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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없이, 흔적조차 의심스러이 겨울비가 오시니 저 먼데서 이미 봄이 시작되었음인가? 겉으로 드러나는 만상의 모습 속엔 오래고 오랜 자연의 조화가 있었음을 생각해본다. 조상님들의 자취를 살펴 오늘을 돌아볼 때마다 언제 적 할머니의 뜻이 내 가슴으로 전해졌을까 궁금해진다. 두렵고 조심스러운 마음에 책갈피를 들추듯 옛집 구석구석을 살핀다. 집안 깊숙이 숨겨진 내당(內堂), 거기 수없이 스쳐 닳아진 모퉁이에서 문득 어머니의 손길과 발자국을 느낄 때 해원인 양 눈물이 나기도 한다.
시대적으로 가장 익숙한 조선은 사대부 중심의 유교 문화라서 두드러진 여인네의 자취를 찾기 어렵다. 신사임당이나 허난설헌 같은 재주 있는 여인, 혹간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임금의 여인, 도학자님들과 당당히 정신적 교분을 나눈 가인들이 더러는 있었다. 그러나 그 많은 명문가와 선비들의 곁을 지킨 여인네는 다만 모씨(某氏) 부인으로 남아 존재의 의미마저 반쪽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안동 서후 검재마을의 경당(敬堂)종택에 정부인 장계향(1598~1680)으로 이름 석 자 분명히 전해 오는 분이 계신다. 부인은 퇴계에서 학봉으로 이어지는 영남학파의 맥을 이은 경당 장흥효 선생의 따님으로 영양 재령이문의 이시명(李時明)과 혼인하여 여러 자녀를 훌륭히 키워 정부인에 추증되었다. 여러 행적 중 '음식디미방'이란 조리서가 전하는데, 동아시아 최초의 여성이 쓴 조리서·한글로 쓰임·독자적인 조리법 등의 모든 평가를 떠나 그분의 삶 전체를 보여 이름 없는 어머니들을 대신한다. 이는 이문열의 소설 '선택'과 김서령의 '안동장씨 400년 명가를 만들다'에서 생생히 재구성되어있다. 학문적 성취와 뛰어난 기예를 일상의 삶에 녹여 지극한 정성으로 음식을 만들고 자식을 가르치고 집안을 다독인 부인은 살아낸 환경이 다를 뿐, 바로 내 어머니의 모습이기도 하다.
오래전, 집안 고모께서 며느리의 부주의로 가마솥 뚜껑이 발등에 떨어지니 버선등에 핏물이 보이고도 한참 뒤에야 "아야"하고 한마디 했을 뿐이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분이 참고 견딘 것은 발등이 찍히는 아픔만이었을까? 어찌 보냈든 삶 자체는 공경히 받아들여 견디는 가운데 완성되리라. 이제 옛 동무의 모습에서 그 어머니를 보니 우리 얘기를 들을 때인가?
김필숙(안동문화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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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이름 없는 여인, 어머니](https://www.yeongnam.com/mnt/file/201102/20110214.010230750010001i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