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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공식적인 애첩이 하나 있다. 난실이다. 선배 시인이 붙여준 애칭인데 작명료는커녕 고맙다는 인삿말도 제대로 건네지 못했나보다. 나는 짬이 날 때마다 시도때도 없이 난실이에게 달려간다. 백제 의자왕의 삼천 궁녀는 아닐지라도 300여 애물단지들이 목을 길게 빼고 나를 기다린다. 어쩌다 며칠 못 가면 목이 마르다는 둥, 아프다는 둥 달달 볶으며 투정이 심하다. 그러면 보약과 영양제, 살균제를 철철이 안긴다.
우리 옛선비들은 난을 좋아하였다. 사군자 중 매화 다음으로 난을 쳤다. 가람 이병기와 신석정 시인은 빼어난 문학가 못지 않은 훌륭한 난인이었다. 70년대 중반에 나온 신석정의 산문집 '난초잎에 어둠이 내릴 때'에 사진이 한 장 실려 있다. 큼지막한 난분 앞에서 한복 차림으로 원고를 쓰고 있는 노시인의 모습은 흠모의 대상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내가 난에 빠져 산 세월이 30년 가까이 되었다. 처음 난에 눈 뜬 것은 소엽풍란 때문이었다. 짧고 도톰한 잎의 자태에 한눈에 콩깍지가 씌었다. 그 때부터 난 마니아가 되었다. 결혼 초기부터 식솔들은 팽개쳐두고 동호인들과 이 땅 산하를 줄기차게 헤매고 다녔다.
3월이면 전국 각지에서 난 전시회가 열린다. 이 땅의 소중한 보배인 난을 감상하러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어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난은 녹색의 보물이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 산에 자생하는 춘란은 원예화 가치가 높은데, 한국란 명품은 이제 세계 어디에 내어놓아도 손색이 없다. 30년 남짓 짧은 한국란 역사 속에서 100년이 넘은 일본의 명품란을 능가하는 희귀 자생란(自生蘭)이 대거 등장하였다. 이것은 난인들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노력 덕분이다.
오늘도 난을 들여다 보면서 삭막한 현실을 건넌다. 서두에서 난실이가 투정을 부린다고 한 말은 정확하지 않다. 실은 내가 이 애물단지에 목 매달고 있기 때문이다. 그간 잘 있었느냐고, 보고싶었다고, 사랑한다고 연속으로 고백한다. 그러면 샐쭉하니 토라졌던 애첩도 언제 그랬냐는 듯 방긋거리며 돌아앉는다. 이런 나를 보고 누군가는 그만 애물단지를 버리라고 한다. 그러나 버린다고 버려질 성질의 것도 아니지 않는가. 오늘도 난실이에게 경보선수처럼 쪼르르 내달려간다. 어이쿠, 내 팔자야.
박진형(시인·만인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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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나의 애첩기](https://www.yeongnam.com/mnt/file/201103/20110314.010220812000001i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