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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적 漢字 달라…살던 주소 몰라…방문조차 못해

2015-10-06

■ 남겨진 이들의 안타까운 사연

안국도씨(1933~2013)는 2013년 고향 땅 한번 밟아보지 못한 채 이곳 알라디에서 눈을 감았다.

1940년 할아버지와 형님, 여동생과 함께 중국으로 도망 왔다. 일본에 쫓겨서다. 그의 나이 일곱 살. 고향인 예천에서 대구까지 걸어와 기차를 타고 압록강을 지났다. 짐도 없이 할아버지의 등에 업혀 그렇게 한국을 떠나온 뒤 중국에서 교사로 일하며 아들과 딸을 의사와 교사로 키워냈다.

가족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할 수 있는 길이 열리자 고향에 가기 위한 준비도 차곡차곡 했다. 한국 호적에 등록돼 있을 것이란 생각에 한중수교(1992년)와 함께 부모님의 고향으로 편지를 보냈고, 외삼촌을 찾았다. 그리고 한국 호적에 자신의 이름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더 이상의 기쁨은 그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한국 호적에 기록된 이름의 한자(漢字) 한 글자가 달랐다. 중국에서 사용하는 이름의 마지막 한자는 ‘인도할 도(導)’자였지만, 한국 호적에는 ‘도읍 도(都)’였던 것. 그리고 자식이 아니라 손주라고 적힌 호적 탓에, 서류상 그는 동일인물이 아니었다. 2010년 고향방문의 꿈은 무산됐고, 3년 뒤 그렇게 숨을 거뒀다.

우리와 한 핏줄이고, 같은 민족인 이들은 먹고살기 위해 일본의 손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중국으로 삶의 터전을 잠시 옮겼다가 광복 이후에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글자 하나가 달라서, 자신이 살았던 동네의 주소를 정확하게 몰라서. 떠날 때는 대구 인구가 고작 16만8천명, 포항시가 포항읍이었는데 말이다.

심정여씨(51)는 “올해 76세인 아버지는 알라디에서 태어났지만, 고향은 안동이라고 늘 말씀하신다”면서 “이곳에서 태어난 분들의 상당수가 고향은 한국이라고 생각한다. 돌아가시면 고향 땅에 묻히고 싶다는 마음이 있는 것 같은데 자식들이 힘들까봐 말을 꺼내지 않으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중국 길림시에서 노인호기자 sun@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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