에 사용되면서 관련 자료가 많이 축적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험견으로 지냈던 비글들을 진료하다 보면 유독 기억에 남는 모습이 있다. 진료대에 올려놓으면 몸에 힘을 빼고 가만히 우리에게 몸을 맡긴다. 정맥주사를 위해 바늘을 찔러도 피하려 하기보다 조용히 기다리는 경우가 많다. 반복되는 검사와 처치에 익숙해진 것인지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수의사에게는 진료하기 편한 환자일지 모르지만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음 한편이 편하지만은 않다.
실험실 밖으로 나왔다고 곧바로 평범한 반려견의 삶이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건강검진과 예방접종, 중성화와 치과치료가 필요하기도 하고, 우리 병원을 찾은 아이들 중에는 다리가 좋지 않아 수술을 받아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과거 이 아이들이 받았던 검사와 처치가 사람을 위한 것이었다면, 이제 병원에서 받는 치료는 온전히 자신의 삶을 위한 것이다.
우리 병원을 찾아온 실험견 중에는 내가 대학원에 있던 시절 만났던 아이들도 있었다. 당시 학생들의 교육과 실습을 위해 함께했던 비글들이었다. 학교에 있을 때 밖으로 데리고 나가면 낯선 세상이 무서운지 한 발짝도 떼지 못하고 몸을 움츠린 채 떨던 아이들이었다.
몇 년이 지나 다시 만난 아이들은 구조된 지 두어 달이 지난 뒤였다. 사람들과 제법 능숙하게 산책을 하고 간식을 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다른 개들에게는 너무나 평범한 행동이지만 과거의 모습을 기억하는 나에게는 그 평범함이 무척 반가웠다. 무엇보다 마음 한편에 미안함으로 남아 있던 아이들을 수의사와 환자로 다시 만나, 이번에는 그 아이들을 위해 치료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내게도 특별한 경험으로 남았다.
2025년 한 해 동안 국내 동물실험에 사용된 개는 1만7천85마리에 이른다. 동물실험의 윤리성과는 별개로, 실험이 끝난 동물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를 주는 것은 우리 사회의 몫이다. 연구기관의 분양, 구조단체의 사회화 지원, 그리고 수의사의 의료지원이 더해진다면, 실험실을 나서는 그날은 실험의 끝이 아닌 온전한 반려견으로 살아가는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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