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째 매달 쌀포대 둘러메고 80가구에 안부 물으러 갑니다”
지난 3일 대구 달서구 두류동 아트빌리지에서 만난 대구의 5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 신홍식 <사>아트빌리지 대표. 신 대표는 “기부는 단발성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황인무기자 him7942@yeongnam.com |
“아직도 어려운 사람이 있는데 나눔을 멈출 순 없지요.”
지난 3일 대구 달서구 두류동의 한 오피스텔 16층에 있는 아트빌리지 내 전시실에서 만난 대구 아너소사이어티(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 5호 회원인 신홍식 <사>아트빌리지 대표(61)는 나눔에 대한 뜻이 확고했다.
97년 외환위기 모두 힘든 시기
구청 찾아 도움 필요한 곳 문의
소개받은 10가구 직접 쌀 배달
기부대상 늘면서 쌀 量도 증가
자가용‘무쏘’ 버겁자 트럭 빌려
지역 예술인 지원도 10여년째
작업실·전시공간 등 무료제공
“직접 현장 가보면 책임감 느껴
지속적인 기부문화 정착 도움”
그가 본격적으로 나눔을 실천하게 된 계기는 1997년 IMF 외환위기였다. 당시 신 대표는 달서구 월성동에서 컴퓨터 모니터 관련 제조 회사인 풍국공업을 운영했는데, 다른 지역 중소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정이 나은 편이었다. 지역의 어려운 이웃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던 그는 달서구청에 찾아가 혹시나 자신이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이 있는지 문의했다.
그는 “외환위기 당시 대부분 사정이 어려웠지만 우리 회사는 100% 수출만 하는 기업이어서 국내 시장에서 주로 활동하는 다른 회사보다는 형편이 나았다”며 “외환위기로 다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데 내가 힘을 보태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옛 기억을 떠올렸다.
신 대표는 달서구청을 통해 독거노인, 장애인, 조손가정 등 어려운 형편에 놓인 10가구를 소개받아, 98년부터 이들 가정에 쌀 20㎏를 매달 기부하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기부 대상을 매년 5~10가구씩 늘려 이제는 80가구에 쌀을 보내고 있다.
그의 색다른 기부방식은 17년 전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고 있다. 신 대표는 쌀을 구청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직접 쌀 포대를 들고 후원 가정을 찾아간다. 후원을 시작한 초기에는 자신의 무쏘 승용차로 배달하다가 차가 기울어질 정도로 쌀의 양이 많아지면서, 몇 년 전부터 구청 트럭을 빌려 매달 쌀을 전하고 있다. 그가 지금까지 각 가정에 전달한 쌀은 7천 포대가 넘는다.
신 대표는 “어떻게 보면 내가 기부를 하는 게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지만, 기부를 받는 분들을 만나보면 이분들에게는 내가 보내주는 쌀 1포대도 소중하다는 것이 느껴져 계속해서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신 대표가 기부를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반이었다. 우리나라와 러시아(당시 소련)가 국교를 수립하면서 우리나라에 오게 된 연고가 없는 사할린 동포들이 경북의 한 양로원에서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매달 50만원씩 기부했다.
그는 지역 예술인에 대한 지원도 아끼지 않고 있다.
월성동에서 공장을 운영할 당시 비어있던 2~3층을 지역 예술인 10명에게 무료로 작업공간으로 제공했다. 패널로 지어진 건물이라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추웠지만, 총 992㎡(300평)에 이르는 넓은 공간은 지역 예술인들이 꿈을 키워나가는 곳이 됐다.
그는 2년 정도 이곳을 작업실로 제공하다가 2005년엔 아예 대구 달서구 두류동의 한 오피스텔 16층을 통째로 사들여 작업실을 마련했다. 이곳은 지금 22명의 작가가 무료로 사용 중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피스텔 16층에 내리자마자 보이는 전시실도 이곳에 입주한 작가뿐만 아니라 지역 작가들이 무료로 전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대구시내 한복판에 마련된 예술가들의 마을인 <사>아트빌리지는 지난해 사회적 기업으로도 등록했다.
지역 예술인을 위한 공간을 마련해주게 된 건 예술에 대한 그의 관심에서 비롯됐다. 지역 미술전시회를 찾아다니고 작품을 구입하면서 지역 작가들과 친분을 쌓게 됐는데, 이로 인해 작가들이 작업실도 제대로 못 갖추고, 학원 강사로 일하는 등 열악한 환경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지역 주민과 예술인에게 나눔을 실천하던 신 대표는 나아가 대구 전체로 눈을 돌렸다. 2012년 9월10일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으로 가입하고 1억원을 기부하기로 한 것. 이제 가입한 지 2년여의 시간이 흘러 이미 기부하기로 한 금액을 훌쩍 넘겼지만, 그는 계속해서 기부를 이어가고 있다. 아직까지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이웃이 많다는 생각 때문이다. 신 대표가 기부한 사실을 알게 된 친구 최주곤 아태경영컨설팅 대표도 기부 행렬에 동참해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26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 됐다.
신 대표는 대구의 나눔문화에 대해 “내가 5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 된 때가 3년 전인데, 이제 대구도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 50명 가까이 생겨난 걸 보면 지역 나눔문화도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아너소사이어티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자신의 의견도 제시했다.
신 대표는 “아너소사이어티 회원들이 1억원을 기부하는 단발성에 그치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이 지속적으로 기부하고 새로운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 생겨나기 위해선 회원들이 직접 기부금이 사용되는 시설을 방문하는 프로그램도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신 대표는 “직접 현장을 보면 회원들도 책임감을 느껴 지속적으로 기부를 하게 될 것이고, 이런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퍼지면 계층에 상관없이 기부문화가 정착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미애기자 miaechoi21@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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