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효상 법무법인 대륙아주 고문
그동안 조희대 대법원장을 아주 괜찮은 판사로 생각해왔다. 주변에서 '딸깍발이' 같은 사람이란 평을 들어왔다. '딸깍발이'란 '가난한 선비'를 칭하는 말로서, 옛날 서울 남산골에 살던 가난한 선비들이 신발을 따로 장만하지 못해 맑은 날에도 나막신을 신고 다녔는데, 이때 나막신이 땅에 부딪히며 나는 '딸깍딸깍' 소리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가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하기 전 부친상 때 받은 조의금을 봉투째 돌려줬다는 기사를 접한 터라 더욱 신뢰가 갔다.
특히 국감에서 서슬 퍼런 청와대의 대법관 재제청 압력에 대해 '제청권에 대한 간섭은 위헌'이라고 저항하는 것을 보고는 약간의 존경심마저 일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안타깝게도 불과 몇 시간 만에 산산조각 나 버렸다. 국감 도중 조 대법원장의 업무추진비에 대한 해명을 듣고서였다.
그는 대법원장의 업무추진비로 값비싼 일식 오마카세 등이 지출된 데 대해 "3만원짜리나 2만원짜리로 자주 모이면 좋은데(법관들이 자주 모이기를 싫어해서) 한번씩 만나되 대신 그동안 못 먹어보던 음식을 먹어보고 싶다는 것이 우리 구성원들의 소망"이라고 답했다.
이 발언에 억장이 무너진 것은 서민들뿐이 아니었다. 당장 법원 내부망 익명게시판부터 이를 비판하는 글들이 이어졌다. 한 법원 직원은 "저 발언이 과연 한 나라의 사법부를 이끄는 대법원장의 입에서 나올 말인가"라고 썼고, 다른 직원은 "대법관과 직원들을 한순간에 비싼 밥 못 먹어 안달 난 집단으로 전락시켰다"고 꼬집었다.
조 대법원장의 이 발언을 보도한 언론 기사에는 험악한 댓글들이 넘쳐났다. "결론은 청탁금지법 위반했다는 자백", "세금으로 오마카세 털어 먹는가", "1천원짜리 초코파이 절도에 유죄(1심)를 판결하는 양반들이…" 등 일반인들의 성토가 더 매서웠다.
학창 시절, 판사라는 직업은 청렴한 선비와 같아서 권력과 돈을 추구하려는 사람은 해서는 안 된다고 배웠다. 대표적인 사례가 1947년 패전 후 일본에서 영양실조로 사망한 도쿄지방재판소의 야마구치(山口良忠) 판사였다. 당시 일본정부는 식량난으로 모든 식량을 정부가 배급하면서 암시장 거래를 불법화했고, 그는 암시장의 불법 거래를 재판하는 담당판사였다. 어른 1인당 식량 배급량이 300g에 불과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암시장을 이용했으나 이 판사는 거부했고, 결국 영양실조에 걸려 재판소 계단에서 쓰러졌다.
한국에서도 '사도법관' 김홍섭(金洪燮) 판사가 있었다. 죄수들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보여 '법복을 입은 성직자'로 불렸다.
판사 시절 그는 줄곧 반찬으로 단무지 한가지만을 넣은 도시락을 들고 출근했다. 점심시간이면 다른 직원들이 모두 나간 뒤 혼자서 먹곤 했다고 한다. 그가 전주지법원장으로 부임했을 때 기관장들이 모여 축하연을 열자 "어디서 돈이 생겨 이런 자리를 마련했느냐"고 물리쳤다는 일화도 있다. 그의 부인은 "무심결에 제가 (남편과) 같이 관용차를 타려다 불호령을 들은 적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요사이 판사들의 행태를 보면 '청빈한 판사'들의 이야기는 케케묵은 전설이 된 지 오래인 듯하다. 2025년 3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취소 결정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던 지귀연 부장판사는 결국 변호사들과 유흥업소를 드나든 사실이 드러나 불구속 기소되고 법관징계 위원회에 회부됐다.
중앙선관위원장을 겸직했던 노태악 대법관은 호주와 유럽에 3차례나 비공개로 배우자와 동행출장했다가 출장비 4천700여만원을 반납했다. 그는 관직이 그리 좋은지 대법관 퇴임 이후에도 중앙선관위원장직에 눌러앉아 있다가 6·3 지방선거 관리 실패로 망신을 당했다.
가끔 민감한 재판을 맡고 있는 현직 고위법관들이 변호사들에게까지 자기 자녀들의 혼사를 알리는 것을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 적이 많다. 현직도 아닌 김부겸 전 총리조차 최근 3녀의 결혼을 가족친지들만 초청한 '작은 결혼식'으로 치렀다고 하지 않는가.
사법부의 독립은 소중한 헌법적 원칙이고 공동체의 한 기둥이다. 하지만 사법부라고 대법원장의 처신이나 판사들의 재판이 성역일 수 없다. 국민 세금으로 공짜로 고급 음식을 사 먹는 것이 공직자들의 특권도 아닐 것이다.
특히 행정부, 국회와 사법부의 독립을 놓고 싸우는 처지라면, 스스로 성찰하고 청렴해야 빌미를 주지 않을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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