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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향인사를 찾아서] 아나운서 왕종근

2004-09-11

방송경력 27년의 '프리'…'말이 더욱 자유롭다'
'특유의 촌놈 정서' 그만의 캐릭터
아나운서실서도 스스럼없이 사투리
대구 위해 할일 있다면 기꺼이 참여

[출향인사를 찾아서] 아나운서 왕종근
가족들과 함께 휴양지에서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왕종근씨.

대구에서 태어나 대학까지 마친 50대 초입의 왕종근 아나운서.

그는 현재, 잘나가는 아침 프로그램 '생방송 세상의 아침'을 7년째 진행하고 있고, 그 이전에는 'TV쇼 진품 명품'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사랑의 리퀘스트' 등을 진행하면서 인기를 얻어 1998년엔 한국방송대상 아나운서상을 수상한 그야말로 베테랑이다.

그런 그가 KBS를 떠나 '프리'를 선언하면서 "말로부터 해방되어 너무 기쁘다"고 했다. '말로 먹고 사는 사람'이 말로부터 자유롭고 싶었고, '말'을 떠나면서 자유인이 되었다니 얼마나 역설적인가.

그러나 그가 "나는 대구 사투리가 너무 좋다" "대구 사투리가 얼마나 따뜻하냐" 라든가 "표준어로부터 자유롭고 싶었다"고 보충설명을 하는 것을 듣게 되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KBS에 있을 때입니다. 가끔씩 친구들이 전화를 걸어옵니다. 그러면 저는 주변 돌아보지 않고 '요즘 뭐 하노' '와이카~노' 하며 사투리로 정신없이 잡담을 늘어놓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주변이 조용해 둘러보면 동료들이 저를 지켜 보다가 한마디씩 건넵니다. 어설프게 제 사투리를 흉내 내면서요. 동료들과 격의없이 친하게 지냈지만, 사투리를 버릴 수 없는 저는 가끔은 저 스스로 미운 오리 새끼라는 느낌을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회사를 떠나 프리랜스가 되고 나니 방송 중에 내 맘대로 사투리도 써먹을 수 있고…얼마나 행복한지요."

그야말로 표준어의 본산인 KBS 아나운서실에서조차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그는 '성골 경상도 맨'이다. 그의 사투리 사랑은 대구사랑으로 이어지고, 급기야 귀향에 대한 포부를 밝힐 때쯤이면 그가 대구사람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

"저는 대구가 너무 좋습니다. 보수적인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전통 있지요…. 저는 앞으로 5~10년 더 아나운서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만, 그 이후에는 지방으로 내려갈 것입니다. 친구들이 많은 '대구'로 되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는 "지금이라도 대구를 위해서 뭔가 해야 할 일이 주어진다면 기꺼이 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참고로 그는 2003년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 홍보대사를 역임했다.

그가 이렇게 소외받는 지방에 대해 예찬을 쏟아내자 갑자기 이 사람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아나운서라면 우리 시대의 가장 화려한 직업인이며, 가장 앞서가는, 또는 튀는 일터에서 일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저를 감싸고 있는 것은 '촌놈 정서'이고, 저는 그 정서가 너무 좋습니다. 달동네를 돌다가 낡은 형광등 불빛 밑에서 가족들이 옹기종기 밥을 먹는 모습을 보면 편안하고요, 강남에 가면 숨이 막힙니다. 우람한 빌딩에서는 유리벽에 수시로 부딪히지요."

그가 현재 살고 있는 서울 강서구 염창동은 서울에서도 변두리 동네다. 실제로 그가 염창동 근방의 어느 호텔 커피숍에서 만나자고 했을 때 기자도 좀 의아스러웠다. '돈 잘 벌 프리랜서 아나운서가 왜 염창동에 살지. 돈 좀 번다하면 다들 강남으로 가는 판국에'라고 의구심을 가졌는데 그의 설명을 듣고 보니 이해가 됐다.

도회의 직장인, 그것도 최첨단 직종의 방송인이라면 빨리 버리고 싶었을 '촌스러움'을 평생 간직하고 좋아했기에 그 '촌스러움' 내지 '편안함'은 그만의 캐릭터가 되었고, 그를 '잘 나가는 아나운서'로 이끌고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나운서가 되겠다고 맘을 먹었고, 계성고와 경북대를 다니면서 훈련을 쌓아 꿈에도 그리던 방송계에 발을 디딘 지 27년. 방송을 천직으로 살고 있는 그에게 그만이 갖는 캐릭터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자산인가.

그의 목소리가 공중파 전파를 처음 탄 것은 안동MBC. 1977년, 그는 대구MBC 시험을 봤다가 마지막 면접에서 대구 사투리가 튀어나와 떨어지고 안동MBC에 특채됐다. 이듬해 아버지의 권유로 동양방송(TBC)에 입사했고, 80년 언론 통폐합 때 부산 KBS로 옮겼다. 당시 아버지가 부산일보에 근무하고 있어 부산을 선택한 것이었는데, 같은 경상도 사투리권인 부산에서 그는 한마디로 떴다. 별명이 '부산의 주윤발'이었다고 한다. 그는 뛰어난 순발력으로 애드리브를 잘하기로 소문이 나면서 94년 그의 나이 마흔에 서울 본사로 스카우트됐다.

"지역 아나운서가 서울로 스카우트된 건 아마 제가 처음이었을 겁니다. 큰 물에서 한번 놀아보자는 생각으로 서울에 입성했지만 주눅이 들었고, 처음에 아무도 눈여겨 봐 주지 않는 것 같아서 긴장을 많이 했지요. 자칫하면 부산 KBS에서 쌓았던 제 모든 걸 잃어버릴 수도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6개월이 지나 'TV쇼 진품명품'을 진행하면서 그는 "알아주고 있다"는 감을 느끼게 되었다. 여러 프로그램에서 섭외가 줄을 이었던 것이다. MC가 진행하다가 아나운서로 바뀌니까 '진품' 프로그램에 대한 신뢰가 더 간다는 것이 시청자들의 평이었다. 당시 그의 진행을 지켜 보았던 기자는 '아나운서가 앵무새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는 고미술품, 한문학 등에 문외한이 많은 출연자들을 이끌며 한문을 해독해 주곤 했으니까.

'진품명품'에서 뜬 이후는 긴장했던 서울살이도 탄탄대로였다. '파워 100세' '생방송 좋은 아침입니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도전 내가 최고' 등을 진행하면서 KBS에서 베테랑 아나운서로 손꼽히면서 '늦깎이'로 프리랜서를 선언했다.

"19년간 근무해온 KBS를 떠나 제가 프리를 선언하자 동료들이 모두 놀랐습니다. 저는 현실 안주형이거든요. 하지만 스스로 자극을 주고 싶었습니다. 이제껏 제 기량으로 승부하기보다는 주어진 환경에 편승해 편안한 온실에서 방송해왔다는 반성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 능력을 테스트해보고 또 마음껏 기량을 발휘하고 싶어 용기를 냈어요. 그리고 표준말에 대한 강박감에서도 좀 벗어나고 싶었고요."

프리랜서를 선언하자 대구MBC에서 프로그램을 같이 하자고 제안을 받았다. 그는 조건도 따지지 않고 무조건 응낙했다.

"낙방했던 방송사 아닙니까?"

그 옛날 신입사원 채용 때 뽑지 않은 대구MBC에서 일을 하자고 제안하니 격세지감을 느끼며 프로그램을 맡았고, 방송하면서 "그때 뽑았으면 이렇게 비싸게 (출연료를) 주지 않아도 됐을 텐데"라고 격없는 농담도 주고 받았다고 한다.

그는 또 "프리 선언하면서 CF대박 내려고 생각했어요. 처음에 한 달에 100통 가까이 섭외가 들어오는 데 엄청 들떴죠. 그런데 잘 안되더라고요. 분위기 있는 커피광고 한번 해 보고 싶은데 말입니다. 아내, 아이와 함께 모 콘도미니엄의 CF에도 출연했는데 그것이 가장 큰 것이에요. 프리 선언하고 다 잘 되었는데, CF가 잘 안되더라고요."

이렇게 그는 솔직하고 밝고 낙천적이다. 또 젊고도 편안하다. 편안함에도 가식이 끼어있기 십상인 게 방송이지만, 그가 주는 편안함에 적어도 가식이 끼어들 틈은 없어 보인다.

"아침 방송 때문에 매일 오전 4시15분에 잠을 깨야 합니다. 아무리 춥고 비바람이 불어도 그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너무 즐겁습니다. 내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방송'을 하러 가니까요. 생방송은 나의 건강을 유지시켜주는 비결입니다. 늘 적당한 긴장과 스트레스를 느끼게 해줘 온몸과 신경세포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느낌입니다. 또 방송을 통해 만나는 좋은 사람들, 시청자들의 반응에서 느껴지는 희열과 보람이 내 얼굴에 항상 미소를 만듭니다. 아침마다 방긋 웃는 내 미소는 억지로 꾸민 것이 아니라 저절로 나오는 기쁨의 표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방송 사랑에다 띠동갑으로 12세 아래인 아내와 열 살배기 아들과 말썽꾸러기 두 마리 개와 살아가는 '일상'은 그에게 행복의 절정을 느끼게 해 주는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한편으로 그는 사실 '프리'에 대해 약간은 걱정스러움이 있는 것 같다.

"요즘 내가 약간 내리막인 것 같아요. 하지만 아직까지는 PD에게 굽신거리며 프로그램 받은 적 없고요, 앞으로도 어디엔가 내 자리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면서 "밝게 살려고 노력하다 보면 어느새 인생은 즐거움의 연속이 된다. 긍정적으로 살면 미래도 긍정적으로 풀린다"며 어려울 때라도 웃으면서 살자고 대구시민들을 향해 '파이팅'을 외친다.

[출향인사를 찾아서] 아나운서 왕종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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