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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흘리개 어린시절부터 장년이 된 지금까지 달성공원은 늘 내 곁에 있었다. 마음이 울적하거나 몸이 찌뿌드드한 날이면 새벽녘에 공원을 한바퀴 돌고 나면 머리가 맑아진다. 화창한 봄날이면 젖병을 문 갓난아기가 유모차를 타고 오고, 연로하신 노인들은 지팡이를 짚고도 달성공원을 찾는다.
달성(達城)은 금호강 평야에 둘러싸인 말굽모양의 낮은 구릉 위에 있는 토성으로, 언제 토성이 쌓였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출토된 유물로 보아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 같다. 문헌상으로는 '삼국사기'에 달벌성을 축조했다는 내용이 있고, 신라 말에서 고려 전기까지 관아지로 활용되다가, 고려 후기에 달성서씨 세거지가 됐으며, 조선 세종때는 군대창고로 사용됐다. 선조 29년(1596)에 경상감영이 이곳에 설치되었다가 정유재란(1597)으로 불타 없어졌으나, 선조 34년(1601)에 경상감영이 지금의 경상감영공원에 설치되면서 달성은 무예를 연습하는 훈련장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때(1906)는 일제가 일본 신사(神社)를 건립했으나, 광복 이후 사적으로 지정받으면서 신사를 철거하고, 69년 정문과 향토역사관을 신축하고, 70년 동물원을 준공하면서 지금의 달성공원이 되었다.
공원 북쪽에는 '관풍루'가 있는데, 이것은 조선 선조때 경상감영 정문으로 세워졌던 것을 1906년 대구읍성이 철거되면서 옮겨온 것이고, 공원 입구에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신사가 들어서면서 대구시민에게는 치욕적인 장소이기도 했다. 하지만 민족저항시인 이상화 선생의 뜻을 기리는 전국 최초의 시비와 독립운동가 이상룡 선생의 구국기념비, 동학 최제우 선생의 동상, 대한민국 최초의 어린이헌장비가 세워져 있어 대구시민에게는 휴식공간 이상의 의미 있는 특별한 공원이다.
대구시는 2013년까지 330억원을 투자해 달성토성을 복원하고 영남문화박물관, 달성놀이터, 달성 쉼터, 생태 체험장을 조성하는 '달성역사공원 조성사업'을 추진한다. 물론 50년이나 된 동물원도 마땅히 이전되어야 할 것이다.
달성은 대구시민들의 마음의 고향인 만큼 철저한 고증과 조사로 완벽한 복원이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대구의 역사와 정체성이 깃든 달성역사공원이 대구경북은 물론 전국의 관광객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명품 공원으로 개발되어 대대손손 후손에 물려줄 수 있도록 조성되길 바란다.
김의식(대구시의회 문화복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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