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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食客열전 제5회- ‘시식남녀…’ 김영탁 시인

2016-06-03

시가 된 음식…“詩만으로 먹고사는 세상 만들고 싶어”

20160603
지난 4년간 ‘시식남녀’란 주제를 갖고 전국 각처 유명 시인사랑방을 순례하며 ‘한국 시인음식견문록’을 기록해나갔던 김영탁 시인. 요즘 관련 책 출간을 앞두고 있는 김 시인이 자신의 출판사 집무실에서 젓가락을 잡고 허기를 달래는 포즈를 취했다.
14년 출판사‘황금알’운영 130여 시인選
계간 詩종합지 ‘문학청춘’ 7년째 펴내
뛰어난 요리솜씨로 ‘식객 시인’ 평가도

4년전 ‘전국유람 詩食프로젝트’ 시도
대구 이하석 등 14명 시인 ‘大邱十味’
향토시인 단골식당 대표 메뉴를 詩로
‘시인과 맛을 찾아서’ ‘음식시집’ 계획

‘잡식성 시인’

지난 주말 서울에서 암약(?)하는 김영탁 시인을 만났다. 동숭동 대학로 세실극장과 월간 객석 뒷골목으로 걸어들어갔다. 그의 출판사는 이승만 대통령의 별장이었던 이화장 근처에 주둔하고 있다. 30평 빌라를 통채로 쓰는 출판사이다. 2층 같은 1층인데 바로 앞에 이화장과 낙산이 정원처럼 웅크리고 있다. 절묘한 입지다. 골목 풍광은 고상하면서도 뭔가 빈티지스럽다. 서랍에서 십수 년 만에 끄집어내 방금 입은 고급 청바지의 질감이랄까.

시인들이 불쑥 사람 좋은 그를 예고 없이 찾아온다. 출판사 때려치우고 식당 차려도 망하지 않을 요리 솜씨 때문이다. 다들 뚝딱 만들어 오는 그의 즉석 요리에 뻑 간다. 물론 그의 작업실 바로 옆 테라스 비치파라솔에 앉아 먹어야 제격. 뜨락엔 라일락과 쥐똥나무 향기가 무성하다.

◆동대문 옆 족발집 취담

대학로~동대문 근처 술집을 전전하며 밤새 ‘음주잡담’을 했다. 1975년부터 한 자리에서 장사하고 있는 동대문 바로 옆 창신동의 대표 족발집인 ‘와글와글’에서 포문을 열었다. 정말 술집 분위기가 와글와글이다. 조금 늦어 우린 대기를 했다. 출입문에 대기자 전화번호가 적혀 있다. 이후 대학로 마지막 포장마차로 불리는 ‘명륜포차’ 등으로 차수를 옮겨다녔다. 다음 날 오전 9시30분, 아직 잠에 취해 있는 기자에게 전화가 왔다. 기가 막힌 양평해장국이 있는데 그걸로 속을 풀고 근처 주택가 골목에 있는 단골 커피숍으로 이동해 커피 한 잔 해야 된단다. 징할 정도로 정이 푸짐했다.

그는 월~수요일은 술을 입에 대지 않는다. 목~토요일만 마신다. 임종 때까지 주당 소리를 듣기 위한 그만의 ‘주도(酒道)’다.

그의 콧수염은 일종의 블랙홀이고 덫이다. 유행에서 한 걸음 멀어진 버전, 하지만 그런대로 서울에서 아직 통용된다. 녹 묻은 금속성 음성. 야수적이면서도 조금은 쓸쓸한 눈빛. 그게 상대를 금세 무장해제시킨다. 쫄게 만드는 게 아니라 ‘취흥(醉興)’으로 바로 빠져들게 만든다. 매력보다는 ‘마력’이다.

그는 스스로를 ‘잡놈’이라 했다. 여기서 '잡'은 공자가 예기한 '조수와 초목(사물)의 이름을 아는 것이 시'라고 하는 뜻과 통한다. 여기에 풍류가 합쳐야 '잡'이 된다. 그가 얘기한 '잡놈'의 뜻은 낭만적인 멀티플레이어인 듯 하다. 하지만 아주 섬세한 잡놈이다. 14년 역사의 출판사 ‘황금알’을 꾸려가는 사장이다. 시전문종합지 계간 ‘문학청춘’을 7년째 내고 있다. 130권의 황금알 시인선까지 펴냈다. 세상에서 가장 돈이 안 되는 직업을 갖고 10년 이상 서울의 노른자위 땅에서 버티고 있는 그의 능력이 신비롭다. 라면을 먹더라도 좋은 책만 내겠다는 일념으로 꾸준히 낸 책이 300여 종. 이 책 중 효자도 있어 스테디셀러도 있다. 여기서 조금씩 나오는 이익을 잡지 제작 등에 투입한단다. 그럼 그렇지. 아무튼 그의 소망은 시만 갖고도 밥 먹고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 이미 그게 불가능해졌다는 걸 알면서도 그는 가능하다고 굳이 믿고 싶어 한다.

◆팔도 시인…식탁으로 불러내다

그는 시단이 너무 서울 중심으로 돌아가선 안된다고 믿는다. 늘 소외받는 지역시인의 안부가 더 궁금하고 염려됐다.

4년 전 어느 날이었다. ‘시인 찾아 삼만리를 떠나자’고 결심한다. 소싯적 3년간 전국 유람한 경력이 도움이 됐다. 팔도 시인의 등을 쳐먹으려는 고도의 술책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는 시인들도 있었지만 그는 그냥 빙그레 웃으며 야반도주하듯 유람을 시작했다. 수백 명의 시인을 만났고 그만큼의 술병이 비워졌다. 그런 덕분에 ‘김영탁의 전국유람 시식남녀(詩食男女) 프로젝트’가 성공할 수 있었다. ‘시식’이란 시와 음식의 합작품. 그 내용은 ‘문학청춘’에 연재됐다. 우리 문단에서는 처음 시도하는 일이었다.

그가 다닌 도시는 대구를 필두로 여수, 순천, 군산, 김제, 부산, 울산, 마산, 충주, 속초, 고성, 양양, 서산, 인천, 경주 등이다. 수년간 전국 각처 향토시인들이 사랑하는 문화사랑방 같은 식당과 그 식당의 대표 메뉴를 그 지역 시인이 시로 노래하도록 기획했다. ‘팔도시인음식견문록’인 셈이다. 김 시인은 그걸 ‘한국의 시인과 맛을 찾아서’란 단행본으로 출간할 계획으로 있다. 이와 관련해 ‘팔도음식시집’도 국내 최초로 태어날 예정이다. 덕분에 그는 식객 시인으로 등극하게 된다. 물론 그 이전에 작고한 송수권 시인, 충북 옥천으로 들어가 옻요리 연구가로 변신한 박기영 시인도 식객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시식남녀의 취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모국어로 쓴 시의 정수를 찾아보고 독자들과 함께 시와 맛의 향연에 동참하고 느끼며 호흡하는 데 뜻을 두고 있다. 한국 현대시는 대중과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극복할 과제라 할 수 있다. 보다 적극적으로 전국 경향 각지에 살고 있는 시인들과 그들의 몸과 마음, 그리고 언어를 만든 시와 고향의 맛을 찾기 위함이었다.”

이는 수공업적이고 발로 뛰는 작업일 수밖에 없다. 일일이 시인을 만나서 밥을 함께하며 시화(詩話)를 꽃피우는 고단한 작업이다. 언젠가 문단의 대동여지도를 그려보는 것이다.

그는 식약동원(食藥同源)이란 말 옆에 ‘시식동원(詩食同源)’이라는 말을 기대 세운다.

“약과 음식이 동일한 것이라면 시를 읽고 쓰는 행위도 음식을 요리하고 냄새를 맡고 먹고 마시는 것과 다름없지 않을까. 이것이 한국의 시인과 맛을 찾아서의 두 번째 출발점이다.”

그러므로 그는 “음식은 사람을 만들고 시인을 만든다. 음식을 만들어서 함께 나누어 먹는 일은 서로가 생명을 호흡하며 즐거운 일”이라고 규정한다. 음식을 나누어 먹는 일은 타자에게 다가갈 수밖에 없는 시의 운동성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음식은 인간의 생명과 건강에 직결되어 있듯이 시인들에게도 시는 음식과 마찬가지로 생명 같은 게 아닐까.

20160603
대구 시식남녀에 모인 시인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대구음식시 맛보기

1박2일 일정으로 대구로 온 그는 14명의 지역 시인을 동봉막창구이, 미도다방, 대덕식당, 산호찜갈비 등에서 만나 통음했다. 거기서 가장 대구스러운 음식이랄 수 있는 ‘대구십미(大邱十味)’ 관련 시 몇 편도 얻을 수 있었다.

특히 대구십미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는 ‘따로국밥’에 대해서 3명의 시인이 시를 적었다.

이하석 시인은 ‘국밥 먹기란 얼마나 성급한 사랑인가?/ 선 채로 먹건 앉아서 먹건/ 맵고 뜨거움에 숨을 몰아쉬면서/ 연기 맛 같은 현실과 꿈, 나와 너, 또는 지나온 곳과 가야 할 곳까지 말아서 후딱 해치우느니'(이하석), '삭둑 삭둑 잘려진 백년해로 맹세를/ 싸잡아 무쇠 가마에 태워/ 북 치고 장구 치고 춤추고 노래하여 피운/ 한 송이 블랙홀이여'(권순학), ‘앞산 진달래 봄을 푼다/ 대덕식당 따로국밥/ 해장술에 취해/ 그 아침 개나리 목련 다 불러내어/ 불큰하니, 능선 따라 가슴 속 한(恨)을 푼다'(김동원)면서 시인들은 따로국밥을 찬(讚)했다.

정숙·정하해 두 시인은 ‘동인동찜갈비’에 대해 노래했다.

정숙 시인은 ‘찜을 한다는 것은, 내가 네 그윽한 눈동자를 그리워한다는 것/ 갈수록 욕망은 자라나서 해 종일 네 그림자 따라다니다 보면/ 언젠가 화끈하게 서로 몸 섞으면서 마음속 풀잎들/ 비비고 또 비비다가 나른한 눈동자로 같이 뜨거운 커피향의/ 깊이를 재는 시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정하해 시인은 ‘살이 온통 당기는 것이다/ 한 줌의 마늘과 매운 고춧가루가 우려진 양푼에 이 질기지 않은 사랑 같은 거/ 볼이 터지도록 먹는 내내 눈물이 괴인다/ 맵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 달지 않은 포옹이 어디 있으랴/ 또 한낮은 붉어, 벚꽃 마구 쳐들어올 때/ 우묵한 양푼에 잘근잘근 삶아진/ 갈비를 뜯는 우리는 말이 필요 없었다//(하략)’면서 찜갈비를 토로했다.


그는 시인과 시인들이 사랑하는 공간을 찾아 전국을 떠돌아다닐 터. 풋나물에 막걸리 한잔을 나누며 시화를 노래할 방랑자 시인. 현재 미국과 유럽 쪽에서도 '시식남녀' 콜이 왔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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