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서구와 달서구 분구 때 갈라진 40년 넘은 아파트
노후화 심각한데 재개발 추진도 ‘두 자치구’가 선결과제
“아무리 이야기해도 안 된다”…주민들 이미 체념 상태
14일 대구 서구 중리동 일신아파트 단지 앞 도로에 차량들이 세워져 있다. 큰 도로와 시장 인근에 자리한 노후 아파트 특성상 주차 공간이 부족해 보행 여건이 좋지 않았다. 구경모 기자
대구 달서구 감삼동과 서구 중리동에 걸쳐 있는 일신아파트. 한 단지 안에서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관할 구청이 달라진다. 전체 11개 동 가운데 2개 동은 달서구, 나머지는 서구에 속한다. 40여 년 전 행정구역 경계가 그은 선이 아파트를 둘로 갈라놓은 셈이다.
문제는 시간이 흐르면서 이 경계가 단순한 행정상 구분을 넘어 노후 주거환경 개선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4일 낮 12시에 찾은 일신아파트는 노후 주거지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단지 주변으로 차량 통행이 많은 도로와 시장, 오래된 주택가가 맞닿아 있었고 생활도로엔 차량이 빼곡하게 주차돼 보행 공간도 넉넉하지 않았다.
1980~1985년 건립된 일신아파트는 올해로 준공 후 40년을 훌쩍 넘겼다. 건물 외벽과 처마 등이 노후화하면서 최근에는 처마 일부가 떨어져 주차된 차량이 파손되는 사고도 발생했다. 벽체 균열과 누수도 반복되고 있다.
주민들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재개발 등 주거환경 개선으로 쏠리고 있다. 하지만 단지를 하나로 묶어 정비사업을 추진하기엔 행정구역이 둘로 나눠 있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달서구 관할 동만 따로 정비사업을 추진할 경우 사업 부지가 좁아지고, 놀이터와 주차장 등 공동시설을 확보하는 데도 제약이 따른다. 반대로 단지 전체를 하나로 묶으려면 서로 다른 자치구의 행정 절차와 이해관계를 조율해야 한다.
8동 주민 황건용(53)씨는 "달서구와 서구로 나눠 있어 행정 절차나 여건이 서로 달라 복잡할 수밖에 없다"며 "몇 개 동만 따로 떼어서는 부지가 좁고, 놀이터나 주차장 같은 시설까지 갖추려면 사업성이 나오기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일상에서도 행정구역 경계를 느낄 수 있다. 대표적인 게 대형폐기물 처리 방식이다. 달서구는 전화로 수거를 요청하지만 서구는 스티커를 구입해 부착해야 한다.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도 관할에 따라 처리 방식이 다른 것이다.
다만 모든 주민들이 행정구역 분리 자체를 큰 불편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정혜숙(57·여)씨는 "오랫동안 살면서 특별히 불편하다고 느낀 적은 없다"며 "쓰레기 배출이나 행정 처리 방식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각자 관할 구청 방식에 맞춰 생활해 왔다"고 했다.
오히려 주민들이 공통적으로 호소하는 것은 불편함보다 변화가 없다는 점이 고착화 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수년간 일신아파트와 관련해 달서구와 서구에 공식적으로 접수된 민원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주민들은 고령층이 많고, 수십 년 동안 같은 문제가 반복되면서 적극적으로 민원을 제기할 의욕조차 사라졌다고 입을 모았다.
35년째 이곳에 거주한 15동 대표(66·여)는 "구의원, 시의원, 국회의원 등에게 계속 이야기해도 행정구역이 나뉘어 있어 쉽지 않다는 이야기만 들었다"며 "아무리 이야기해도 안 되니까 이제는 손을 쓸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달서구 끝에 있어 구청에서도 별다른 관심이 없고 서구청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고 덧붙였다.
1988년 달서구와 서구가 분구될 당시 인구와 법정동, 자연도로 등을 기준으로 정해진 행정구역 경계는 40년 가까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1994년 달서구 관할 2개 동을 서구로 편입하는 방안을 놓고 주민 의견조사가 실시됐지만 61.2%가 서구 편입에 반대했다. 2004년에도 조사가 이뤄졌지만 행정구역 조정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경계가 만들어진 뒤 세월은 흘렀지만 아파트를 둘러싼 행정구역은 그대로다. 그 사이 건물은 노후화됐고, 주민들의 주거환경 개선 요구는 쌓여가고 있다.
경북대 하혜수 행정학부 교수는 자치구 간 행정구역 경계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해결되기 어려운 이유로 자치단체 간 이해관계를 꼽았다.
하 교수는 "손해 보는 자치단체는 동의하지 않을 것이고, 이익 보는 자치단체에서 적극적으로 나서면 욕심쟁이라고 비판받아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며 "주민들이 문제를 제기해 주민투표를 붙이는 등의 방법도 있지만, 연로한 주민들이 많다면 적극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현목
대구경북 대학과 보훈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살아 있는 기사를 작성하는데 집중하고 한번쯤 생각날수 있는 기사를 추구합니다.
구경모(대구)
대구 서구와 북구를 맡고있습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