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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100년을 향해’ 대구의 장수기업들 .3] 대구백화점

2015-09-08

지역에 본사 둔 국내 유일 향토백화점…신용·뚝심경영이 원동력

[‘창업 100년을 향해’ 대구의 장수기업들 .3] 대구백화점
대구상회가 모태인 1950년대 대구백화점. 백화점 앞에 서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시민들 모습이 눈에 띈다. <대구백화점 제공>
[‘창업 100년을 향해’ 대구의 장수기업들 .3] 대구백화점
1975년 봄, 대구백화점 본점의 외관.
대구백화점은 지역에 본사를 둔 국내 유일의 향토백화점이다. 올해 71주년을 맞는 대구백화점은 대기업의 유통 채널 다변화 등 여러 가지 악조건 속에서 다시 한번 날갯짓을 준비하고 있다. 대구지역의 한 경제학 교수는 “향토백화점이 줄줄이 문을 닫고 대기업 유통업체가 판을 치는 이때에 대구백화점은 생존 그 자체만으로 칭찬받을 만하다. 또한 생존력 하나만으로 충분한 연구가치가 있는 탁월한 기업”이라고 극찬한 바 있다.

71년前 삼덕동 대구상회로 유통업 첫발
반년 뒤 유복상회 인수 후‘백화점’ 출발
69년 동성로 10층 건물 ‘한강 이남 최대’

90년대 유통환경 다변화에 공격적 경영
93년 대백프라자 오픈으로 또한번 도약
층별 품목그룹화·거북동선 전국적 명성

◆1944년 대구상회가 모태

대구백화점의 모태는 1944년 1월 대구 삼덕동 대구상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66㎡ 남짓한 상회에선 잡화류를 주로 판매했고, 개점 후 불과 6개월 만에 점포 인수가격의 50%에 달하는 이익을 냈다. 고(故) 구본흥 대구백화점 창업주는 이 시기에 대구백화점 본점 자리에 있던 유복상회를 인수했다. 대구상회 규모의 10배나 되는 대형점포(660㎡)였다. 점포대금도 160만원으로 당시로선 꽤 큰 금액이었다. ‘대구백화점’이란 상호는 이때부터 사용했다.

6·25전쟁이 끝나자 구 창업주는 사업을 확장할 결심을 한다. 대구백화점과 별도로 교동시장 내 분점도 냈다. 1955년 가구 제조회사인 대구가구공예사를 세워 대구백화점 본점과 교동시장 내 분점에서 영업을 시작했다.

점포는 나날이 번창했다. 1960년대 중반 교동 분점의 직원만 30명 가까이 됐다. 구 창업주는 여기서 안주하지 않았다. 당시 대구시장이던 강계원씨와 여상원 대구상공회의소 회장, 김준성 대구은행장을 만나 “대구에 10층짜리 백화점을 건설하자”고 도움을 청했다. 10층짜리 건물이 지어진다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사건이 되던 때였다.

1969년 12월26일 한강 이남에서 가장 큰 백화점이 동성로에서 문을 열었다. 이와 더불어 지역 최초로 정찰제 판매가 시작됐다. 오픈과 동시에 대구백화점은 동성로 상권의 핵심점포로 자리 잡았다. 김태식 대구백화점 부사장은 “70~80년대 대구백화점을 중심으로 젊음과 패션의 거리가 생겨났다. 이 일대에서 못 어울리는 이들은 어찌 보면 소외받는 젊음이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당시 대구백화점 본점에서 판매하던 상품은 전기제품·소아복·여성복·남성복·화장품·도자기류·침구류 등으로 현재의 백화점 모습을 얼추 갖췄다.

◆90년대 유통 아이콘 ‘대백프라자’

90년대는 유통업계의 다변화가 시작된 때다. 대기업의 자본력을 바탕으로 한 대형마트와 백화점이 줄줄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그 여파로 지역 향토백화점들은 줄줄이 문을 닫았다. 공사를 하던 중 대기업에 인수된 지역백화점도 있었다.

이러한 시기에 대백프라자가 오픈한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퇴보의 시기에 다시 한 번 전진하게 된 것이다. 대백프라자는 1993년 9월 당시 한강 이남 유통업체 중 최대 규모(지하 5층~지상 11층)로 개점한 것이다. 국내 유명 패션 디자이너들이 앞다퉈 이곳 의류매장을 들렀다.

대백프라자는 1990년대 유통의 아이콘이었다. 백화점 층별로 판매품목을 그룹화한 ‘버티컬 MD기법’, 소비자가 매장 곳곳을 지그재그식으로 천천히 둘러보며 목적지까지 가도록 하는 ‘거북 동선’은 대백프라자가 가장 먼저 도입해 전국 백화점들이 벤치마킹했다.

이효설기자 hobak@yeongnam.com

[‘창업 100년을 향해’ 대구의 장수기업들 .3] 대구백화점
고(故) 구본흥 창업주
[‘창업 100년을 향해’ 대구의 장수기업들 .3] 대구백화점
구정모 현(現) 회장

“大百의 오늘은 대구시민 덕분”

구정모 회장 “위기는 늘 기회” 자신
롯데·현대 이어 신세계 개점 대비
2017년 아웃렛사업 본격 진출 계획


“현재는 위기다.” 대구백화점 직원들이 항상 되뇌는 말이다. 그러면서도 “위기는 항상 기회였다”라는 구정모 회장의 경영철학을 떠올린다. 요즘 대구백화점을 두고 세간에선 “이번에도 버티겠느냐”는 우려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내년 동대구 신세계백화점이 입점하면 생존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롯데백화점 대구점이 들어올 때도, 현대백화점 대구점이 개점할 때도 대구백화점은 위기였다. 이에 대해 구 회장은 “90년대 이후 우리가 위기가 아닐 때가 있었나. 하지만 우리는 계속 이겨냈고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그 자신감의 원동력은 뭘까. 대구백화점은 새로운 해외 브랜드 입점을 위해 어느 백화점보다 공을 들이고 있다. 대구백화점에만 있는 고급 브랜드를 계속 늘려나가 승부를 보자는 것이다. 구 회장은 지난 4월 중순 직원들과 함께 도쿄와 오사카에 있는 대형 유통업체의 매장들을 샅샅이 뒤졌다. 국내 유통업계에선 ‘한국의 유통업체가 일본 등 유통 선진국 수준을 거의 따라왔다’고 하는 시점에 구 회장의 해외 탐방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바로 지금껏 국내 유통업체에선 경험하지 못했던 이색 상품과 먹거리를 지역 고객에게 첫선을 보이자는 것이다.

이렇게 해 입점된 직수입 브랜드로는 브리, 마리나야팅, 프라텔리로세티, 드빠르망174 등이 있다. 특히 2012년 본점과 프라자점에 오픈한 독일 피혁 전문 종합브랜드 ‘브리(BREE)’는 3년 만에 매출이 50% 가까이 신장했다.

대구백화점은 아웃렛 사업에도 본격 진출한다. 동구 신천동 옛 귀빈예식장 부지(지하 6층~지상 8층 규모)에 건립 중이며 2017년 초 오픈할 예정이다. 주차장과 아웃렛 매장, 전문식당가, 푸드코트와 아동 편의시설이 들어선다.

구 회장은 “대구백화점의 70여년 장수 비결은 두 가지다. 하나는 대구백화점의 신용이고 다른 하나는 대구시민이었다. 특히 시민들이 아니었다면 지역에 본사를 둔 유일한 지역백화점이란 정체성을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라면서 “앞으로도 지역민들을 위한 상품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효설기자 hoba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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