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붐 시작된 1990년대 이후 본격 등장
섬세한 관찰력·심리묘사 대중과 소통 일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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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아 감독·김태희 감독·정하린 감독·노덕 감독.(사진 왼쪽부터) |
이들을 주목하라. 섬세한 관찰력과 심리 묘사로 대중과의 소통을 성공적으로 일궈 낸 신인 여성 감독들 말이다. 지난해 개봉된 ‘화차’의 변영주 감독과 ‘용의자X’의 방은진 감독이 여성만이 지닌 그 어떤 영화적 여성스러움으로 존재감을 알렸듯, 올해 역시 재능 있는 여성 감독들의 활약이 기대된다. 이미 노덕 감독은 ‘연애의 온도’로 흥행과 비평에서 합격점을 받았다. 강진아 감독의 ‘환상 속의 그대’는 전주국제영화제 최고의 화제작으로 떠오르며 관심을 받았다. 또 ‘앵두야, 연애하자’의 정하린 감독, 모바일 영화 ‘미생’의 김태희 감독 역시 주목해야 할 여성 감독의 탄생을 알린 주인공들이다. 한국의 ‘소피아 코폴라’를 꿈꾸며 당당히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그녀들과 작품세계를 만나본다.
◆사랑과 아픔을 그린 초현실적 멜로 드라마…‘환상 속의 그대’의 강진아
강진아 감독은 단편 ‘네 쌍둥이 자살’(2008), ‘백년해로외전’(2009), ‘사십구일째날’(2010), ‘구천리 마을잔치’(2011)를 통해 영화계에 입문했다. 환상적인 영상 감각과 탄탄하고 기발한 내러티브를 가진 무서운 이야기꾼으로 통하며 영화계에선 일찌감치 예사롭지 않은 신인 감독으로 눈길을 끌었다. 그녀는 삶과 죽음이라는 주제를 관계의 확장이자 상황의 반전으로 표현하며 이를 하나의 흐름으로 완성해 왔다. 장편 데뷔작 ‘환상 속의 그대’는 그런 그녀가 단편작업을 통해 탄탄히 쌓아 온 연출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작품이다. 역시나 사랑하는 이를 잃고 남겨진 사람들과 사랑하는 이들을 두고 떠나야만 하는 사람의 양면적인 내면을 섬세하게 담아냈다. “사랑하는 이와의 준비되지 않은 이별을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희망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 건, 이 모든 이야기의 끝이 사람에 대한 애정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라는 그녀. 아픔을 털고 일어난 이들의 곁엔 언제나 위로가 되는 타인과의 관계가 있어 왔고, 이는 자신의 작품세계를 늘 관통해 왔다고 말했다.
◆희망적 미래를 꿈꾸는 젊은 세대들의 이야기…‘미생’의 김태희
김태희 감독은 조회수 4억을 기록한 윤태호 작가의 인기 웹툰 ‘미생’을 모바일 영화로 재탄생시켰다.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된 총 여섯 편 중 세 편의 연출을 맡은 그녀는 “원작 ‘미생’의 엄청난 댓글을 보면서 작품에 누가 되지 않게 어떻게 잘 만들 수 있을까를 항상 고민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스물다섯의 나이로 영화계에 데뷔했다. 하지만 2001년 단편영화 ‘삼’을 촬영했을 당시 그녀는 고등학생 신분이었다. 이 영화로 서울 국제청소년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입학해 몇 편의 단편을 더 찍었다. 영상원 졸업작품인 ‘붉은 나비’는 2006년 부산 아시아 단편영화제, 팜스프링스 국제 단편영화제에 초청돼 실력을 인정받았고, 제7회 대한민국영상대전 아마추어 부문 대상까지 수상했다. 2008년 장편영화 ‘동거, 동락’으로 정식 장편영화에 데뷔한 그녀는 “시나리오 쓰는 걸 아주 좋아한다”며 “기회가 주어진다면 블록버스터나 액션 영화도 찍어 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철없는 여자들의 때늦은 성장통…‘앵두야, 연애하자’의 정하린
단편 ‘모기’ ‘I still believe’ ‘삐에로’ ‘가가별이야기’ ‘곰 두 마리’를 통해 무서운 신인 감독의 탄생을 알린 정하린 감독. ‘앵두야, 연애하자’는 그런 그녀의 장편 데뷔작으로 더도 덜도 아닌 평균을 살아 가고 있는 2030세대의 이야기를 진중하지만 유쾌하게 담아 낸 작품이다. 그간의 성장 영화들이 섹스와 사랑이라는 자극적인 소재를 들이밀기에 급급했다면, ‘앵두야, 연애하자’는 서른을 코앞에 두고도 뭐 하나 이뤄 놓은 것 없는, 섹스는커녕 연애조차 멀기만 한 빈틈 많은 여자들의 ‘성장 드라마’로 주목받았다. 그녀는 생활 속 사소함마저 그냥 지나치지 않는 진중함과 솔직함, 그리고 젊은 감독다운 재기발랄함을 영화 속에 녹여 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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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배우 김민희와 대본을 논의중인 노덕 감독(오른쪽). |
◆발칙한 상상력과 섬세한 시선의 리얼 로맨스…‘연애의 온도’의 노덕
서울예술대학에서 영화 연출을 전공한 노덕 감독은 2005년 발표한 단편 ‘마스크 속, 은밀한 자부심’이 제10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부문에 초청되면서 주목을 받았다. 이후 6년 넘게 품고 있던 ‘연애의 온도’를 첫 장편으로 내놓았다. ‘연애의 온도’는 발칙한 발상과 여성 감독다운 섬세한 시선으로, 시도 때도 없이 변하는 연애의 실체를 솔직담백하게 보여주었다. 노덕 감독은 “우리가 현실에서 겪는 연애에도 충분히 드라마틱한 요소가 많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연애를 끊임없이 하는 것 같다”며 “현실에서의 연애를 영화적으로 재미있게 풀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덕분에 ‘연애의 온도’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달콤쌉싸름한 사랑 이야기로 완성될 수 있었다. ‘연애의 온도’에서 장영 역을 맡은 김민희 또한 “누구나 연애와 이별을 해 봤기에 내 이야기 같고, 또 어제 들었던 내 친구 이야기 같은 영화였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여성 감독의 태동
여성 감독들의 충무로 진출이 본격적으로 이뤄진 건 한국영화계의 르네상스가 시작된 1990년대부터다. 이 시기 가장 주목받던 여성 감독은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1994)를 만들었던 변영주다. 이후 임순례 감독이 ‘세 친구’(1996)를, 이정향 감독이 ‘미술관 옆 동물원’(1998)을 내놓으면서 여성 감독들의 충무로 입성이 활기를 띠게 된다. 이런 흐름은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져 정재은 감독이 ‘고양이를 부탁해’(2001)로, 박찬옥 감독이 ‘질투는 나의 힘’(2002)으로 데뷔하고, 이정향 감독의 ‘집으로’(2002)와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가 평단과 대중의 호평을 받으며 주류 감독으로 자리 잡는다. 이후 ‘궁녀’(2007)의 김미정과 ‘미쓰 홍당무’(2008)의 이경미 감독 등이 이 대열에 새롭게 합류한다. 이들은 모두 여성 캐릭터의 내면을 보다 입체적이고 세밀하게 그려 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는 남자 감독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여성 감독들만의 본능적이고도 고유한 장점이다. 현재 방은진 감독은 전도연, 고수 주연의 ‘집으로 가는 길’의 촬영을 마쳤고, 하정우 주연의 ‘두 번째 사랑’(2007)을 연출했던 김진아 감독의 한·중 합작 ‘파이널 레시피’도 개봉을 앞두고 있다.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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