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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뉘우침의 지혜 ‘제마수’

2014-07-08
[문화산책] 뉘우침의 지혜 ‘제마수’

388년 전인 1626년 음력 윤 6월12일, 예천에 살았던 권별 선생은 신백순이라는 분이 연 ‘제마수(齊馬首)’ 행사에 참여했다. 원래 제마수는 ‘말 머리를 가지런히 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말은 생원과 진사를 뽑는 사마시(司馬試) 결과 발표 날, 합격자들이 말을 타고 한양 시내를 행진했던 행사에서 유래했다. 합격자 가운데 넉넉한 형편의 사람이 합격자 전원에게 점심을 한 턱 내면, 그 사람은 그날 장원한 사람과 말 머리를 함께한 채 유가 행사를 할 수 있는 특권을 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이 지역 자치 규약인 향약에 오면 ‘한 턱 내는 벌칙’을 의미하게 된다. 제마수는 비교적 가벼운 잘못에 대한 벌칙이다. 잘못한 사람이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임원이나 지역민에게 한 턱 냄으로써 잘못을 용서받는 것이다. 제마수가 열리기 위해서는 잘못한 사람이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먼저 향약의 유사에게 제마수의 예를 청한다. 그리고 명망 있는 인물과 나이가 일흔이 넘은 어른을 일일이 찾아가 자기 잘못을 고하고 제마수 행사에 참석을 청한다. 물론 모든 회원에게 참석을 부탁하는 글을 돌리는 것은 당연하다. 1626년 음력 윤 6월12일 예천에서 열린 제마수의 예는 이렇게 진행됐다.

제마수의 예는 형벌의 수위가 낮은 가벼운 죄에 대한 지혜로운 처리의 과정이다. 잘못을 범한 사람에게는 잘못을 뉘우치고 책임질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같은 잘못을 다시 범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책임지는 구체적 방법은 바로 공동체가 결속할 수 있는 장을 열게 하는 것이다. 잘못한 사람이나 피해를 당한 사람 모두가 마음의 상처 없이 한 턱 내고 대접받으면서 공동체의 결속을 강화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저지르는 잘못의 대부분은 큰 처벌이 필요치 않은 가벼운 것들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공동체 해체는 이 같은 가벼운 잘못을 지혜롭게 처리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잘못한 사람은 잘못에 대한 뉘우침이나 책임질 기회를 갖지 못해서 잘못을 지속하고,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그 사람과 관계를 깨는 방식을 선택한다. 마음의 상처는 깊어질 수밖에 없고, 이것은 공동체를 내부에서부터 철저하게 해체시킨다. 어떤 공동체도 가벼운 문제가 없을 수는 없다. 사소한 잘못이 공동체의 해체로 이어지지 않도록 했던 제마수의 예를 다시 한 번 더 곱씹어야 하는 이유이다.

이상호<한국국학진흥원 디지털국학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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