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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최은지기자 jji1224@yeongnam.com |
2005년 국내의 한 와인업체가 서울에서 국내 소믈리에를 대상으로 와인시음회를 열었다. 주최측은 고의로 국산 와인병에 프랑스 와인을 담고, 프랑스 와인병에 국산와인을 담아 내놓았다. 소믈리에들은 모두 프랑스 와인병에 담긴 국산와인을 최상품으로 꼽았다. 나중에 이를 안 소믈리에들은 부끄러워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고 한다.
이는 와인을 입으로 마신 게 아니라 머리로 마셨기 때문이다. 품질보다 명성만을 좇아 수입포도주를 선호하는 와인 사대주의.
일부 수입와인은 가격이 수백만∼수천만원을 호가하기도 한다. 기실 우리는 ‘포도주’를 ‘와인’으로 바꿔 부를 때부터 신토불이 포도주를 팽개친 거나 다름없다. 반론은 있다. 토종와인에는 설탕 등 인공첨가물이 들어가 포도자체에서 우러나는 숙성된 향과 맛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3~4년 전부터 국산 와인의 품질이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다. 국산와인의 강점은 수개월간 배로 수송되는 수입와인에 비해 신선하다는 점이다. 또 우리가 즐겨 먹는 포도를 사용해 입맛에 맞다.
이 땅에 포도주가 처음 들어온 건 몽골이 지배하던 고려 충렬왕 때다. 조선시대 하멜이 포도주를 들여왔다는 기록도 있다. 그러나 구한말 개항과 함께 천주교 선교사들이 종교의식용으로 포도주를 사용하면서 본격적으로 포도나무를 재배했다는 게 정설이다.
국내에서 와인산업이 시작된 것은 1968년 농어촌개발공사(현 농수산물유통공사)가 일본 회사와 합작해‘선 리프트와인’이라는 시판용 와인을 출시하면서부터다.
실질적으로 와인생산을 본격화한 것은 74년 박정희 정부의 국민주개발정책의 일환이다. 이때부터 동양맥주·백화양조·해태주조 3사가 포도원을 조성하고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정책은 매년 겪는 식량난에도 불구하고 양조용 곡식의 양이 줄지 않자 이를 해결하자는 취지에서 시행된 것이다.
74년 해태주조에서‘노블 와인’을, 77년 동양맥주에서 ‘마주앙’을 내놓았다. 마주앙은 당시 국산와인 판매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국내 화이트와인의 대명사로 군림했다.
하지만 87년 와인수입이 자유화되면서 국산와인과 유럽와인 간 품질 차이로 국산와인이 설 자리를 잃었고, 결국 프랑스·이탈리아·칠레 등 외국산에 와인시장을 내주고 말았다. 와인생산업체는 생산을 중단했고, 양조용 포도농가들은 큰 피해를 입었다. 정부는 양조용 포도나무 제거를 조건으로 포도농가에 보조금을 지급했고, 이는 국산와인이 몰락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2000년대 웰빙붐을 타고 와인 소비가 급증하면서 국산와인도 부활하기 시작했다. 와인문화의 확산 및 재배기술의 발전, 주류규제완화 등의 환경변화는 국산와인 산업의 성장으로 이어졌다.
최근 영농조합 등 생산자단체와 지자체를 중심으로 한 국내와인산업은 농가소득 증대 뿐만 아니라 관광·홍보자원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국내최대의 포도산지인 영천과 충북 영동, 경기도 안성 등지에서는 포도 농가를 중심으로 국산와인을 세계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의 포도 주산지인 영천은 와이너리(포도주를 만드는 양조장) 조성을 통해 한국의‘와인 메카’로 발돋움하고 있다. 마을형·농가형·공장형·교육형 등 다양한 와이너리를 육성하고 있다.
이번호 커버스토리는 96년부터 영농조합을 조직해 와인사업을 하고 있는 영천의 마을형 와이너리인 ‘까브스토리’와 공장형 와이너리인 ‘한국와인’을 취재했다. 또 농가형 와이너리 중 하나인 ‘대향’과 영천시농업기술센터에서 운영하는 와인학교 등 영천의 와인산업에 대해 두루 살펴보았다.
또 국내 기업형 와인의 대명사인 마주앙 경산공장을 탐방해 미사주에 대해 취재하는 한편, 한국소믈리에협회 대구·대전 지회장인 정우용씨로부터 국산와인의 문제점과 발전가능성에 대해서도 알아봤다.
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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