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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스토리텔링 대가야의 魂 가얏고 .3] 典雅하면서도 웅숭깊은 가야의 소리

2011-10-27

왕이 말했다 우리의 소리에 맞는 우리가 만들어낸 악기네… 가얏고라 불러도 되겠네

가야연맹 곳곳에 흩어진 소리를 모아 하나의 음률로 통일하다

20111027
우륵박물관(고령군 고령읍 쾌빈리) 입구에 있는 ‘악성 우륵상’ 가야금을 타는 우륵의 모습을 표현했다. 오른쪽에 우륵박물관이 보인다. <영남일보DB>

#1

각 지역을 돌며 음악을 채집한다. 생각보다 쉽지 않다. 무엇보다 각 지역 장들의 협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듯해 안타깝다. 출발하기 전 연통을 넣어 지역의 소리꾼과 연주자들을 챙겨줄 것을 부탁하지만, 매번 실망스럽다. 왕명임을 넌지시 일깨워줘도 어깃장을 부리는 수가 많아 속이 상하기도 한다.

예상은 했지만, 현지의 사정이 이렇게 각박해질 줄을 미처 몰랐다고 이문은 투덜댄다.

이런 점은 가야국들의 분열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과거처럼 일률적인 전달과 수합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건 대가야국의 정체성이 그만큼 흔들리고 있다는 조짐으로 봐야 한다.

왕은 그런 사정을 꿰뚫고 있다. 어전의 연주를 마치고 간단한 술자리가 만들어졌을 때 왕은 각 지역의 소리를 통일하는 일을 두고 “쉽지는 않을 게야”라며 걱정을 해주었다.

기실 이 일은 그러한 가야제국 간의 불화와 분열의 조짐을 융합하고 봉합하려는 의도에서 추진되고 있기도 하다. 왕은 그 점을 누누이 강조했다.

“결속하여야 한다. 그러려면 마음을 모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음악이 일조를 할 것이야.”

왕은 ‘음률을 고르는 일’이야말로 나라의 예악을 부흥시키는 기반이 되며, 그렇게 될 때 모든 게 가지런해진다고 말해왔다.

어전의 연주는 퍽 진지했다.

우륵과 이문, 그리고 보희의 합주에 왕과 신하들은 숨을 죽였다. 마음속으로 휘몰아드는 소리의 여운에 숨이 멎었다가 곡이 끝날 때마다 내쉬곤 했다.

우륵의 독주는 유장하게 휘몰아드는 큰 강처럼 아득한 소리가 한 순간 여울을 이루기도 하고, 홍수를 이루기도 했다. 이문은 숲의 바람소리와 온갖 새들의 소리, 그리고 짐승의 소리와 움직임까지도 드러내는 듯 여실하게 소리를 짓찧고, 밀고 당기며, 높낮이를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왕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다르구먼.” 쟁과 뚜렷이 구별이 된다는 의미였다.

“좋아, 좋아, 그걸로 우리 산천의 소리들을 담아낼 수 있을 것 같군.”

왕과 신하들은 고를 찬찬히 살피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만들기 시작할 때부터 계속해서 봐온 것이지만 완성품에 옻칠을 하고, 금박을 입힌 고의 자태는 아주 아름다울 뿐더러 신비감을 자아냈다.

“가얏고라 불러도 되겠네. 참으로 독특한 악기야!” 왕이 찬탄했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의 소리에 맞는, 우리가 만들어낸 악기네. 우리도 자랑할 만한 악기를 갖게 되었어, 어떤 곡도 실어낼 수 있을 만큼 성량도 풍부한.”

가얏고라는 이름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그래, 왕은 가얏고를 통해 우리 음률의 우수성을 과시하면서 한 편으로는 분열되어가는 가야국의 민심을 추스르길 바라고 있는 것이다.

우륵은 자신이 만들어낼 곡은 그런 의지를 품은 것이 되어야 함을 다짐하고 다짐한다. 즉 대가야연맹 제국이 음악을 하나의 고리로 삼아 일체감을 높여야 한다는 왕의 의지를 드러내야 한다는 게다.

그러니 어려워도 해내야 한다. 그것은 그가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왕의 명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악기에 대한 자부심과 그 악기를 영원토록 전해지게 하는 초석을 까는 일이라 믿기 때문이다.

우륵은 소리를 찾아 나라의 방방곡곡을 헤집고 다닌다. 가야의 여러 소국들도 나름의 음률을 갖고 있지만, 정비가 안 된 상태라 특별히 봐줄 것은 없다. 그걸 가지고 물건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 의욕이 지나쳐, 때로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우륵이 왕의 개혁을 거드는 이로 지목되는 만큼, 각 지역의 부족을 탐문하는 첩자로 오해하기도 해 이를 해명하느라 진땀을 빼기도 한다. 그런 고생을 거쳐 드디어 어느 정도 채집이 이루어진다.

우륵이 거처하는 공방의 마루에서는 종일 가얏고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각 고을의 노래를 검토하고 새롭게 가다듬는 일 때문이다.

얼마나 소리가 끊이지 않고 계속됐으면 주위 고을 사람들로부터 그곳이 정정골로 불릴 정도일까? 그렇게 하여 열 두 곡을 완성한다.



제1곡 하가라도(下加羅都)

제2곡 상가라도(上加羅都)

제3곡 보기(寶伎)

제4곡 달이(達巳)

제5곡 사물(思勿)

제6곡 물혜(勿慧)

제7곡 하기물(下奇物)

제8곡 사자기(師子伎)

제9곡 거열(居烈)

제10곡 사팔혜(沙八兮)

제11곡 이사(爾赦)

제12곡 상기물(上奇物) 이 그것이다.



가야 각 지역의 곡으로 엮여 지역의 특성을 드러내면서 하나의 음률로 통일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그 가운데 ‘보기’와 ‘사자기’를 넣은 것이 이색적이다.

이들 곡이 하나로 엮여 공연되는 데 따른 단조로움을 극복하고 변화를 도모하기 위해서다. 중간 중간에 연희요소를 가미한 것이다. ‘보기’는 금색의 공을 가지고 노는 놀이이며, ‘사자기’는 사자춤이 주가 되는데, 모두 서역에서 유래된 놀이다. 그 놀이의 음악을 우리 것으로 각색, 음악에 맞춰 기예가 이루어져 흥겨움을 더하는 제의 마당을 만들려는 것이다.


#2

제의는 성대하게 치러진다.

이날 모처럼만에 궁성의 문이 대폭 개방된다. 각 가야국의 귀족들이 참여하고, 대신과 관리들은 물론 각 지방의 호족이 아침부터 들어와 궁성에서 제일 높은 언덕 위에 자리한 제단 앞에 도열한다. 가을걷이가 끝났는데, 올해는 모처럼 풍년을 이루어 그 기쁨과 기꺼움을 신에게 감사하는 제의다.

제사장에 의한 의례적인 행사가 끝나자 바로 연희에 들어간다. 자리가 정비되자 왕이 나타난다. 모두 일어서서 예를 표하고 앉는다. 연주와 춤 등의 공연이 치러질 공간이 정리되고, 악사들이 자리를 잡는다. 사람들은 악사들의 악기 가운데 새로운 악기가 있음을 알아차리고 호기심 어린 눈길을 보낸다.

“저게 가얏고로군.”

“몇 년을 매달려 만든 거라네. 아주 날렵하게 빠졌어. 오늘 우리에게 특별하게 저 악기로 곡을 연주한다는데 기대가 되네.”

“글쎄, 왕께서는 오늘 연주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아서 부담이 되기도 하네.”

“저 음악이 우리에게 어떤 부담이 될지는 두고 봐야 할 걸.”

기대 반 부담 반으로 사람들은 곡이 연주되기를 기다린다. 이미 새 악기에 대한 소식은 들어서 거의 알고 있다. 오늘 연주되는 곡에 대해서도 설명이 된지 여러 번이다. 왕은 가을 제의를 앞두고 특히 연주될 음악을 수시로 주지시키면서 그 의미를 강조하곤 했던 탓이다. 특히 각 지역의 수장과 귀족들은 자기네 지역의 노래에 큰 관심을 가진다.

우륵이 가운데 자리 잡고 가얏고를 무릎에 얹고 앉는다. 그의 양 옆에는 이문과 보희가 앉는다. 그리고 그들을 둘러싸고 각종 젓대와 공후 등의 현악기들, 장구, 징 등의 악사가 도열해 있다. 앞 공연으로 이들 악기로 의례적인 곡들이 먼저 연주된다. 그런 다음 특별한 순서로 가얏고 연주가 이루어진다. ‘상가라도’가 연주되자, 그 웅장하면서도 청아한 맑은 소리가 대궐에 울려 퍼진다. 흡사 가야산의 기운을 뿜어내는 듯 웅숭깊은 농현이 시나브로 일어 파문지자, 사람들은 절로 탄성을 지른다. 가얏고의 소리가 뜻밖에도 아주 전아하면서도 깊은 맛을 자아냄을 놀라워한다. ‘상가라도’는 바로 대가야 터의 기운을 떠들어 올리는 소리라, 가야연맹주다운 기상을 유감없이 펼치면서도 모든 것을 포용하는 너그러움의 정서를 내포하고 있는 듯하다.

이어서 각 지역의 소리가 저마다의 특색을 잘 드러내면서도 고른 음조를 절조있게 펼쳐낸다. 중간 중간에는 연희도 곁들여지는데, 춤과 놀이의 웅장함이 볼 ㄴ만하다. 소리들은 적절하게 균형을 취하면서 과하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는 가락의 유장함과 흥겨움을 유감없이 쏟아낸다. 가얏고 연주의 자세는 신명으로 넘치는 역동적인 모습을 하고 있어서 악기와 악공이 혼연일체가 되어 수시로 절정으로 치닫곤 한다.

공연이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나온다. 처음 보는 악기의 연주가 뜻밖에도 아주 사람의 마음을 휘젓는데 탁월함을 놀라워하면서 감동을 받은 걸 그렇게 표현한 게다. 특히 각 지역의 노래는 각 지역 귀족의 귀를 크게 틔운 듯하다. 각 지역마다 제의 때 불리던 곡이라 낯익은 것이긴 하지만, 고도의 절제로 세련된 소리가 되어 다시 새롭게 나타남에 새삼 놀라워한다. 그 감동으로 몇 번인가 더 연주해달라는 주문이 들어온다. 그 청은 이문이 받는다. 가얏고를 연습하면서 암암리에 만들어온 곡을 선보인다. 새와 짐승들의 몸짓과 소리가 가얏고를 통해 실감나게 드러난다. 글=이하석

<시인· 영남일보 스토리텔링연구원 고문>

2011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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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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