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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디아스포라 .4] 일제와 세월이 갈라놓은 부부

2015-09-11

“2년이면 돌아오리다” 兄이름으로 징용간 새신랑은 71년째 그곳에…

20150911
배태권씨가 징용으로 끌려와 30여 년을 일한 사할린 브이코프 탄광. 현재 가동을 중지한 브이코프 탄광은 일반인의 출입을 막고 있으며, 인적 끊긴 탄광 여기저기에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20150911
평생을 형의 이름으로 살아온 배태권씨가 브이코프 문화센터에서 자신의 지난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를 ‘배용권’(99)으로 불러야 할까, ‘배태권’(95)으로 불러야 할까. 모든 공식 기록상으로 그는 ‘99세 배용권’이다. 그러나 부모가 지어준 원래 이름은 ‘배태권’이다. ‘배태권’인 그가 ‘배용권’이 된 것은 71년 전, 그의 형 ‘배용권’ 앞으로 징용영장이 날아오면서부터다.

24세 때 사할린 탄광으로 끌려가
9개월 뒤 終戰…너도나도 항구로
“하지만 조선行 배는 오지 않았소”

막장서 고향·가족 지워가며 살다
45년 만에 일본서 어머니와 재회
고향방문때 반세기만에 만난 아내
“못지킨 약속…다음生엔 함께살자”


◆올 수도 갈 수도 없던 세월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4년 집(그의 고향은 경북 공산면 덕산리: 현재의 대구시 동구 덕곡동)으로 징용영장이 날아왔다. 징용 대상자는 형 배용권이었다.

“당시 나는 결혼한 지 1년이 채 안되어 자식이 없었소. 형님한테는 자식이 있었고. 그래서 집안에서 의논해서 내가 형 이름으로 징용을 왔소.”

그날 이후 그는 ‘배용권’이 되었다. ‘2년이면 돌아온다’고 갓 결혼한 아내와 굳게 약속하고 떠났다. 그의 나이 스물넷이었다. 대구 시내 사람들과 성서면, 공산면, 하양면, 영천 사람들까지 징용영장을 받고 나온 180명이 대구 칠성정거장 옆 조일여관에서 하루를 묵은 뒤 부산으로 떠났다. 부산에서 다시 일본 시모노세키까지 배를 탔고, 기차와 배를 번갈아 타며 아오모리와 하코다테, 와카나이를 지나 사할린까지 왔다. 꼬박 보름이나 걸려서 닿은 곳은 삶과 죽음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은 검은 땅, 오도마리(브이코프)였다.

“1944년 12월에 갔소. 그리고 9개월쯤 일했는데 전쟁이 끝났다고 합디다. 사람들이 고국으로 돌아간다며 너도나도 탄광촌을 떠나 항구가 있는 코르사코프로 갔소. 하지만 조선으로 돌아가는 배는 오지 않았소. 배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여기저기 뿔뿔이 흩어졌소. 어떤 사람은 코르사코프에 눌러 앉았고, 어떤 사람은 사할린스크로 갔고, 어떤 사람은 돌린스크로 갔고, 또 어떤 사람은 먹고 살 길이 없어 다시 브이코프 탄광으로 돌아왔소.”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장사를 할 재주도 없던 그는 브이코프 탄광에서 계속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강제징용으로 탄광에 도착한 이후 30여 년의 세월을 검은 석탄을 캐며 살았다. 캄캄한 어둠 속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막장 같은 삶이었다.

◆다음 세상에서 같이 삽시다

“전쟁이 끝나고도 10년 가까이 혼자 살았소. 그러다가 아는 사람의 소개로 여자를 만나 아들·딸 자식을 다섯 낳았소. 지금은 다 자라 시집 장가 갔고, 손자 손녀들도 있소. 고향에 두고 온 사람을 생각하면 미안하지만 올 수도 갈 수도 없는 세월이었소.”


고향의 부모와 형제, 아내를 기억에서 지워가며 살던 그는 1989년 아는 사람의 소개로 일본을 방문했고, 거기서 고향의 가족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지인의 도움으로 어머니와 동생을 일본에서 만났다. 아버지와 형은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늙은 어머니는 그의 얼굴을 보자 “니가 살아 있었나. 죽은 줄 알았는데 니가 살아 있었나”며 “내가 이렇게 오래 사니 니를 다시 본다. 니를 다시 본다”며 울었다. 그렇게 재회하고 2년 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대구의 고향 마을도 방문했다. 아버지 산소도 찾았고 아내도 만났다. 아내는 11년 동안이나 생사조차 알 수 없는 남편을 기다리다 자식이 있는 남자와 재혼해 자식을 낳고 산다고 했다. 2년 만에 돌아온다던 남편은 50여 년의 세월을 지나 할아버지가 되어 돌아왔다. 야속한 세월이었다. 아내는 말했다. “우리 이 세상에서는 네 잘못했느니 내 잘못했느니 따지지 맙시다. 세월이 그래 놓았지 않습니까. 이 세상 떠나면, 그래서 다음 세상에서는 우리 같이 사입시다.”


그는 “고향도 많이 변했더라. 이제는 골짜기 산에는 농사를 안 지어도 될 만큼 잘산다고 하더라. 나라가 못 살아서 우리가 이래 됐는데, 이제 잘산다고 하니 좋소”라며 아이처럼 환하게 웃었다. 그 웃음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글·사진=러시아 브이코프에서 이은경기자 lek@yeongnam.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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