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여당이 아무리 잘못해도 야당의 지지도가 오르지 않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정확한 진단이다. 격랑의 정국 속에서 국민의힘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국민의힘은 제1야당으로서의 존재감이 없다. 대여 견제의 동력도 찾아보기 힘들다.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이 부동산과 민생 이슈로 흔들리고 있음에도 그 반사이익을 전혀 누리지 못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 나타난 국민의힘의 '성적표'는 참담하다.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긍정 평가가 취임 후 최저치를 기록했지만, 국민의힘 지지도는 20%대의 박스권에 갇혀 있다. 반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 지지율 하락세 속에서도 40%대 안팎을 유지하며 정당 지지도 1위를 고수하고 있다.
국민의힘의 속내와 기류는 당권파와 비당권파가 벌이는 볼썽사나운 권력투쟁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장동혁 대표를 중심으로 한 당권파는 지도권 확립에 여념이 없다. 비당권파에 대한 징계 추진과 당협위원장 교체 구상에서 보듯, 외연 확장을 고민하기보다 당의 주도권을 쥐는 데만 혈안이 돼 있다. 비당권파 역시 당 지도부의 독주를 막고 당권을 탈환하는 것에 사활을 걸고 있다. 당권파와 비당권파 모두 중도층 이탈이나 지지율 정체보다 '당내 주도권 상실'을 더 큰 위기로 받아들이고 있다. 기득권 쟁탈전에 매몰되어 있으니 정부여당을 향해야 할 투쟁의 칼날이 내부 힘겨루기에만 쓰이고 있다.
민심에 역행하는 행보는 한심함을 더한다. 이진숙 의원(대구 달성군)이 공동 주최한 5·18 민주화운동 재조명 포럼은 중도 확장성을 파괴하고 역사적 합의마저 흔드는 자폭성 행위이다. 원내 지도부의 경고와 취소 요청마저 무시한 채 강행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정부여당의 실정으로 돌아선 중도층의 민심을 도로 쫓아내고, 여당에 역공의 빌미만 제공한 꼴이다. 이 대통령과의 골프 회동으로 '개헌 논란'을 자초한 TK(대구경북) 중진 의원들의 경솔함이나 상임위 배정에 불만을 품고 원내대표의 멱살을 잡은 권영진 의원(대구 달서병)의 행태도 당의 리더십 부재와 총체적 기강 해이를 증명한다. 'TK 패싱' 논란으로 분노하는 지역민과 민생고에 시달리는 국민의 삶은 안중에도 없는 태도다.
야당의 자멸은 단순히 한 정당의 비극으로 끝나지 않는다. 합리적이고 강력한 야당의 부재는 집권여당의 오만과 독선을 방치해 민주주의의 견제와 균형 시스템을 무너뜨린다. 제 역할을 못 하는 야당이야말로 여권의 가장 든든한 우군이라는 비아냥을 국민의힘은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새로운 집권 태세 없이는 여당의 잘못을 막을 수 없다"는 경고를 국민의힘은 새겨야 한다.
논설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