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국부터 5년 뒤까지” 추적 관리와 네트워킹
18개월 직업 찾도록 구직 비자 부여와 동문 네트워크
세계적 반도체 기업 TSMC 연계부터 취업 모니터링까지
대만에서 '반도체 인재 양성 프로그램(STIPT)'을 마치고 돌아온 학생들을 환영하기 위해 열린 네트워킹 행사 모습. 드레스덴 공과대학교 홈페이지
대구 청년들이 겪는 '직무 절벽'의 근본 원인 중 하나는 대학 교육과 기업 현장 실무의 괴리다. 지역 중소·중견기업은 "당장 현장에 투입할 인재가 없다"고 호소하고 청년들은 "실무 경험을 쌓을 기회가 없다"며 대구를 떠나는 미스매치가 반복되고 있다.
청년들이 수도권으로 떠나지 않도록 하려면 대학을 졸업하기 전 현장 기업들이 실제 필요로 하는 실무 역량과 청년들을 묶어주는 '조기 연결 구조'가 절실하다. 단순한 일회성 체험을 넘어, 취업 경로로 안착할 수 있도록 지자체와 대학이 구조적인 브릿지 역할을 해야 하는 것.
하지만 지역 대학의 산학 연계가 실제 취업 성과로 이어지는 데는 한계가 있다. 대기업과의 채용 연계를 통해 지역 인재의 취업 경로를 확보하는 계약학과도 대학과 전공에 따라 성과 차이가 뚜렷하다. 대학알리미의 2025년 계약학과 운영 현황을 보면, 경북대 모바일공학전공은 채용조건형 졸업자 19명 전원이 계약 산업체에 취업한 반면, 대구한의대 다문화복지한국어학과는 졸업자 15명 가운데 계약 산업체 취업자가 없었다.
산학연계 프로그램의 성과도 제한적이다. 대학알리미의 2024년 주문식 교육과정 운영 현황에 따르면 구 지역 대학의 약정 산업체 취업자는 3명으로 집계됐다. 서울(68명), 부산(25명), 대전(14명) 등과 비교하면 적은 규모다.
다만 지역별 대학 수와 주문식 교육과정 운영 규모가 다른 만큼 취업자 수만으로 성과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대학별 참여 규모와 운영 과정 수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구에서는 경북대가 LG디스플레이·DB하이텍과 연계한 2개 과정을 운영했으며, 약정 산업체 취업자는 LG디스플레이 연계 과정의 3명에 그쳤다. 타 산업체 취업자 6명을 포함한 전체 취업자는 9명이었다.
취업의 사다리가 돼야 할 제도가 제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지역 청년들의 '직무 절벽'은 결국 '탈대구'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해외의 성공적인 산업 도시들을 살펴보면 그 해답의 실마리가 보인다.
독일은 대학과 기업이 결합된 산학일체형 시스템을 통해 청년의 지역 정착을 유도하고 있다. 독일은 청년들이 학교와 기업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산학일체' 시스템을 통해 일찌감치 커리어 경로를 개척하도록 하고 있었다.
◆대학과 글로벌 딥테크 잇는 'STIPT'
드레스덴 공과대학교는 독일 최대 규모의 공과대학교 중 하나이자, 독일에서 가장 선도적이고 역동적인 대학으로 꼽힌다. 5개 단과대학 17개 학부에서 119 개의 다양한 학위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TUD에는 8천500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으며 약 2만9천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전체 학생의 약 20%가 해외 유학생이다. 이나영기자
독일의 작센주에는 대학과 산업 현장을 정밀하게 잇는 인재 양성 시스템이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TU드레스덴이 작센주의 위탁을 받아 출범시킨 반도체 인재 양성 프로그램 'STIPT(Semiconductor Talent Incubation Program Taiwan)'다. STIPT는 반도체 분야 특화를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사전 교육을 제공하고, 관련 기업들과 긴밀히 연결해주는 맞춤형 산학협력 인재 양성 프로그램이다. 대만 현지 대학에서 4개월간의 학업 프로그램과 세계적 반도체 기업 TSMC의 실무 교육을 결합해 운영된다. 독일 대학에서 이공계를 전공하는 학생이라면 내국인뿐만 아니라 국제 학생도 모두 지원할 수 있다. 작센주 과학문화관광부(SMWK)와 연방 연구기술우주부(BMFTR)는 프로그램 운영비와 대만 현지 프로그램 비용을 지원하며, 여행비(1천500 유로)와 현지 생활비(월 700유로)를 정액 지급한다.
작센주 학생과 직원들의 해외 교류를 지원하며 STIPT프로그램 운영에도 참여하는 레오나르도-작센(Leonardo-Sachsen)의 클라우디아 라이셔트씨는 "대만 대학들이 TSMC와 협의해 가장 적합한 맞춤형 모듈을 개설하기 때문에 TSMC도 준비가 잘 된 학생들을 받을 수 있다"며 "운영과정에서 대만 대학들이 학사·석사 과정생별로 모듈을 다르게 조정해, 졸업을 앞둔 학생들이 더 빨리 업계에 진출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대학과 지역 산업계의 연계는 단순 교육 제공이나 일회성 실습에 그치지 않는다. STIPT 측은 수료생들이 어디서 커리어를 시작하는지 모니터링 조사를 하고 있으며, 3~5년 후 이들이 어떤 경로를 걸었는지 다시 살피는 중장기 추적 조사도 계획하고 있다.
또 참여 학생들이 드레스덴에 기반을 둔 유럽 최대 규모의 반도체 클러스터인 '실리콘 작소니'의 행사나 대만에서 개최되는 박람회에 보다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미 취업한 동문들을 오리엔테이션에 초청해 강력한 동문 네트워크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지역 정착을 돕는 제도적 장치도 촘촘하다. 독일 교육과정의 핵심인 '정규 실습학기'를 통해 이론을 현장에 적용하는 기회를 필수적으로 제공한다. 또한 국제 학생의 경우 연간 140일의 근로가 허용되며, 학업을 성공적으로 마치면 최대 18개월간 직업을 찾을 수 있는 구직 체류허가를 받을 수 있다.
TU 드레스덴 커리어서비스팀의 브란트씨는 "커리어서비스팀은 학생들이 대학에서 직업 세계로 진입하는 과정을 준비하고 지원하는 대학 내 중앙지원기관"이라며 "일자리를 직접 알선하기보다는 학생들이 잠재적 고용주와 교류할 수 있는 행사를 마련하고, 채용 지원 과정에 대한 상담을 제공해 스스로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고 말했다.
TU 드레스덴 커리어서비스 부서의 브란트(맨 오른쪽)씨는 "드레스덴은 14개 기업을 방문하는 '견학 주간(Exkursionswoche)'을 통해 학생들이 자신의 조건에 맞는 기업과 직접 연결되고, 심지어 졸업논문 연계나 채용으로 곧바로 이어지기도 한다"며 산학 교류 촉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나영기자
◆"현장 연계와 전공 외 역량 키워야"
산업 구조 전환을 추진하는 대구 등 지역 도시와 대학에 주는 시사점도 명확하다. 이들은 대학이 학문적 지식을 넘어, 산업계와 긴밀히 교류하며 학생들이 실무 역량을 키울 수 있는 '네트워크 거점'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브란트씨는 "기업들은 전공 지식은 대학에서 기본적으로 갖추고 온다고 전제하며, 융합적 사고, 커뮤니케이션, 비판적 사고 등 팀 안에서 발휘되는 '전공 외 역량'도 똑같이 필요로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드레스덴의 경우 학생들이 견학주간(Exkursionswoche) 프로그램에서 방문할 기업을 약 14곳 가운데 선택한다. 이를 통해 자신의 조건에 맞는 기업과 직접 교류할 수 있고, 때로는 이러한 만남이 졸업논문 작성이나 채용으로 곧바로 이어지기도 한다"며 산학 교류 촉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라이셔트씨 역시 글로벌 인재 유치와 관련해 "국제 학생들을 훗날 숙련 인력으로 지역에 남게 하려면, 현지에 잘 '통합(Integration)'시키는 것이 결정적인 잔류 요인"이라며 "한국의 대학들도 전 세계 대학들이 산업과 어떻게 교류하는지 벤치마킹하며 지속적으로 네트워킹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드레스덴 공과대학교는 외국인 인재 양성을 위해 외국인 유학생 유치에도 힘쓰고 있다. 김지혜기자
◆엄청난 스펙이 되는 현장 경험
STIPT 프로그램에 참여한 뒤 작센주의 반도체 기업 ESMC에 취업한 박지수씨. 이나영기자
산학일체형 시스템은 청년들의 지역 정착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STIPT 프로그램에 참여한 뒤 작센주의 반도체 기업 ESMC에 취업한 TU 드레스덴 마지막 학기 재학생 박지수씨도 독일 드레스덴 정착을 결심했다.
박씨는 "2024년 여름학기 동안 대만에서 지내며 세계적인 반도체 회사인 TSMC에 들어가 일을 해볼 수 있었던 경험이 직업 선택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며 "보안이 철저해 잘 오픈되지 않는 공간에서 엔지니어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대기업이 사람들을 어떻게 다루는지, 이론이 실제 장비와 현장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 경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학교 밖 진짜 산업 현장의 경험이 커리어를 뚫는 스펙이 된 셈이다.
그가 드레스덴을 장기 정착지로 선택한 이유 역시 탄탄한 산업 생태계와 포용해주는 환경 때문이다.
박씨는 "드레스덴의 가장 큰 강점은 크고 작은 반도체 기업들이 많고 서로 연결이 잘 돼 있다는 점"이라며 "대기업이든 소기업이든 상관없이 워라밸과 복지가 좋다"고 말했다. 이어 "국제 학생들을 도와주는 서비스 센터와 독일 학생들과 어울릴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잘 돼 있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독일 드레스덴에서 김지혜기자 hellowis@yeongnam.com
이나영기자 @yeongnam.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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