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염색산업단지 전경. 영남일보 DB
대구 경제가 암울하다. 수십년 대구 경제를 떠받혔던 전통산업이 연쇄 폐업의 공포로 내몰리고 있다. 업력 20~30년의 튼실한 중견기업이 쓰러지거나 기업회생 처지에 놓였고, 이보다 규모가 작은 영세 업체들은 수주 감소와 수익성 악화를 견디지 못해 스스로 폐업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대구 경제가 미래모빌리티나 로봇산업과 같은 신산업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지만, 여전히 섬유·건설 등 전통산업은 대구 경제를 지탱하는 한 축으로 남아있다. 이들 산업이 자금력 한계와 경기침체, 산업 구조 변화 등으로 맞닥뜨린 위기는 자칫 대구 경제 전반으로 확산될 우려가 나온다.
태왕이앤씨의 법정관리 신청과 관련해 추경호 대구시장이 긴급 관계기관 회의를 열고 있다. 윤정혜 기자
◆ '음(-)'에 빠진 대구 건설업
건축원가 폭등과 수년째 계속된 주택경기 침체, 수주물량 감소를 겪고 있는 대구 건설산업이 막다른 길까지 몰렸다. 지역 경기 전후방 효과가 상당한 건설업의 장기 음(마이너스)의 성장률은 대구 경제성장률마저 주저앉힐 정도다.
대구의 건설산업 성장률은 2023년부터 3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률을 나타내는 중이다. 전년동기대비 연도별 대구 건설업 성장률은 2023년 -2.9%에서 2024년 -21.4%, 2025년 -19.2%로 '음의 고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마이너스 성장률에서 추가 하락하는 악화일로가 지속되고 있어 최근 계속되는 건설업 침체 상황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건설업 성장률의 큰 폭 하락으로 이 기간 대구 경제성장률도 2024년 -0.8%, 2025년 -1.3%를 나타냈다. 동시에 건설산업이 대구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2024년 4.9%에서 지난해 3.9% 수준으로 밀려났다.
이러한 지역 건설산업 침체는 중소 건설사의 줄폐업을 넘어 중견건설사로까지 번졌다. 지난달 대구 3위 중견건설사 태왕이앤씨는 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대구에서 전국시공능력평가액 100위권 기업의 기업회생절차 신청은 2000년 중견건설사 서한 이후 무려 26년 만의 일이다. 지방을 중심으로 한 주택건설경기 침체로 분양사업에서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했고, 높아진 금리로 인한 금융비용 또한 급증하면서 유동성이 바닥날 만큼 자금 경색을 겪어온 게 배경이다.
태왕이앤씨가 기업회생으로 재기할 준비를 하고 있지만 규모가 작은 건설사들은 수익성 악화와 수주감소로 줄폐업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KISCON)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9년까지 연간 10개 미만에 그친 대구 종합건설사 폐업 규모는 건설경기가 얼어붙기 시작한 2023년 22곳, 2024년과 2025년도 각각 13곳, 21곳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올해도 8월 말까지 이미 16곳이 수주 감소와 사업포기로 문을 닫았다. 종합건설업을 포함한 대구 전체 건설사 폐업도 올해 이미 70곳이나 된다. 이 수준이라면 연말에 100곳을 넘을 것으로 보여 2023년 이후 4년 연속 연간 폐업수가 100을 넘길 것으로 보인다.
그래픽=염정빈기자
◆벼랑 끝 몰리는 염색산업
대구 경제의 한 축을 지탱해 온 염색산업의 경영난이 한계로 치닫고 있다. 2일 대구시와 대구염색산업단지관리공단 등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염색산단 가동률은 51.6%다. 전체 산단 평균 가동률(72.08%)보다 20%포인트 이상 낮다. 입주기업 2곳 중 1곳은 개점휴업 상태다.
생산활동을 나타내는 주요 지표도 내리막길이다. 올해 1~7월 염색산단 열병합발전소의 증기 공급량은 74만609t으로, 전년 동기(77만9천346t)보다 5.0% 감소했다. 10년 전인 2016년(129만9천35t)보다는 43.0% 급감했다. 폐수 유입량에도 생산 위축은 고스란히 드러난다. 올해 7월까지 공동폐수 1처리장과 2처리장의 누적 유입량은 각각 859만1천379㎥, 135만2천118㎥다. 10년 전보다 각각 36.6%, 55.2% 감소했다.
증기 공급량과 폐수 유입량은 염색산단의 생산량을 나타내는 대표 지표다. 입주업체들은 염색·가공에 필요한 증기를 열병합발전소에서 공급받고 작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수를 공동폐수처리장에서 처리한다. 가동률이 50% 초반에 머무는 데다 증기 사용량과 폐수 유입량마저 장기간 감소하면서 염색산단의 생산기반이 빠르게 위축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경영난이 깊어지면서 가동을 멈추는 업체도 늘고 있다. 현재 염색산단 입주업체 127곳 중 9곳은 가동을 중단한 상태다. 작년 7월 미가동 업체가 5곳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1년 새 4곳이나 늘었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 중견 염색업체인 <주>청운다이텍의 부도는 업계의 위기감을 더 키우고 있다.
업황 침체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코로나19 이후 지역 원사 생산기반까지 빠르게 약화하면서 업계의 일감 감소를 부추기고 있다는 분석이다. 원사·제직산업의 위축은 후공정인 염색업계의 물량 감소와 직결된다. 여기에 중동 전쟁·환율 하락 등 대외 악재까지 겹치면서 업계에서는 코로나 이전보다 물량이 30~40%가량 줄어든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감은 줄었지만 비용 부담은 여전하다. 대규모 설비를 가동하는 업종 특성상 생산량이 줄어도 설비 유지비와 인건비 등 고정비를 크게 줄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여기에 고금리와 원자재·에너지 비용 부담까지 겹치면서 상당수 업체가 한계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익명을 요구한 염색기업 대표는 "가장 큰 문제는 일감이 없다는 점이다. 물량은 계속 줄어드는데 인건비와 각종 고정비는 그대로 나가다 보니 버틸 여력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며 "지금 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청운다이텍과 같은 사례가 추가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지난해 폐업한 K1식자재마트 수성점 내부. 영남일보 DB
◆ 유통산업도 줄폐업
대구 유통업계에서도 '줄폐업'이 이어지고 있다. 지역 상권 침체와 제반비용 상승 등으로 대형마트, 아울렛, 중소형마트를 막론하고 잇따라 문을 닫고 있다.
지난달 대형 유통업체인 NC아울렛 엑스코점이 폐점했고, 탑마트 대구점은 이달말 문을 닫는다. 엑스코점의 경우 임대차 계약 연장 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문을 닫았지만, 지역 상당수 다른 점포는 경영 악화와 대규모 유통 공룡과 경쟁을 버티지 못해 부도가 나거나 폐업하게 된 경우다.
시작은 대구백화점이다. 대구백화점 본점은 2021년 6월 30일을 끝으로 잠정 휴점에 들어갔다. 사실상의 폐점이다. 그동안 제이에이치비홀딩스, 세경인베스트 등에서 인수 의사를 밝혀 계약을 체결했으나 좌초돼 지역의 큰 고민거리로 남았다.
대형마트는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해 홈플러스 내당점을 시작으로 올 초 동촌점이 줄지어 문을 닫았다. 상인점도 이달 폐업을 앞두고 있다. 앞서 작년 연말에는 대구에 본사를 둔 중견 유통업체 K1식자재마트가 만기 도래 어음을 갚지 못해 부도처리됐다. 2일 기준 지역 내 영업 중인 대형 유통업체는 29곳이지만 홈플러스 상인점과 탑마트 대구점이 이달 문을 닫으면 27곳으로 줄어든다. 2020년(40개)과 비교하면 5년여 만에 13개 줄었다.
이탓에 지역 상권 침체도 가속화되고 있다. 유통 대기업과 대형 매장들이 떠난 자리는 장기간 공실로 남아 인근 유동 인구가 급감했고, 이는 주변 소상공인과 골목 상권의 연쇄 매출 타격 및 고용 불안으로 이어지고 있다. 남은 지역 유통업체도 안심하긴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익명을 요구한 지역 유통업계 관계자는 "대구 유통업계의 연속된 폐업은 단순한 기업 문제를 넘어 지역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매우 우려스럽다"며 "앞으로는 단순 가격 경쟁에서 벗어나, 지역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특화 콘텐츠와 오프라인만 차별화된 경험으로 기회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정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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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
대구시청 경제부서와 산업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작은 목소리도 끝까지 듣겠습니다.
이남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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